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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국무총리와 7개 부처 장관을 교체하는 중폭 개각을 단행했다. 8.8개각은 이명박 정부 집권 후반기의 국정운영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참신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6.2지방선거에서 드러난 소통과 화합 주문을 외면한 '친위내각'이라는 반응이 더 우세하다. 이번 개각의 문제점을 분야별로 긴급 진단한다.  <편집자말>

먼저 축하드립니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문화부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 장관으로 입성 예정인, 입지전적 인물이 된 걸 말입니다. 항간에서는 '왕의 남자들의 승격', '젊은 내각의 선두 주자'로 평가하더군요.

 

혹시나 해서 장관 후보자님의 프로필을 찾아 봤습니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을 거쳐 사회부장, 정치부장을 지냈고, <주간조선> 편집장을 역임했더군요.

 

그 이후로는 정계에 입문해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메시지 팀장을 거쳐 이명박 캠프 비서실 기획1팀장을 지냈고, 이후 문광부에 입성해 문화2차관을 지낸 뒤 1차관으로 승진하는 등의 행렬을 계속했고요.

 

사실 이명박 정부 들어 유례없이 문광부가 시끄러웠지요? 차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는지요. 게다가 문화계에서는 유인촌 전임 장관 말고 신 후보자님이 '몸통'이라는 풍문이 공공연히 돌았었는데요. 이번 '말복 개각'으로 그 풍문이 입증된 것이라 봐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저간의 파행적인 문광부 정책에 대해서 분명히 책임을 지셔야겠습니다. 그런데 "되도록이면 아무 일도 하지 말아 달라(@wwenders, 트위터)"는 주문이 빗발치던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명박 정권의 문화 정책, 기조가 있긴 했나요?

 

8일 오후, 내각 명단이 발표된 직후 기자간담회를 여셨더군요. "문화복지, 문화강국 이룩하겠다"가 주요 발언이었어요. 그래서 더 찾아 봤습니다. 결론적으로 한숨부터 나오더군요.

 

"문화를 보다 크고 풍성하게 만들어 보겠다. 문화대국 한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그렇게 만들어진 풍요로운 문화를 한 사람의 국민도 소외됨 없이 모두 향유할 수 있도록 문화 복지에 힘쓰도록 하겠다. 문화는 정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민간이, 국민이 만드는 것이다. 민간의 자율과 창의가 바탕이 되는 문화가 되도록 정부는 겸손히 돕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

 

이 정부는 이명박 정부고 이 대통령이 생각하는 문화정책을 유인촌 전 장관이 집행했던 것이고, 이제는 내가 하는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 정부의 초반, 중반, 후반에 이 대통령의 문화 정책이 어떤 강도로 집행되느냐 차이가 있는 것이지 철학이나 정책에 차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년이 넘는 유인촌 장관 시절, 과연 '민간 자율과 창의'과 '문화복지'가 제대로 이행되어 왔습니까? 아니면 지금껏 못해 왔으니 앞으로라도 개선하면서 잘해보겠다는 취지인가요?

 

그렇다면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이명박 정부의 문화 정책의 실체가 무엇입니까? 그런 기조가 있기는 했습니까? 혹시 '좌파 척결'이 최우선 과제는 아니었는지요. 그나저나 문화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달라고 아우성이지만, 할 일이 꽤나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몇 가지 당부를 드리려고 합니다.

 

유인촌 전임 장관 대신 한 대 맞고 시작하셔야죠

 

 

"유인촌 장관, 만나면 일단 한 대 맞아야겠다."

네, 일단 가장 먼저 유인촌 전임 장관을 대신해 최종원 의원에게 꿀밤이라도 한 대 맞으셔야 겠습니다. 차관으로서 장관을 잘못 보좌한 죄, 백배 사죄해야지요. 그 '맞장'에 국민들과 문화계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되도록이면 공개된 자리에서 최종원 의원과 독대를 하기 바랍니다.

 

"유 장관에게서 권력을 쥔 완장 찬 사람의 호기가 보인다."

네, 또 최종원 의원의 발언입니다. 그 만큼 유인촌 장관의 독선과 오만이 하늘을 찔렀다는 이야기겠지요. 이제 장관 자리에 오를지도 모르니, 최종원 의원의 고언 한 마디 한 마디를 귀담아 들이시기 바랍니다. 분명 문화계 주요 인사이자 인생 선배의 말이니,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줄 겁니다.

 

"조 위원장이 영화계나 국민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네, 본인이 한 말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조희문 위원장 해임건은 어떻게 할 겁니까? 국민들 앞에서 두 번이나 발언을 했으면, 역시나 책임을 져야겠지요? 이제 차관도 아니고 장관이 될 분이, 법적으로 해임할 수 없다는 억지를 계속 부려야 쓰겠습니까.

 

사실 조희문 위원장 해임 혹은 사퇴는 상징적인 제스처일 뿐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 파행의 근원은 차관시절 행정을 주도했을 신 장관 후보자의 책임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으니까요. 물론 인정하지 않으리란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책임 문제는 둘째 치고, 그간 독립영화계는 물론 영화계 전반을 암울하게 만들었던 그간의 정책들은 분명 되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2011년 영화발전기금 운영 예산안의 전면 수정을 요구합니다. 다양성 영화 예산을 시작으로 제작지원 펀드, 한국영화 해외 마케팅 등 실질적인 한국영화 지원책을 다시 살려내세요. 조 위원장 자기 식구인 '시네마루' 챙기기였던 독립영화 관람 지원 같은 근시안적인 '포퓰리즘' 정책은 걷어 내고 말이지요.

 

영화발전기금 운용 예산안이야말로 돈이 되지 않는 곳엔 지원하지 않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문화 정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공공성을 지켜줘야 할 문화, 예술 분야에 자본과 경쟁의 논리를 들이대는 것이 도대체 어느 나라 문화정책입니까. 그런 의미에서 서울아트시네마와 같은 '시네마테크'나 인디포럼, 미디액트와 같은 독립·예술 영역의 최소한 과거 수준의 지원과 더불어 공명정대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겁니다.

 

4대강 예산 돌리기와 좌파 척결은 그만!

 

 

당부가 길어지는 걸 보니 유인촌 장관 하의 문광부가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군요. 지난 7일에는 문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예술인들에게 지난 4년간의 통장 사용 내역을 제출하라고 했다지요? '민간보조금 지원 관련 자체 점검'을 위한 조치였다고 하던데요.

 

왜, 입맛에 맞지 않는 예술인들에게 쌈짓돈을 챙겨주신 것이 그리도 아까웠답니까? 이렇게 예술인들 길들이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자리에서 내쫓은 겁니까? 

 

또 한국예술종합학교 사태는 어떻게 갈무리 할 겁니까? 영화아카데미 논란은요? 또 문광부는 최근 인천아시안게임 주경기장 건립 논란에 끼어들었다가 비난을 받았더군요. 방송콘텐츠 제작지원 주도권을 두고 방송통신위원회와 싸우느라 다른 정책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건 아닙니까?

 

네, 이제는 무슨 일을 벌이는 것보다 벌여놓고 실패한 정책들을 되돌아 볼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 장관 후보자 개인부터 자기성찰부터 해야 할 겁니다. 유인촌 전임 장관처럼 막말에, 고소에, 안하무인처럼 행동해서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겁니다. 명심하십시오. 정권도, 장관자리도 한 때라는 것을.

 

무엇보다 더 이상 '4대강 예산돌리기'과 '좌파척결'에 괜한 힘 쏟지 마십시오. 최근 문화예술인 1550인이 '강을 강처럼 흐르게 하라'는 시국선언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화계 예산이 삭감되고, 또 통장 사본을 요구받는 상황에서도 온 국민에게 크나큰 손실을 미칠 4대강 공사 강행에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내고자 하는 것이지요. 문광부에서도 이러한 문화, 예술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좌파 척결'은 당장 그만 두세요. "좌파 정부가 집권하면 좌파에서 나오고, 우파가 집권하면 우파에서 총장이 나와야 한다"는 신 장관 후보자 본인의 철학은 존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화, 예술인들 전체의 숨통을 죄고 창작의지를 꺾는 일련의 전횡과 횡포, 그리고 예산 깎기는 그만둬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창동 전임 장관의 취임사에서 배우길...

 

곧 취임식을 하고, 취임사를 발표하겠지요. 그 전에 2003년 3월 14일, 취임식을 대신한 이창동 전임 장관의 취임사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지금도 명문으로 회자되는 글이지요. 그 이후 이명박 정부의 문화 정책과 철학에 대해 명확히 밝혀주기 바랍니다.

 

"오늘날의 현대사회에서 '소통'이란 그 사회의 성격과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즉 과거에는 사회가 신분이나 집단으로 구성되었다면, 오늘날에는 의사소통으로 구성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사회가 민주화 되었다는 증거를 얻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의 방식이 민주화 되어야만 합니다.(중략)

 

그러나 문화의 산업적 논리에는 상당한 오해가 존재합니다. 즉, 문화를 산업적, 또는 경제적 측면으로만 바라본다면 '문화도 돈 된다'는 식의 단순논리에 머물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 되는' 문화(이를테면 게임이나 영화, 애니메이션, 관광 등)는 투자, 육성하고, '돈 안되는' 문화(문학, 연극, 미술, 박물관 등)는 직접 지원해서 보호한다는 분리적 접근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근본적으로 지난 시대의 낡은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다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제 '문화도 돈 된다'가 아니라, '돈 되는 문화, 돈 안되는 문화가 따로 없다'는 사고로 바뀌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경제적 관점에서 문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관점에서 경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중략)

 

문화예술 행정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문화예술인이 되어야 합니다. 체육행정과 관광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공직의 의무 속에 갇혀 있지만,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그들과 끊임없이 교감하고 소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우리는 권위주의의 두꺼운 철갑 옷을 벗어 던지고 부드러운 문화의 비단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태그:#8.8 개각, #문화체육관광부, #신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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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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