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간부 "취재해도 나가겠어?"

MBC 기자에 취재 포기 요구…"녹음파일 삭제 요청"
홍보담당 임원 "사실관계 말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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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C‘뉴스투데이’가 지난 8일 보도한 ‘삼성SDS 노조설립 봉쇄 논란’관련 화면.  
 
취재할 곳에 가까워질수록 전화선을 타고 오는 그의 말투는 부탁에서 회유로 나중에는 격하게 바뀌었다. 무노조 사업장인 삼성 SDS의 한 직원이 노조설립을 시도하는 사내 메일을 돌렸다가 회사에 의해서 삭제된 사실을 취재하던 MBC 김 아무개 기자에게 지난 7일 삼성그룹 홍보담당 고위간부가 전화를 걸어왔다. 김 기자는 이날 오전 이메일을 돌린 직원을 만나 관련 사실을 취재한 뒤 점심 무렵, 삼성 SDS측에 인터뷰 요청을 했다. 



삼성 SDS 인사 파트가 위치한 분당으로 향하던 김 기자에게 삼성그룹 홍보팀 이 아무개 상무의 전화가 여러 차례 걸려왔다. 이 상무는 처음에 “(이 기사) 안했으면 좋겠다. SDS건은 하면 안 될 텐데. 하더라도 좀 살살 해달라”고 말했다. 김 기자가 불편한 반응을 보이자 “담당 부장에게 기사 좀 쓰지 말라고 이야기하겠다. 취재해도 나가겠어. (뉴스데스크) 큐시트는 확인해봤어”라고 했다. 김 기자는 “일선 기자들도 보지 못하도록 차단돼 있는 큐시트를 언급하자 깜짝 놀랐다”며 “‘이 사람은 취재하는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MBC, 뉴스투데이서 보도
이 상무의 행동이 MBC 내부에서 문제가 되자 그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나눈 통화 내용은 녹음돼 있었다. 녹음된 음성파일이 MBC에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그는 여러 경로를 통해 삭제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기자는 “녹음파일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이 상무가 회사 아는 사람을 통해서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자료 보존 차원에서 복사를 했다”고 말했다. 



이 상무는 본보와 통화에서 “녹음 얘기는 들었지만 (내가) 어떻게 삭제하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부인했다. 또 “홍보실 직원으로 담당 기자와 부장한테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밝혔을 뿐 기사를 빼달라고 요구한 적은 없다”며 “기사가 다음날로 미뤄진 것은 MBC가 자체적으로 판단해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기자가 취재한 ‘삼성SDS 노조설립 봉쇄 논란’ 기사는 ‘뉴스데스크’에 나가지 못하고 다음날인 8일 아침 ‘뉴스투데이’에 보도됐다. 



삼성그룹 홍보팀의 부적절한 전화는 언론사들을 대상으로 한 삼성의 로비와 회유가 얼마나 집요한지를 보여준다. 삼성을 출입했던 한 언론사 기자는 “비판기사가 나갈라치면 전화를 걸어 부탁하고 안 되면 회사까지 찾아온다”며 “언론사 돈줄인 광고를 쥐고 있는 삼성이 부탁하면 윗선도 쩔쩔맬 수밖에 없는 구조가 언론계 현실”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신문의 비판 논조를 이유로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에 대해 광고 집행을 2년 이상 중단했다. 2007년 11월 삼성의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을 폭로한 사건을 집중 보도한 이후 두 신문에서 삼성의 제품 광고는 자취를 감췄다. 2년8개월째 광고를 받지 못하면서 두 신문은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 들어 두 신문에 삼성그룹 이미지 광고 등이 각각 7~8번 정도 실렸지만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삼성비판은 이제 불가능”
경향신문은 지난 2월 삼성을 비판하는 김상봉 전남대 교수의 고정칼럼을 싣지 않아 기자들이 반발하는 등 내부 홍역을 치렀다. 경향신문 측은 칼럼이 나가면 광고 정상화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판단해 칼럼을 누락했다고 고백했다. 당시 김 교수는 인터넷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 사회에서 삼성을 비판하는 것은 진보언론이라 불리는 신문에서조차 불가능한 일이 돼버렸다”고 개탄했다. 



언론에 대한 삼성의 영향력은 광고를 통해 발현된다. 광고 매출액 중 삼성그룹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일부 신문사는 전체 광고 매출의 10% 이상을 삼성 광고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 매출의 79.6%를 광고로 거둬들여 광고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삼성의 광고는 말 그대로 ‘밥줄’이다. 신문사가 연 100원을 번다면 79.6원이 광고로 들어오고, 그 중 10원은 삼성 광고인 셈이다. 



방송사도 예외는 아니다. 코바코(한국방송광고공사)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삼성전자는 지상파 방송3사에 2천2백73억원의 광고비를 지출했다.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는 “언론이 최대 광고주인 삼성에 고개를 숙이면서 비판적 기사가 나오지 않거나 삼성 신제품을 과대 포장하는 정보 왜곡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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