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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눅스의 전설과

소셜 웹 시대를 위한‘소셜 아키텍처’ 소셜웹시대, 새로운디지털질서를위한창조성혁명 김재연


경영, 금융, 법, 정치, 문화, 교육, 국제개발, 개인의 삶의 영역 등 사회 각 분야에서
IT는 조직, 문화, 인간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킬 것인가?
지식과 정보의 연결을 통한 집단 창조, IT의 실제적 가능성을 찾아가는 책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4학년에 다니고 있으며 이중전공으로
소셜과 오픈 트렌드, 웹 상의 네트워크 등 각종 정책,
저자는 웹이건 IT건 간에 기술이나 제품으로서가 아니라 문화, 정치외교학을 같이 공부한다. 홍콩시티대학(City University of

위키피디아의 신화를 넘어서


경영의 논쟁적 이슈들을 위한 대안의 미래
조직, 인간, 사회로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웹, Hong Kong) 공공행정학과, 대만의 국립정치대(國立政治大) 외교

더 나아가‘IT는 원래부터 소셜 웹’
이었음을 역설한다. 웹의 기본 계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적인 핵심인 네트워크가 가능하게 한 연결성이 수많은 사람들을 2006년에 머물렀던 홍콩에서 MIT Open Course Ware(공개강의운
개방된 네트워크로 불러오고, 연결된 다양한 사람들로 하여금 능 동)를 알게 되었고, 2007년부터 고려대를 비롯해 국내에 MIT

동적이고 창조적인 역할과 기능을 하게 하는 것이 소셜 웹으로서 OCW를 론칭하는 프로젝트에 서비스 기획과 관련해 일했다.
의 웹의 본질임을 설명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로 인해 다양성, 현재는 프리랜서 IT 애널리스트로서“비전 디자이너(Vision
독립성, 분산화, 그리고 집합성을 유지함으로서 집단을‘지성적’ Designer)”
라는 필명으로 IT와 사회 전문 인터넷신문인 <블로터닷
으로 만들 수 있는 문화인 오픈 컬처가 소셜 웹 시대를 위한‘소 넷(Bloter.net)>에 글을 쓰고 있다. 동시에 네티즌들의 온라인 실시
셜 아키텍처’
임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비전이“창조성의 혁명”
이 간 협업을 통해 빈곤 문제에 관한 공공지식을 생산하여 해당 이

소셜 웹이다
주도하는 세상임을 강조하고 그것이 IT의 부흥을 가져올 것임을 그가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했던 다양한 영역의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소셜 웹이 어떻게 이 세상을 변화시
>> 슈에 대한 사회인식을 바꾸기 위한 공익 NGO인“세계화와 빈곤
킬 것인지 전망하는 대목에서는 그의 확신에 찬 비전이 느껴진다. 우리가 쉽게 깨달을 수 있었던 웹의 위대 문제 공공인식 프로젝트”
에서 온라인 아카이브 구축 프로젝트 디
확신하고 있는 바,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이다.
한 혁신이 진정 어떤 의미였고 그것이 어떠한 가능성을 갖고 있었는지를 웹 2.0과 소셜 웹으로 설명하고 있
렉터를 거쳐 빈곤 문제 자료 구축 작업에 기여하고 있다.
- 추천사 중에서 는 젊은 논객의 힘찬 주장은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윤종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프로젝트 리드
소셜 웹을 활용한 정책·경영에 대한 대안들이 각종 논문 및 기
획 공모전에 당선되어,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 위원장(2007), 기

소셜 웹이다
>>이 책은 소프트웨어 파워를 넘어 복잡계 내에서의 상호관계를 중시하는 네트워크 시대로 나아가는 새로
운 세계를 가늠해볼 수 있는 하나의 지수가 된다. 놀라운 직관과 시대적 흐름에 대한 생각의 교류를 통해 시 획재정부 장관(2009), 법무부 장관(2009), 한국경제신문사 사장
대적 비전을 공유한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것이다. 열려진 가능성으로서 적극 추천해본다. (2009),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 이사장(2009), 그리고 서울시장
김규태 고려대학교 교수 김재연 지음 윤종수 감수 (2009) 등이 수여하는 상을 받은 바 있다.

더욱 발전되고 확장된 웹이 만들어나가는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일독하기를 권한다. 단순히 매일


>>

매일 변화하는 삶의 모습이 아닌, 보다 높은 곳에서 미래의 웹 세계를 조망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리눅스의 전설과 위키피디아의 신화를 넘어서
강재필 서울대학교 로스쿨 재학생 감수 윤종수

김재연 지음 윤종수 감수
우리가 이보 전진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가치들을 소셜 웹이라는 큰 그림을 통해 생동감 있게 전달해
>>

주는 저자의 이야기 타래들 속에서, 삶의 또 하나의 나침반을 쥐게 되는 느낌이다.


유제완 미국 텍사스 A&M 대학교 산업공학 석사과정 부장판사, 인천지방법원
현 Creative Commons Korea, Project Lead
소셜 웹은 개인이 지닌 잠재력과 창조적인 집단 지성의 실현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미래 사회의 혁신공
>>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전 세계의 개방화와 정보의 민주화 시대에 우매한 군중이 아닌 디지털 시대의 소크 전 사단법인 한국정보법학회 간사
라테스가 되는 법을 말해주고 있다. 김성묵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재학생
대법원 지적재산권커뮤니티 간사
지적재산권분야 국내규범연구반 총무

책읽는네시간생각이커갑니다
값 13,000원 ISBN 978-89-94104-01-0
Copyright ⓒ 2010 by 김재연
Some Rights Reserved.
이 책의 내용은 대한민국 크레이티브 커먼즈‘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 조건 변경허락’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sa/2.0/kr/
오픈의 변
커먼즈(commons)라는 말이 있습니다. 깨끗한 물, 맑은 공기에서부터
아이들이 읽고 쓰는 권리에 이르기까지,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
에 이르기까지, 직접적으로 돈은 되지 않지만,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기
반을 이루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삶에 기반을 이루는 ‘공동의 것’이 있
습니다. 그러나 그 것이 공동의 것이기에 때로는 커먼즈는 우리의 무관심
에, 소외의 영역에 존재합니다. 때로는 홀대와 남용의 대상이 되기도 합
니다. 만약 우리 태도가 그와 같지 않았다면, 기후변화(climate change)와
같은 난감한 사태를 오늘날 우리가 맞이하지는 않았겠지요.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커먼즈를 지키고 키
우려는 노력을, 그래서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공동의 유산을 물려주고
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의지와 노력
이 다른 어느 곳보다 더 많이 필요한 곳이, 이 지식 기반 경제가 주도하는
시대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디지털 공동 자산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창조의 열정에 동참하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 성격 중 하나인 창조성을
발견하고 발휘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결과물을 공유하고 확산시키기 위
해서, 디지털 환경에 공유 가능한, 실험 가능한 콘텐츠가 더 많이 확보되
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와 같은 정보 접근권(Access to Knowledge)
의 실질적 확대를 위한 많은 노력이 국내외에서 행해져 왔습니다. 제
가 대학 시절에 봉사 활동으로 참여 했던 교육 공개 운동인 MIT의 Open
Cousre Ware(공개강의운동)도 그와 같은 노력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에 상대적으로 이 책의 오픈은 거대한 강물에 하나의 작은 물방울을
보태는 것에 불과합니다. MIT의 1900개 강의 오픈과 이 책 한 권의 오픈
이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감히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것이
비록 그처럼 작은 물방울이라 할 지라도, 아무리 약자가 소수자라고 할
지라도 민주정체에서 1인의 선거권이 무시되지 않 듯이, 한 사람, 한 창작
자의 결정이 사회의 개방을 통한 혁신, 혁신을 통한 개방의 흐름을 유지
하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충분히 그 행위에 의미가 있다고 생
각합니다.
그렇게 오픈을 하고자 결정을 내리고 나니 지난 날들을 돌이켜 보게
됩니다. 잘 알지도 못하던 저를 이메일 하나만 보고 고려대 OCW팀에 소
개해주었던 MIT OCWC의 스티브 카슨, 그리고 함께 MIT OCW의 국내 런
칭을 위해서 노력하면서 절 아껴주셨던 김규태 교수님, 황미나 선생님,
블로터닷넷에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
아 사무국의 강현숙님, 제 부족한 기사를 주목해주신 블로터닷넷의 이희
욱 기자님, 김상범 대표님, 책의 출판이 결정되자 흔쾌히 추천사를 써주
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프로젝트 리드 윤종수 판사님, 책의 내용
의 수정과 개선에 많은 도움을 주신 세계화와 빈곤문제 공공인식 프로젝
트 최은창 대표님, 그리고 이 책의 오픈에 동의해주시고 지지해주신 네시
간 출판사의 김은석 대표님 등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그 분
들을 생각하면 당연합니다. 오픈은 당연합니다. 값없이 받은 것이 사랑이
라면, 그 사랑이, 그 지식이 더 커질 수 있도록 나누어줘야 할 테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제가 그 동안 값없이 받은 것들을, 제가 소유하기엔 욕
심인 것들을 내려놓고, 다시 디지털의 강물 속으로 흘려 보내고자 합니
다. 그리고 그래서 이 땅의, 이 하늘 아래, 어느 누군가 이 책을 통해서 찾
고 있던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 그러한 나눔이 행해진다면 그 것이 이 책
이 태어난 작지만 큰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읽
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많은, 더 나은 커먼즈가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
의 자유와 발전을 위해서 확보되고, 지켜지고, 발전할 수 있도록 함께 노
력합시다.
2010년 여름,
김재연 드림
소셜 웹이다 김재연 지음 윤종수 감수
리눅스의 전설과 위키피디아의 신화를 넘어서
추천사

소셜웹의진정한의미에대한
젊은논객의힘찬주장

“이제는 소셜 웹Social Web 이다.”


사람들은 이 말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람
들도 있을 것이고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 감이 안 와 갸우뚱거리
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아마도‘이번엔 또 무엇인가’
라며
냉소를 보낼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술을 선호한다. 어
떻게 사용해야 하고,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이전보다 무엇
이 개선되었는지 명확히 알 수 있는 기술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인
다. 만약 기술이 하나의 확실한 이미지로 정리가 안 될 경우 이를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한다. 다행히 인터넷은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기술이었다. 20여 년 전“TCP/IP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개방적
end-to-end 네트워크”
로서의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특히 친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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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페이스로 끊임없이 연결되는 하이퍼텍스트 문서들을 보여주
는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이라는 방식으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록 자세한 기술적 내용은 몰랐지만 웹이 무
엇을 가능하게 하고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
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 시공을 초월한 수많은 정보에의 접근과 지
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의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사
실은 예전에는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위대한 혁신Innovation 이었다. 특히 획기적이었던 것은 그와 같은
위대한 혁신을 일상생활 수준에서 보편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었고, 대한민국은 어느 나라보다 앞서는 광대역 인터넷의 보
급률과 속도로 이를 뒷받침하면서 스스로 IT 강국임을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웹이라는 기술에 대한 이해는“웹 2.0”
이라는 용어가 등
장하면서 애매해지기 시작했다. 단어 자체도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
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 버블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의 공통된 특징
에서 추출되었다는 다소 모호한 개념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몇
가지 사례들만 쭉 제시될 뿐 특별히 구별되는 새로운 기술을 발견
할 수 없었고, 한두 가지 명쾌한 속성으로 정의되는 것도 아니었다.
“참여·개방·공유”
라는 키워드는 추상적인 가치개념에 불과한 것
으로 여겨질 뿐, 그것이 어떤 기술적 의미를 갖는지 명확하지 않았
다. 게다가 웹 2.0의 대표적 사례로 제시되는 기업이나 서비스는 대
부분 낯선 외국의 것들이었고,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인터넷 보급
률과 속도는 더 이상 그들의 기준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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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와중에 다시“소셜 웹”
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소셜 웹은
말 그대로 웹을 통해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한다는 의미
이다. 그러나 역시 애매모호하다.“우리가 여태 웹을 이용하면서
했던 것이 다 그러한 관계 맺기와 상호작용이 아니었던가? 페이스
북이니 트위터니 하는, 요즘 잘나가는 서비스들이 대표적인 예로
제시되고 있지만 왜 새삼스럽게 소셜 웹을 새로이 정의하는지 이
해하기 어렵다. 소셜 웹도 역시 웹 2.0과 마찬가지로 마케팅 용어
나 트렌드에 불과하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많은 사람들
이 이런 의문을 갖고 소셜 웹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IT 강국으로서 우리나라의 지위는 점점 하락하고 있다. 심지어
는 우리는 결코 IT 강국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
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세우던 것이
IT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러한 주장은 다소 생뚱맞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지 새
정부에 들어서 국가정책의 우선순위에서 IT가 밀렸다는 평가 때문
만은 아니다. 우리의 IT는 확실히 생기를 잃고 있다. 아이폰이라는
기기 하나의 출시로 업계 전체가 들썩거리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IT는 점점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는 듯하다. 광대역 인터넷
보급률이나 속도는 더 이상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며, 하드웨어는
어떨지 몰라도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는 주도권과 희망을 상실한 지
오래라는 비관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문제가 최
근 한두 해의 환경 변화에 따른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데에 있
음을 시사한다. 그처럼 활기차고 확신에 찼던 우리의 IT가 왜 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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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과 소셜 웹에 와서는 여전히 애매모호한 낯선 것으로 남아 있을
까?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근거 있는 이상주의자’
의 신념에 찬 답
변을 담고 있다. 사실 스스로를 비전 디자이너라고 부르는 저자를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해 OCW Open Course Ware
의 국내 커뮤니티와 짧은 모임을 가지면서 처음 인사를 나누었고,
그 후 내가 자원활동가로서 참여하고 있는“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Creative Commons Korea ”
의 행사와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저
자의 생각과 경험을 전해들은 게 전부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저자는 나를 여러 번 놀라게 만들었다. 아직 젊은 나이이고 학생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다는 점도 놀라
웠지만 무엇보다도 감탄스러웠던 것은 확고한 비전과 이에 대한 끊
임없는 열정이었다.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면, 그의 비전에 대한 열
정은 단지 지적 탐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참여와 도
전으로 이어져왔으며, 언제나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왜 스스로 비전 디자이너로 불리고 싶어 하는지 충분히 이
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IT, 웹 2.0, 소셜 웹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저자는 웹이건 IT이건 간에 기술이나 제품으로서가 아니라 문
화, 조직, 인간, 사회로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웹, 더 나아가‘IT는 원래부터 소셜 웹’
이었음을 역설한다. 웹의 기
본적인 핵심인 네트워크가 가능하게 한 연결성이 수많은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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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된 네트워크로 불러오고, 연결된 다양한 사람들로 하여금 능
동적이고 창조적인 역할과 기능을 하게 하는 것이 소셜 웹으로서
의 웹의 본질임을 설명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로 인해 다양성, 독
립성, 분산화, 그리고 집합성을 유지함으로서 집단을‘지성적’

로 만들 수 있는 문화인 오픈 컬처가 소셜 웹 시대를 위한‘소셜 아
키텍처’
임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비전이‘창조성의 혁명’
이 주도하
는 세상임을 강조하고 그것이 IT의 부흥을 가져올 것임을 확신하
고 있는 바,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이다. 그가 직접 경험
하거나 목격했던 다양한 영역의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소셜 웹이
어떻게 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인지 전망하는 대목에서는 그의 확
신에 찬 비전이 느껴진다. 우리가 쉽게 깨달을 수 있었던 웹의 위
대한 혁신이 진정 어떤 의미였고 그것이 어떠한 가능성을 갖고 있
었는지를 웹 2.0과 소셜 웹으로 설명하고 있는 젊은 논객의 힘찬
주장은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제일 감명 깊었던 부분은 다음 구절이다.

“나는 그 영속하는 고민들의 유통기한을 너무 빨리 잡았다. 다


같이 봤어야 했다. 한쪽 눈은 연속을 보고, 그래서 무엇이 여전
히 그래도 중요한지를 깨닫고 있어야 했고, 다른 한쪽은 변화
를 보고, 그것이 새롭게 만들어내는 기회를 잡았어야 했다. 무
엇이 문제였느냐고 한다면 그 균형을 잃었던 것이 문제였다.
중심을 잃지 않고 트렌드를 추종했어야 했다. 결국 모든 것은
창조적인 절묘한 균형에 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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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많은 시간과 경험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벌써 이처럼 중요
한 핵심을 깨달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러울 따름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만큼 치열하게 고민하였기 때문이리라. 저자의 그러
한 깨달음은 나를 설레게 한다. 처음도 괜찮았지만 앞으로의 발전
이 더욱더 기대되는 것도 그와 같은 깨달음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
로도 저자와 함께 계속 고민해보고 싶다. 네트워크가 우리에게 가
져다준 기회가 무엇인지, 우리들의 열린 창조성이 어떤 의미를 갖
는지,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아직은 어설
플 수도 있지만 그에 대한 답은 계속 진화할 것이다.

윤종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프로젝트 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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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버블의성을깨고비전의바다로

소셜웹을만나기까지
이 책은 소셜 웹에 관한 것이다. 웹
이라는 새로운 정보 생태계Information
Ecology 가 사회 전체로 그 영향력이
확장되어 기존 사회 구조와 어떻게 융합되는지와 그 융합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질서와 문화에 관한 것이다. 달리 이야기하자면 기계
이상의 기계, 대규모의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 그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새로운 창조성을 이끌어내는 IT의 사회적 사용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구상과 그 가치, 의의를 설명한 것이다.
2006년 전반부까지만 해도 난 평범한 인문사회과학도였다. 어학
능력이 그래도 가진 재능 중에서는 뛰어난 편이었고, 글을 읽고 쓰
는 것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학에 입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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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1학년 학부 시절을 지나 제1전공으로 영어영문학을 택했다. 그
러다가 좀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사고의 흐름, 사회 현실에 대한
분석과 전망, 비전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 사회과학을, 그중에서 사
회과학의 본류라 할 수 있는 정치외교학을 택했다. 다시 정치외교
학에서 지역학 쪽에 흥미를 느꼈고 특히 동아시아학에 관심을 갖
다가, 중화권에서 미래를 보고 2006년 2학기에 홍콩으로 교환학생
을 떠났다. 30년 이상 지속되는 중국의 경제성장이야말로 아시아
를 넘어서 지구 전체적으로도 그 시점에 가장 괄목할 사회현상 중
하나라고 느꼈는데, 그것을 좀더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면 그 근원
지에서 살짝 떨어진 홍콩이 적절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때
당시 아직 부족했던 중국어 실력을 생각했을 때, 보다 나은 편인
영어로 강의를 따라갈 수 있다는 점도, 홍콩의 선진문물과 개방적
문화도 큰 매력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곳으로 떠나는 것이 내 인문사회과학적 배경
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IT와 사랑에 빠지는 계기가 될 줄은 몰랐
다. IT는, 아니 그 어떤 기술적인 것도 내 삶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운명은 생각지 못한 데서 찾아온다. 익숙하지 않은 도시의
풍광에 젖어 매일 거리를 배회하는 생활도 지겨워졌다. 생활비로
쓸 돈을 쇼핑으로 날리고는, 귀한 교통비를 써가면서 학교 밖을 나
가는 것도 부담스러워져서 기숙사에서 인터넷만 하는 생활이 지속
됐다. 그때 오랜만에 건전한 취미가 발동해 읽고 있던 것이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L. Friedman 의『세계는 평평하다 The World Is Flat 』
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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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직접 하는 강의이었다. 그
책이었다. 순간 스친 생각이‘저자 직강’
냥 책만 읽는 것은 따분한데 정보의 보고라는 인터넷에 혹시 저자가
직접 강의를 한 동영상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구글
에“Thomas Friedman & The World Is Flat”
이라는 검색어로 검색을
했는데, 그 검색 결과로 뜬 자료 중 하나가 MIT에서 프리드먼이 강
의한 동영상이었다.1) 찾던 자료가 정말 있었기 때문에 무척 기뻤
다. 확실히 저자 직강을 들으니 이해되지 않던 책의 전체적인 구성
이 단번에 머릿속에 잡혔다. 그때 우연히 화면 왼쪽 구성에서 무엇
인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이 행사의 주최가“MIT Open Course
라는 것이었다.2) 처음에는“Ware”
Ware” 라는 말이 붙었으니까 MIT
에서 운영하는 소프트웨어 연구소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관련 자료를 좀더 검색해보니, 이것은 MIT가 전 세계에서도 가
장 비싼 등록금을 받는 학부, 대학원, 연구소를 포함한 자신들의
모든 강의를 웹 생태계를 통해 사회 전체로 공개하는 대 프로젝트
였다. 그날부터 내게는 문자 그대로‘홍콩의 잠 못 이루는 밤’
이시
작됐다. 밤새도록 잠은 안 자고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세계 명문
대의 무료 강의, 유명 연구소의 무료 강연들을 보다가 새벽에야 눈
을 감곤 했다. 그러나 그 피로를 가뿐히 이겨낼 만큼 그 강의, 강연
들을 통해서 얻는 지적 자극은 엄청났다.
내가 듣는 수업의 참고자료로 주어진 책들을 직접 지은 사람들의
강의를 듣고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도움이자 흥분이
었다. 덕분에 나는 당시 홍콩에서 놀던 생활을 곱게 청산하고 애초
에 세웠던 목표대로 공부에 몰입할 수 있었다. 다음 날 강의 스케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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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확인하고, 강의를 듣기 전에 관련 주제에 관한 고급 무료 강의들
로 두뇌를 준비훈련하고 나면, 강의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이전
에는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받아적기에 급급하고 이해하기도 막
막했다면, 이제는 전날 밤에 관련 분야애 관한 세계적 석학들의 논
쟁을 듣고, 그 쟁점의 핵심을 이해하고서 강의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입장에 설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공부라는 것이, 배운다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다
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공부의 열기를 회복한
내가 목까지 차오르도록 책을 빌려 들고 와서, 기숙사 방 안에서
읽는 것이 답답해 기숙사의 각 층마다 있는 공동 휴게실에 가서 새
벽까지 책을 읽고 있으면, 홍콩 친구들이 옆에서 게임을 하다가
어차피 난 그들이 쓰는 중국어인 광동어를 못 알아듣기 때문에 옆에서 무엇을 해도 크게 방해

가 되지 않았다 신기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었다. 그‘신기한 나’



만들어준 장본인이 바로“MIT OCW”
였다.
그렇게 받은 것이 많았기 때문에 갚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누리
는 이 감동과 흥분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MIT OCW 홈페이지에
서 그곳 책임자에게 메일을 한 통 보냈다. 그 메일에는 한국의 고
려대학교 재학생인데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현재 홍콩에 와 있으
며, 우연히 알게 된 MIT OCW를 통해서 많은 새로운 학습 체험을,
그리고 그것을 넘어 인생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으니 감사하다는
말을 적었다. 이 프로젝트가 너무 훌륭한 것 같으니 방법만 가르쳐
주면 내가 어떻게든 한국에 돌아가서 본교에서 시작해보겠다는 말
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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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린다. 비슷한 시기에 고려대에서도 한국
에서 MIT OCW를 한번 해보겠다는 취지로 MIT OCW에 메일을 보
내신 분이 있었다. 그 분은 고려대 공과대학 전기전자전파공학부
소속 교수이자, 고려대에서 OCW를 주관하여 진행했던 교수학습
개발원에서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부원장을 역임하셨던 김규태
교수님이시다.
이 분도 나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 다만 차이점은 나는 강의 공
개의‘수혜자’
였다면 이 분은‘시혜자’
였다는 것이다. 교수님은 자
신의 홈페이지에 강의 자료를 공개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학생
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도 예측하지 않았던 결과로 구미
공단의 한 중소기업 경영자가 이 내용을 참조했고 경영에 도움을
얻었다. 이 기업가가 그러한 도움에 감사하며 보낸 메일을 받아본
교수님은 강의 공개의 사회적 효용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그
러던 차에 이러한 시도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으로 MIT OCW를 떠
올렸고, 그 도입을 위해서 MIT OCW 책임자에게 메일을 보냈던 것
이다.
이렇게 한 대학의 교수와 학생이, 비록 배경은 다르지만‘동시
에’MIT OCW를 도입하자는 취지로 연락을 취해왔다는 것이 그
쪽 책임자에게는 흥미롭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당시 책임자였던
스티브 카슨Steve Carson 이 나와 김규태 교수님의 메일을 서로에게
전달해줬다. 그 덕분에 우리 두 사람은 서로를 알게 되었고, 그렇
게 메일 교신이 시작되었다. 이후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끝내고 한
국에 돌아와서 식사를 같이하는 자리에서 교수님께 함께 OCW 국

14
내 론칭 프로젝트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그때부터
중간에 대만으로 교환학생을 갔다 오느라, 다른 공부를 하느라 잠
시 오프라인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2007년부터 2008년까지 MIT OCW를 국내에 론칭하는 프로젝트
에, 주로 서비스 기획에 관련하여 참여했다.
내가 관련 분야의 비전공자로서 이 길에 들어선 것은,‘좋아서
한다’
는 말 그대로 아마추어로서 출발한 것이다. IT를 통해서 그
가능성을 보고, 그 가능성에 따른 더 나은 미래에 도전을 하는 것
이 좋아서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아마추어로 OCW 론칭 프로젝트에 몸을 담다보니, IT에
관련된 많은 것들을 혼자서 공부하게 됐다. 혼자서 공부하다보니
정상적(?) 코스로 이쪽 분야에 발을 들이는 것과는 다른 루트와 방
법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그 생각을 발전시키게 됐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하려고 한 것은“Open Course Ware”즉,“강
의 공개 운동”
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앞서 이야기했던‘소셜’

‘오픈’
을 둘 다 그 배경으로 깔고 들어간다. 왜냐하면 이것은 교육
을 21세기 인터넷 환경에 맞춰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즉 IT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서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MIT의‘소셜’
한 고민이‘오픈’
으로 실천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 외에도, 이 프로젝트의 성공
적 수행을 위해서 그 배경과 목적에 관련된 IT의 사회문화적 속성
에 관련된 분야, 소셜 웹과 오픈 컬처에 관련된 많은 책들과 자료
들을 봐야 했다. 당시 국내에는 이 분야를 소개한 책이 거의 없었

15
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아마존에서 검색해서 외서를 주문해 같이
프로젝트를 하는 팀원들과 돌려가며 읽었다. 관련된 해외 대학, 연
구소, 재단의 강의들, 자료들을 참조하면서 정리해갔다. 그 당시에
는 이 모든 것이‘무 無 ’
에서‘유有 ’
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이 되는 고민들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IT란 과연 무엇인가, IT의 소셜, 그리고 오픈 트렌드가 그 산업계를
넘어서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과 새로운 가능성은 무엇인가, 국
내에 OCW는 어떻게 들여와야 하는 것일까 하는 고민들이 그때부
터 넘쳐났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MIT OCW처럼 일반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줄 만큼의 가시적 결과물을, 내가 2008년을 끝으로 떠난 고려대
OCW 3) 및 여타의 한국 대학 등 교육기관의 OCW가 만들어내지
못했다. 결과를 말하기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무엇이 문
제였느냐 하는 고민은 나 자신도 끊임없이 했다. 기본적인 문제,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은 기술력과 자본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
은 아니다. 오히려 리더십과 조직 차원의 수많은 문제들이 더 심각
한 걸림돌이 된다. 위는 막히고 아래는 안 풀리는 답답한 상황도
처음부터 많이 있었다. 주변의 인식과 편견도 큰 문제였다. IT를
전자제품을 넘어서 소셜과 오픈의 트렌드로 이해하는 시도도 그
당시에는 많이 부족했다. 좋은 일을 한다는 말은 해주었지만 그것
의 사회적 효용과 의의를 알고 지지해주는 사람은 적었다. 그저 신
기한 일을 하는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불같은 사랑이 끝나고
헤어질 시점이 되자 생각하게 됐다. 감겼던 두 눈 중 이제 적어도

16
한쪽 눈은 뜨였다고 해야 할까. 그것은 IT의 사회문화적 속성, 소
셜과 오픈의 트렌드가‘마법의 지팡이’
는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변화의 격랑 속에서도 기본적인 것, 근본적인 것은 바뀌지 않는
다. 핵심적인 가치와 기준은 시대를 초월한다. 그것은 여전히 중요
하다. 새로운 시대의 철학과 비전, 그것이 던지는 과제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리더십이 위에서 이끌어줘야 하고, 이용자들의 네
트워크라는 새로운 사회적 연결망을 장악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
델과 전략에 대한 고민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한 이슈들은 변
화의 와중에서도 결코 그 중요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그 영속하는 고민들의 유통기한을 너무 빨리 잡았다. 다 같이 봤어
야 했다. 한쪽 눈은 연속을 보고, 그래서 무엇이 여전히 그래도 중
요한지를 깨닫고 있어야 했고, 다른 한쪽은 변화를 보고, 그것이
새롭게 만들어내는 기회를 잡았어야 했다. 무엇이 문제였느냐고
한다면 그 균형을 잃었던 것이 문제였다. 중심을 잃지 않고 트렌드
를 추종했어야 했다. 결국 모든 것은 창조적인 절묘한 균형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기본부터, 생각의 밑바닥으로 내려가서 거기서부터 다시
고민하고, 다시 정리하고, 그래서 다시 결단하고 싶었다. 2008년을
끝으로 고려대 OCW 론칭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일을 정리한 후, 그
과정에서 얻은 성과와 경험을 바탕으로 그동안에 가졌던 고민들을
정책, 경영 대안으로 연결시켜 여러 논문, 아이디어 공모전에 응모
했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렇게 쓴 글들은 두 가지 주제를 함

17
축하고 있다. 첫 번째 주제는 반성과 성찰이다. 그때 내가 너무 흥
분하여 보지 못했던 것들, 즉 IT란 것이 무엇인지, 소셜과 오픈의
트렌드가 정확히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 근본부터 다
시 생각하고 정리하고자 했다.
두 번째 주제는 비록 그곳에 버블이 있고 아직 가시적 성과가 크
지 않다 할지라도 그 안에 죽지 않은 가능성을 믿고 다시, 더 크게
살아날 비전을 다뤘다.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 같은 생
각이 맞닿는 웹 생태계의 뿌리인,‘지식과 정보의 연결을 통한 집단
창조’
라는 IT의 실제적 가능성이 죽은 것은 아니다. 섣부르게 키운
엉성한 가지들을 잘 치고 내려가면 땅속의 뿌리는 살아 있다. 바로
거기서 앞으로의 비전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IT를 보고, 소셜과 오픈 트렌드를 잘 쓰면 이용자들의 참여와 그들
의 조직된 웹상의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가 어떤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까? 그 아이디어들을 통해서 각종 정책, 경영의 논쟁적 이슈들
을 어떻게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가 잡지 못한 기회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떠한 대안
적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그를 위해 실제적으로 우리는 어
떠한 준비들을 해야만 하나?
응모한 아이디어 제안서 및 논문들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을 공모전에서 정책, 경영 대안으로서 풀어내본 것인데,
그 분야는 경제·경영·법·환경·행정 같은 다양한 분야들을 포
괄한다.
이렇게 공모전에 참가하면서 정리된 생각들을 좀더 많은 사람들

18
과 공유하고, 그들과의 피드백을 통해서 내 생각의 발전을 추구하
고자 인터넷상의 개방, 공유, 창조의 패러다임 확산을 위한 크리에
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4) 의 게시판에 OCW에 대한 관련된 주제의
글들을 올렸다. 그러다 인터넷 신문 <블로터닷넷Bloter.net >에“비전
디자이너”
라는 필명으로“Social IT”
와“오픈 컬처”
에 관련해서 기
고하게 됐다.5) <블로터닷넷>에 기고한 글들은 네이버 뉴스캐스트
를 타고 공개되기 때문에, 공모전에 수상 덕택으로 그 전까지 교
수, 연구진들, 정책, 경영 실무 관계자들과 관련 주제로 아이디어
를 나누던 것보다 좀더 넓은 무대에서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
회를 가질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소셜 웹은 정말 우연한 계기로 시작하여 내 인
생을 내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인도해 나를 뒤흔들어놓았
다. 인문사회과학 전공자였던 내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방향이 틀어
져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나로서는 현기증을 느낄 정도다.

버블을넘어
비전으로 이 모든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책을
쓰게 되면서 매우 감사하고 좋았던
점은 그동안 해오던 수많은 고민들
을 하나의 큰 주제로 정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주제를 한 문
장으로 요약하자면 바로“버블을 넘어 비전으로”
이다.
여기서 말하는 버블이란, 1990년대 말 2000년 초의 닷컴만능이

19
든 아니면 지금의 웹 2.0만능이든, 그것이 실제로 전지전능하지 않
으며 종래의 편협한 IT에 대한 기술적 관점으로는 그 잠재력을 제
대로 이해하고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조직이, 문
화가, 인간이 바뀌는 변화가 진짜다. 기술이 아무리 급진전해도 인
간의 삶에서 관계와 일의 방식과 무관한 변화라면 그것은 무의미
하다. 따라서 그러한 고민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IT를 신
화로 만들어버리는 맹신은 넓은 시야와 긴 안목을 가지고 건실한
발전을 추구하는 성찰을 막는다. 버블의 그러한 성격에 주목한다
는 것이 이 책이 여타의 IT 관련, 웹 2.0 관련 책들과 차별되는 부분
이다. 무조건적인 성공과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지 않기 때문에 불
편할 수도 있다. 내가 IT의 사회적, 문화적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믿음이 이루어지려면 냉철한 조건들의 만
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균형 감각 없이는 웹 2.0도 정체
가 애매한, 과도한 기대일 뿐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비전은, 학술적인 것에 제한되기보다는, IT
의 사회문화적 속성에서 비롯된 가능성을 함께 생각하고 노력하자
는 실천적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예를 들어 경영·금융·법·정
치·문화·교육·국제개발·개인의 삶의 영역 등 사회 각 분야에
서 IT는 그 전까지의 조직, 문화, 인간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킬 것
인가? 그러한 변화의 움직임들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같은 원리
로 이해될 수 있을까? 그 원리를 통해서 어떤 거대한 사회적 변화
를 내다볼 수 있을까? 그와 같은 고민들에 대한 답을‘평범한 사람
도 탁월하게 공헌할 수 있는 세상’
에 대한 내 자신의 가치지향점과

20
연결시켜 써본 것이 이 책이 담고 있는 두 번째 핵심적 주제인 비
전이다.
굳이‘평범한 사람도 탁월하게 공헌할 수 있는 세상’
을 그 가치
지향점으로 잡은 까닭은, 물론 첫째는 그것이 내 자신의 가치지향
점이기 때문이다. 꿈이라는 것은 누구나 제한 없이 가질 수 있는
평등한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꿈꾸는
자유가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IT의 사회적 가능성 중
하나로 평범한 사람도 탁월한 공헌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될 수는
없을까?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회 각 분야의
전체적인, 그리고 각 개인의 비전을 디자인해야 할까? 그 가치지
향점을 전제로 한 비전을 이 책에 담았다. 이 책의 이야기는 그렇
게 흘러간다. 버블의 성을 깨고, 비전의 바다로.

2010년
비전 디자이너 김재연

21
차례

추천사 ● 4
프롤로그 버블의 성을 깨고 비전의 바다로 ● 10

PART 1
소셜웹이오고있다
Being Social web 01
기술에서사회로, 기계에서인간으로 ● 29

IT의 미래는 인간이고 문화고 사회다 ● 29


위기의 한국 IT, 소셜 웹에서 비전을 ● 34

Being Social web 02


웹2.0에서소셜웹으로 ● 38

변화의 주체는 언제나 인간이다 ● 38


웹 2.0, 개방·공유·창조의 패러다임 ● 41

22
Being Social web 03
한국웹2.0에대한불편한진실 ● 48

웹 2.0 신화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 48


웹 1.0을 넘어서기 위한 조건 ● 51
성공 이상의 비전이 웹 2.0을 살린다 ● 56

Being Social web 04


소셜웹시대의패러다임,“창조성의혁명”● 60

피터 드러커에게 길을 묻다 ● 60
“생산성의 혁명”은 지속될 것인가? ● 65
사람들을 네트워크로 이끄는 정체 ● 71
사회적 상상력과 인간의 의지가 결합될 때 ● 77

Being Social web 05


창조성의혁명을위한소셜아키텍처 ● 80

창조성의 혁명을 방해하는 것 ● 80


시대를 반영한 상식, 넉넉한 사회적 틀이 필요하다 ● 85
소유권과 정보 접근권 사이에서 균형 잡기 ● 88
새 시대를 위한 몇 가지 대안 ● 96

23
PART 2
소셜웹은이것이다르다
Being Social web 06
소셜웹시대에통하는리더십 ● 107

리더가 없는 곳에 리더십이 있다? ● 107


네트워크를 이끄는 리더십, 리눅스와 구글에서 찾다 ● 110
비전을 제시하고 호소력 있는 진정성을 보여라 ● 115
변화를 창조하는 리더십 ● 117

Being Social web 07


새로운패러다임으로시작하는혁신 ● 125

개성을 존중하는 것이 혁신이다 ● 125


혁신의 스케일과 스피드를 높여라 ● 127
MS, 소비의 패러다임 VS. 파이어폭스, 창조의 패러다임 ● 131
창조의 패러다임으로 혁신하라 ● 133

Being Social web 08


뱅크오브아메리카, 유니클로, 구글이던지는메시지 ● 138

영악한 이용자들의 네트워크 ● 138


뱅크 오브 아메리카,“인간” 에 가까워지는 기업 ● 139
유니클로, 허영이 아닌 배려를 파는 전략 ● 145
구글,‘제로의 감수성’을 이해하라 ● 148
이용자의, 이용자에 의한, 이용자를 위한 기업 ● 152

24
PART 3
소셜웹이바꾸는세상
Being Social web 09
금융개혁, 저소득층에서시작하라 ● 157

위기의 금융, 신뢰 회복의 비전 ● 157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잘 쓰일 수 있는 금융 ● 160
소셜 네트워킹형 미소금용과 제3세계를 위한 보험 ● 162

Being Social web 10


소셜웹이빈곤문제를해결할수있을까? ● 171

빈곤 문제 앞에서의 불편한 침묵 ● 171


소셜 웹, 빈곤 문제에 대한 공감 확산의 통로 ● 175
그라민뱅크·그라민폰, 제3세계 소셜 웹의 가능성 ● 177
지구적 상호작용의 시대 ● 188

Being Social web 11


소셜웹환경에서의학습혁명 ● 193

아날로그 교육 VS 디지털 세대 ● 193


군사부일체의 해체가 교육의 종말은 아니다 ● 198
소셜 웹 학습 혁명, 지구촌 리더로 키워라 ● 200

Being Social web 12


오픈컬처와다음사회 ● 209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까닭 ● 209


우리 모두 소크라테스가 되는 사회 ● 212
성찰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 ● 216
소셜 아키텍처로 거듭나기 위한 몇 가지 조언 ● 218

에필로그 평범한 사람도 탁월하게 공헌할 수 있는 세상 ● 224

25
기술에서 사회로, 기계에서 인간으로 l 웹 2.0에서 소셜 웹으로 l 한국 웹 2.0에 대한 불편한 진실 l 소셜 웹 새

시대의 패러다임,“창조성의 혁명”l 창조성의 혁명을 위한 소셜 아키텍처

IT는 단순한 전자제품이 아니며 사회이다. 그것이 위에서 내가 후자의 주장을, 즉 IT를 사회문화적으로 접근하

여 현재 한국산업의 위기에 대한 대책 마련을 모색하는 방안을 지지한 까닭이다. IT를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

고 문제점을 개선하고 비전을 제시하려면 IT 앞에 생략되어 있는 글자“소셜”


을 제대로 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

이다. 사회문화적 측면을 볼 때 소셜 웹으로서,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로서, 문화로서, 조직으로서, 인간으로서의

IT가 보이고, 우리는 정보화 혁명, 지식기반경제 등의 새로운 붐에 필요한 진정한 사회적 인프라로서의 IT의 잠

재력을 살릴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내고 구체화해낼 수 있다.


PART 1
소셜웹이
오고있다
소셜 웹이다
Being Social web 01 기술에서사회로,
기계에서인간으로

IT의미래는
인간이고문화고 2010년 전반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사회다 스마트폰Smartphone 열풍이 불고 있다. 애

플은 아이폰 국내 출시 두 달 만에 30만 대

를 팔았고, 지난해 10월 출시된 삼성의 옴니아2도 이미 누적 판매 대수가

30만 대를 넘어섰다. 언론은 스마트폰을 과거 PC의 등장과 비견하면서

시장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큰 파급 효과를 일으킬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애플과 구글이 각각 자신들의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으로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이동통신계의 전통적 강호였던 노키아, 소니에릭

슨, 모토롤라 등의 실적 부진을 지적하면서 한국의 삼성, LG 등의 혁신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6)
그렇다면 혁신의‘방향성’
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 스마트폰의 열풍을

우리나라가 주도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기술력이 부족했기 때문인

가? 일명 IT 강국이라던 한국 IT가 잠시 방심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

29
반도체 등 하드웨어 영역에서는 선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프트웨

어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외국업체에 로열티 주기에 급급하고, 콘텐츠는

아직도 절대적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진실 때문인가?

나는 후자에 더 큰 무게를 두겠다. 전자는 IT를 여전히 기계, 장치, 기술

로만 보는 협소한 관점에 고립되어 있다. 업그레이드가 늦었으니 우리도

연구개발 비용을 더 늘려서 고삐를 당겨 추월당한 것을 따라잡아보자는

식이다. 그러나 만약 기술 외의 부분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면 이 같은 관점은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없다.

반면에 후자는 IT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새로운 시대를 이끌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인프라로 보고 있다. 거기에는 앞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

기술의 향상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조직, 문화, 인간에 대한 고민과 새로

운 비전을 향한 노력 등이 포함된다.

노트북, 휴대폰, 태블릿 등의 휴대용 장치Portable Device 가 왜 중요한가?

잘 만들고 신기하게 만들어서인가? 그렇다면 기술이 더 현란하고 화려해

지면 좋은 IT인가? 그렇지 않다. IT를 사례로 들어 생각하는 것이 어렵다

면 좀더 비근한 예인 자동차로 생각해보자. 기술이 절대적이라면 무조건

빠르고 튼튼하면 좋은 차일 것이다. 그러나 좋은 차는 그 이상의 의미를

포함한다. 빠르다고 해도 그것이 한국의 도로사정이라는 소비자의 필요

와 맞아야 한다. 시속 200km를 넘게 달리는 스포츠카가 한국에 대중적

필요가 있을 수 없다. 튼튼하다면 얼마나 튼튼해야 하나. 총알도 못 뚫는

방탄유리를 차 유리로 하면 좋겠지만 자신이 암살 가치가 있을 만한

VVIP가 아닌 이상, 그러한 안전성은 초과비용만 발생시킬 뿐이다. 이러

한 인간 중심, 이용자 가치 중심의 이해는 자동차나 IT나 크게 다를 것이

30
없다.

여기서 우리는 기준이 어디까지나‘인간’


인 것을 알게 된다. 컴퓨터, 휴

대폰, 태블릿이 중요하다면 그 기술, 그 제품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

라 그것이 사람들에게 유용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정보I 를 서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기술T 이기 때문에 중요하고 의미심장한

것이다. 사람들이 IT를 통해서 서로 간의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그것을

통해서 지식과 정보의 콘텐츠를 함께 볼 수 있고, 콘텐츠를 새롭게 만들

어내는 작업을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IT는 제품

이 아니다. IT는 문화고 조직이며 인간이다. IT는 사회 그 자체다.

그러므로 IT는 미국의 저명한 IT 컨설턴트 니콜라스 카 Nicholas Carr 가

2008년에 발표한 그의 저서『빅 스위치The Big Switch 』


에서 말한 것처럼 산

업시대의 전기와 같은 하나의 사회적 인프라로 보아야 하고,7) 그렇게 IT

가 만들어가는 사회의 중심에 웹Web 이 있으므로 사실상 IT가 아니라 소

셜 웹Social Web 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 정체성에 대한 보다 정확한 설명이

다. 마치 태양계 내에서 운행하는 천체의 중심에 태양이 있으므로 그것을

태양계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IT는 단순한 전자제품이 아니며 사회이다. 그것이 위에서 내가 후자의

주장을, 즉 IT를 사회문화적으로 접근하여 현재 한국산업의 위기에 대한

대책 마련을 모색하는 방안을 지지한 까닭이다. IT를 제대로 이해하고 활

용하고 문제점을 개선하고 비전을 제시하려면 IT 앞에 생략되어 있는 글

자“소셜”
을 제대로 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문화적 측면을 볼 때

소셜 웹으로서,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로서, 문화로서, 조직으로서, 인간

으로서의 IT가 보이고, 우리는 정보화 혁명, 지식기반경제 등의 새로운

31
붐에 필요한 진정한 사회적 인프라로서의 IT의 잠재력을 살릴 수 있는 방

법들을 생각해내고 구체화해낼 수 있다.

스마트폰 열풍을 통해서도 이를 감지할 수 있다. 최근의 현상은 코드가

기술이 아니라 사회라는 분명한 교훈을 전달해준다. 이러한 변화는, 휴대

폰을 휴대폰으로만 생각했다면, 그래서 이 기기를 얼마나 기술적으로 업

그레이드하느냐는 부분에서만 생각했다면 나올 수 없는 답이었다. 그러

나 휴대폰을‘휴대폰이 아닌 것’
으로 생각할 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연

결성, 창조성을 향상시키고 그래서 그들이 집단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

고 교환하는 데 핵심이 될 수 있느냐를 고민할 때 나올 수 있는 답이다.

사실 이러한 스마트폰의 교훈, 즉 기술이 아니라 사회, 콘텐츠를 생산

하고 교환하며 집단적으로 창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쪽으로 IT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은, 그래서 기계, 장치에 대한 고정적 사고를 벗어나기 위

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 아주 새로운 것도 아니다.

MIT 미디어 랩Media Lab 설립자인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가 1995년

에 쓴 고전적인 책,『디지털이다 Being Digital』


에 나오는 일화다. 20세기 말

TV의 진화를 놓고 산업계에서 생각했던 방향성 중 하나는 초고화질 TV

인“HDTV High-definition Television ”


였다. 즉 그들의 혁신의 방향성은‘기술’

이었다. 일본의“HI-VISION”
을 선두로 하여 유럽은“HD-MAC”
, 미국도

자체적인“HDTV”표준을 개발했다. 그들은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

해 올림픽 등 대대적 광고 효과를 노릴 수 있는 이벤트에 집중 광고 투자

를 하며 치열한 경쟁을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일본의 HI-VISION이

론칭된 해였고, 1992년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은 유럽의 HD-MAC이 소개

된 해였으며,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은 미국의 HDTV가 등장한 해였다.

32
승자는 그중 어느 업체가 아니라“변화”
였다. 사람들이 원한 것은‘고

화질 이상의 고화질’
이 아닌‘더 많은 콘텐츠’
, 그들의 삶에 무언가 변화

를 일으킬 수 있는 도구였다. 그래서 1996년 미국의 HDTV가 등장할 당

시에 사람들이 택한 것은 일본의 HI-VISION도 유럽의 HD-MAC도 미국

의 HDTV도 아닌“PC”
였다. PC는 TV와 달리 좀더 자유롭게 콘텐츠를 주

고받을 수 있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20세기 말을 넘어 21세기로 들어오

면서 멀티미디어 시장의 승자가 HDTV가 아니라 PC였다는 것은 결국 콘

텐츠, 인간이 중심이라는 것에 다시 한 번 힘을 실어주었다. 10년 후인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휴대폰에서 스마트폰으로의 시장 변화는

TV와 PC 간 세대교체의 교훈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처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의 핵심은 언제나 기술이 아니라 가치였다. 그 가치는 좀더 개

방적인 시스템Open System , 더 많은 콘텐츠가 개방되고, 참여할 수 있고,

그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는 혁신의 방향성에서 발견되는 것이었다. 독

점적이고 갇힌 시스템에서는 변화에 대한 경직성을 유지하면서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오픈 시스템에서는 혁신이 혁신과 경쟁하며

변화가 끝없는 상상력을 통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스마트폰, IT의 미래는 무엇일까? 8) 그 답

은 다음과 같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IT의 미래는 기

술이 아니다. IT의 미래는 인간이고, 문화고, 사회다.

33
위기의한국IT,
소셜웹에서비전을 “IT=소셜 웹”
이라는 변화된 시각에서 보

았을 때 사실 우리의 IT 인프라는 아직도

멀었다고 보는 게 보통이다. 우리 IT의 실

체는 겉만 그럴 듯한 부실남이다. 우리 IT 인프라는 보이는 근육만 그럴

듯하고 체력은 바닥인 마네킹 육체미다. 정말 우리 IT가 강해지려면 먼저

IT가 IT다워져야 한다. 잃었던 소셜을 챙기고 다시 뛰어야 한다. 개발자,

기획자부터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더 많은 사람들이 IT 앞에 숨은 소셜 두

글자를 발견해야 하고, 그 뒤에서 오픈의 숨은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한

마디로 오직‘사회적 필요와 가치’


를 창출해낼 때에만 IT의 존재의 의의

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필요와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기술은, 비싼 장난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소셜”
을 굳이 영어로 쓴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

는‘사회적’
이라는 말과 의미를 구별하기 위해서다. 사회적이라고 한다면

보통 가족, 친족, 친구 등 소위‘가까운 관계strong tie ’


와 함께, 정부 행정망

이나 기업 유통망 등을 통해 연결된 보다‘먼weak tie ’대규모 집단과의 관

계를 가리킨다. 전자는 원시부터 존재해왔던 인간의 관계 방식이라면, 후

자는 근대 이후에 행정조직과 경영조직이 발달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러한 대규모의 먼 관계, 즉 정부 행정망은 기본적으로‘권력’


에 의해서,

기업 유통망은‘이윤’
에 의해서 관계가 형성된다. 정부 조직이 직급에 엄

격하고 기업 조직이 상거래에 철저한 까닭이 그 때문이다. 반대로 권력이

빠진다면 행정이, 이윤이 빠진다면 유통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IT는,

웹은 다르다. 이것은 꼭 권력 관계와 이윤 관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34
그 이상의 많은 것들이, 사람들이 그 관계의 속성 중에 존재한다. 예컨대

밤새도록‘싸이질’
을 하는 것이 권력을 잡거나 이윤을 창출하는 기회를

얻기 때문이 아닌 것과 같다. 따라서 이 온라인 인적 네트워크 속에 존재

하는 소셜이란 이전 시대의‘사회적’
이라는 단어로 정의하는 의미 이상의

것이다.

나아가 소셜의 두 글자에“오픈”


의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한 것은 소셜

이 함축하는 기존 조직에서는 주도적이지 못했던, 새롭게 강화된 사회문

화적 속성이 오픈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기계적’


인 관점을 넘어서‘유

기적’
인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서 IT와 그 IT가 사회가 융합되면서 만

들어가는 디지털 사회를 보고자 하는 것이다. 지식이 성장하고 번식하는

생태계로서의, 네트워크로서의 소셜 웹 생태계의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

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디지털화된 지식 혹은 온라인 디지털 콘텐

츠를 씨앗에 비유해보자. 웹이라는 생태계에서 이 씨앗이 자라는 방법은

사람들이 그 콘텐츠를 서로“개방 open ”


하고,“공유open ”
하고, 그것을 통

해서 함께 새로운 것을“창조open ”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셜 웹에서 만

들어지는 지식과 정보는 하나의 생태계 내에서 선순환된다. 그러한 생태

계에서 배태되는 문화이기 때문에 오픈, 오픈 컬처는 소셜 웹의 다른 한

면이다. 소셜이 몸이라면 오픈은 혼이고, 소셜이 혈관이라면 오픈은 혈액

이다.

그렇다면‘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기술’


에 중점을 두고 기술

을 바라보는 관점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IT를 이 사회로서, 하나의 생태

계로서 바라보는 관점이 우리의 부실한 IT를, 과거 정보통신부 관료들이

만들어낸‘IT 강국’
이라는 허울 뒤에 숨겨진 한국 IT의 추락하는 지위를

35
되살릴 핵심적 대안이기 때문이다.

물론 삼성 등 소위 세계 IT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있는데 왜 우리가

부실하냐고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1위의 통신 인프라, 초고

속 인터넷, 휴대폰 가입자 수, 세계적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허상일 뿐이

다. 2007년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의 인텔리전

스 유닛EIU 에 의하면 한국 IT 산업의 경쟁력은 2007년 3위, 2008년 8위,

2009년에는 16위로 추락했다. 인터넷 인프라 측면에서도 지난 10월 일본

총무성 발표에 의하면 선진국 IT 인프라 조사에서 일본이 한국을 넘어 세

계 1위가 됐다. IT 산업이 여전히 GDP의 24%를 차지하고 수출의 3분의 1

을 담당하고 있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한 IT는 갈 길을 모르고

있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대표적 IT 기업들도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있

다. 사실 지금의 스마트폰 열풍이 주는 경각심은 그동안 쌓여 있던 안팎

의 위기의식이 가시화된 것이라 볼 수도 있다.9)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IT 산업의 미래, 그 변화, 그 경쟁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소셜 웹에 있다. 소셜 웹은 우리가 IT를 인간

적·사회적 필요에서 재정의하고 앞에서 설명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그

기반적·문화적 속성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그 소셜이 과

거뿐 아니라 미래까지, 그 미래의 가능성과 비전까지 함축하고 있다면 더

더욱 그렇다. 여기에는 우리가 한국을 진정한 IT 강국으로 만들 가능성과

비전뿐 아니라 그 산업계의 비전과 틀을 넘어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더

나은 다음 사회를 만들 힘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와 같은 맥락

에서, 소셜 웹이라는 핏줄에 흐르는 피로서의 오픈은 소셜이 함축하는 기

존 사회의 사회적 속성 이상의 사회적 속성으로, 소셜 웹이라는 주형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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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해서 창조되는 새로운 사회의 성격과 특징을 정의한다. 그래서 소셜과

오픈이 그 처방전의 주요 성분이 되고 우리의 관심 대상이 된다.

한마디로 이것들은, 무협지 용어를 빌리자면, 내공이 제대로다. 이 내

공이 잘 쌓였을 때 우리의 기술적 진보, 외공이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그

날이 오면 우리의 축적된 내공과 향상된 외공의 결합을 통해서 스마트폰

이상의 혁신으로 새로운 연결성을 창조하는 기술과, 그 기술을 통해 전달

되는 향상된 조직과 문화의 가치로 한국 IT는 세계 시장을, 21세기를 선

도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IT의 비전은 소셜 웹에 있다.

37
Being Social web 02 웹2.0에서
소셜웹으로

변화의주체는
언제나인간이다 IT는 문화고, 조직이고, 인간이다. 이를 깨

닫기 전의 IT는 그냥 기계다. 그것이 인간

에게 도움이 될 때, 인간의 삶에 변화가 될

때 의미를 갖고 영향력이 생긴다. 따라서 문제는 그 기계가 아니라 그 기

계를 움직이는 감각, 인간의 철학과 비전에 있다.

피터 드러커Perter Drucker 는 조직을 이해하는 틀이라고는 국가, 정당 등


정치학적 논의가 거의 전부였던 시대, 경제활동에 대해서는 상품과 돈의

움직임에 관한 경제학이 거의 모든 것이었던 때, 새롭게 등장하는 회사라

는 조직과 그 회사를 움직이는 결정권자인 기업가에 주목한 선구자다. 그

는 오랜 정치 활동, 경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바탕으로 회사의 조직과

기업가의 역할, 책임에 관한 많은 책을 썼고, 95년의 생애를 회사의 생산

성을 활용한 조직들이 사회에 더 생산적으로 공헌할 수 있도록 컨설팅과

자문하는 일에 썼다. 그래서 그는“경영을 만든 사람”


이라 불렸고 첫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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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에 꼽히는 미래학자였으며 컨설팅이라는 직업을 정의하고 발전시킨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저 문필가로 불리기를 원했고, 자신의 연구는

모두 사회의 조화로운 질서에 관한 것, 사회생태학 Social Ecology 에 관한 것

이라고 했다.

사실상 지식기반경제, 지식노동자라는 말을 만들어서 유행시킨 사람이

드러커다. 즉, 웹 2.0 등의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에 지식을 어떻게 생산

하고 유통하고 재생산할 것인지의 문제가 앞으로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

한 문제임을 간파하고 지적한 것이 드러커였다는 뜻이다.

재미있는 것은 피터 드러커가 닷컴버블의 절정에서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에 기고한“앞으로의 길The Way Ahead ”10) 을 보면 드러커

본인은 IT 붐이나 그 전의 PC 혁명에 대해서 시큰둥했다는 것이다. 그는

기계의 현란한 발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

다. 그는 기계가 아니라 기계에 관계된 지식이, 그리고 그 주인인 인간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계는 그냥 기계일 뿐이다. 따라서

기계의 발전이 아무리 감명 깊더라도 그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기계

의 진보가 문제가 아니라 기계를 둘러싼 사람들의 철학과 비전이, 조직

이,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사람들이 관계 맺고 일하는 방식에 근본적이

고 전반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변혁이 일어난다.

하드웨어 성능이 발전해서 CPU와 하드디스크가 업그레이드되고 그에

맞물려 운영체제가 무거워지고 각종 응용 프로그램이 더 고성능을 요구한

다고 해서, 그것들이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과 만들어지는 콘텐츠에 혁명

적인 전환을 일으키는가? 그 대답이 기계의 업그레이드보다 더 중요하다.

기계가 얼마나 앞서나가느냐가 아니라 그 기계를 쓰는 사람들의 생산성,

39
창조성에 얼마나 변화가 일어났는지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하드웨어가 1기가든 100기가든, 그 이상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

이 우리를 얼마나 더 나은 지식노동자로 만드는지가 논의의 핵심이다.

기술이 아니다. 기계가 아니다. 문화가 진짜다. 인간이 전부다. 기술이 문

화, 조직, 인간과 합쳐져야 그것이 진짜 우리가 주목할 만한 변화가 된다.

지금 우리의 IT는 어떨까? 우리 IT엔 문화가 있고, 조직이 있고, 인간이

있는 것일까? 앞서 여전히 기술 타령만 하고 있는 허술한 한국 IT의 자화

상을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기본은 무시한 채 성공의 주문만 외우는 미신

을 탓한 것이지 한국 IT가 죽었다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또한 웹 2.0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확실히 IT엔 변화가 있다. 특별히 그 IT 발전의 중

심에 있는 웹 생태계에서 나타나는‘지금의 변화’


는 기술을 넘어서 조직,

문화, 인간을 말하고 있다. 다만 기술을 중심으로 보면 그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정말 변화로 보려면 IT를 소셜 IT로, 특별히

웹이 중심적이니까 소셜 웹으로, 거기서 나타나는 조직, 문화, 인간의 변

화를, 그 변화가 만들어내는 다음 세대와 다음 세상을 봐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IT를 좀더 현란한 기계로 생각하는 것과 IT를 성공

의 묘약으로 취급하는 것 모두를 지적하고 비판한 것이다. 그것은 가능성

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찾기 위한 길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럼 웹 2.0은 정말 무엇일까? 웹 생태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

고 나아가 그곳에서의 변화가 어떻게 현실 세계와 연결되고 있는 것일까?

40
웹2.0,
개방·공유·창조의 먼저 가장 상징적인 변화부터 생각해보면

패러다임 리눅스Linux 와 위키피디아 Wikipedia 의 등장

이다. 둘은 무료로 공개되어 있다. 리눅스

는 코드가 공개되어 있다. 프로그래머들이 그냥 재미삼아, 그리고 서로

누가 더 괜찮은 프로그래머인지 경쟁하면서 만들다가 운영체제가 발전했

다. 처음부터 공개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무료다. 위키피디아도 마찬

가지다. 업데이트도 더딘 브리태니커가 비싸긴 너무 비싸지 않은가. 그러

한 이용자들의 불만이 혁신을 일으키고 무료전자백과를 만들었다. 어떻

게? 같은 방식이다. 위키피디아에는 참여의 문이 열려 있다. 누구나 그 백

과사전에 뼈를 세우고 살을 붙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거기엔 아마추어

와 프로의 경계, 자격증의 소지 여부가 문제되지 않는다. 그냥 누군가 만

든 소스가, 누군가 올린 정보가 괜찮으면 된다. 진정한 의미에서 능력주

의인 것이다.

이게 바로 팀 오라일리Tim O’Reilly 가 말한 웹 2.0의 개방·공유·창조의

패러다임이다. 이것은 전에 없던 문화, 조직, 인간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좀더 잘 알려진 예로 웹 2.0 간판스타인 구글을 생각해보자. 구글 검색

도 공짜고, 지메일Gmail , 구글 닥스Google Docs , 구글 맵스Google Maps 등 각

종 구글 프로그램을 응용하는 것도 다 공짜다. 오픈되어 있다. 그런데 대

체 구글은 어디에서 그렇게 돈을 버는 것일까? 답은 그 과정에서 우리가

구글과 정보를 공유한다는 데 있다. 구글은 그것을 통해서 엄청난 데이터

베이스를 확보하고, 다시 그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소셜 네트워킹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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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working 형 광고 서비스인 애드센스AdSense 를 활용해 광고 수익 등을 창

출하고 있다. 개방·공유·창조의 패러다임이다. 보이지 않아서 눈에 띄

지 않지만 전에는 생각지도 못하던 비즈니스 모델, 전략이 존재하고 있다

는 것을 말해준다. 무엇인가를 비용을 들여서 만들어 가격을 매기고 사람

들이 그것을 다시 돈을 주고 사는 비즈니스의 고전 법칙을 벗어난 것이

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핵심은 세 가지다. 먼저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네트워크”


의 등장

이다.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방식은 과거 대규모 조직의 눈으로 볼 때

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혈연이나 학연, 지연 등이고 다른 하나는 크게 정

부 행정망이나 기업 유통망이었다. 이제 그것 말고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방법이 새로이 등장했다. 바로 IT다.

휴대폰, 컴퓨터, 태블릿의 주 용도가 무엇인가? 문서 작성? 전화 통화?

문자 보내기? 이미지 혹은 영상 편집? 그 모든 것은‘연결’


이 안 되면 의

미가 없다. 그 연결의 핵심이 웹이다. 웹 자체가 사실 그물이란 말이다.

연결시킨다는 뜻이다. IT는 연결이다. 접속이다. 그리고 IT 혁명의 가장

크고 우선적인 것이 바로 네트워크를 만든 것이다. 사람들이 정부 행정

망, 기업 유통망에 의지하지 않고도 서로 연결할 수 있는 방식을 찾은 것

이다.

네트워크는 이제 권력과 부를 창출하는 중요한 채널 중 하나가 됐다. 이

렇게 보면 인터넷, 보다 정확하게는 네트워크가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

서 큰 역할을 해서, 정치 신인 오바마를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시

킨 것이 이해된다. 아마존이 반디앤루니스 등 대형서점과 경쟁해서 승기

를 잡을 수 있었던 전적이, 그밖의 각종 온라인 쇼핑몰이 등장해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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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쇼핑 문화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킨 것이 당연하다. 네트워크가 정부,

시장에 이어 사회의 한 축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일어나는 변화의 핵심은 네트워크의 주인공인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정부 행정망은 정치인과 관료가 주인공이다. 기업 유통망은 기업

가가 그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네트워크는? 네트워크에는 진입 장벽이 없

다. IT를 소유하고 거기에 접속할 수만 있으면 된다. IT 기기, 서비스가 점

점 더 성능에 반비례해 가격이 내려가는 것은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을 참여자로 포함할 수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네트

워크가 행정망, 유통망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그들이 정치, 경제

영역에 더 깊이 침투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젠 시민을, 여론을, 소

비자를, 이용자를 배제하고 행정을 하거나 경영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됐다.

나아가 네트워크는 일반 대중이 무시하지 못할 존재가 되었음을 증명

할 뿐 아니라 스스로 좀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역할과 기능을 하도록 도

와주고 있다. 우선 앞서 말한 것처럼 참여의 진입 장벽, 즉 참여의 비용

또한 전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낮기 때문이다. 또한 그 행정과 경영의 존재

목적이 시민과 고객의 가치 증진에 있다고 할 때, 그 필요와 욕구를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이 바로 그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는 이제 대중이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거기서 대중은

더 이상 일방적이고 피동적이지 않다.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수용자에서

창조자로 변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조직과 인간의 변화다. 그 조직과 인간이 서로 맞물

리는 것이 문화라고 정의할 때, 그 둘의 변화를 더 큰 틀에서 조망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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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것 또한 문화다. 문화의 틀에서 무엇이 변하고 있는 것인가? 정부 행

정망에서 무엇이 오가려면 권력이 움직여야 하고, 기업 유통망에서는 돈

이 움직여야 한다. 그렇다면 네트워크에서는 무엇이 움직여야 하는가? 내

가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어떤 글을 읽고 맘에 들어서 내 블로그로 그 글

을 퍼간다. 나는 누군가의 귀중한 지식과 경험을 얻은 것이다. 그것을 위

해서 나는 그의 권력 밑으로 들어가야 하나? 그에게 돈을 지불해야 하나?

많은 경우 우리는 그와 같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웹 생태계에서 무엇

인가를 얻을 때 우리는 권력 관계에 들어가거나 돈을 내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네트워크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그러한 가치 교환이 이루어지는 장인 IT를 통한 연

결망, 그 핵심에 있는 웹의 형성 과정을 보자. 그리고 웹을 통해서 자생한

조직인, MS의 독점적 운영체제에 저항하는 공개 운영체제인 리눅스의 사

례를 살펴보자. 인터넷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면 이러한 활동이 이루어지

는 배경을 알 수 있고 인터넷 환경에서 태어난 조직체의 조직 운영 원리

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연결

망 위에서의 가치 교환이라는 것이 과연 어떠한 배경에서 어떠한 원리로

이루어지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먼저 인터넷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터넷은 1969년 DARPA Defence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 미국 국방성 고등연구계획국가 지원하여“ARPAnet”

이 개통됨으로써 시작됐다. 이것이 탄생한 이유는 간단한데, 미사일 공격

등으로 통신망의 일부가 붕괴되어도 분산형 컴퓨터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다면 전체적으로는 무리 없이 지식과 정보가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인터넷internet 은 그“인터inter ”
라는 말대로“분산형 시스템”
, 지식과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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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의 분배를 위한 시스템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아가 인터넷에서 태어난 자생적 조직인 리눅스 커뮤니티 혹은 그 커

뮤니티가 자신들이 개발한 프로그래밍 재료인 소스source 를 공개open 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인 오픈소스 커뮤니티는 그동안“자기조직 self-organi-


zation ”
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존 조직에 존재하는 권

력의 체계와 이윤의 동기 없이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참여에 의해서 해당

커뮤니티가 유지·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에 따른 성과물인

리눅스가 서버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제는 전자무료백과인 위키피

디아 등으로 그 아이디어가 확산되어 사회 전체적인 파급 효과를 발휘하

고 있기 때문에, 대규모의 조직이 유지되는 운영 원리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미국의 버클리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인 스티븐 위버


Steven Weber 가 대표적이다.

위버는 2004년에 발표한『오픈소스의 성공The Success of Open Source』


에서

오픈소스라는 조직이 그동안 사람들이 평했던 것처럼 자기조직이 아님을

밝혀냈다. 그는 이 조직에도 분명한 운영 원리라는 것이 있다고 설명한

다. 그들이 생산한 지식과 정보를, 이 경우에는 코드code 를 온라인에 게시

할 때, 그것을 소유한다는 것이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속한 프로그래머들

에게는 그것을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게 아니라 공개적으로 분배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오프라인에서는 일상적으로

내가 무엇인가를 가진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내 것이지 남의 것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인터넷의 본래적인 성격, 즉 네트워

크적이고 분산적인 성격 때문에 그러한 공유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이 오

픈소스 커뮤니티 프로그래머들, 리눅스 개발자들은 자신들의 소스를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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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에 올릴 때 독점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분배한다, 분

산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유의 조건으로 어떠한 권

력과 이윤의 분배가 교환자 간에 오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호 약속

이고 서로에 대한 신뢰다. 그것은 내가 공개한 소스를 당신이 같은 공개

의 원리로, 분산의 법칙으로 수용하는 이상, 당신이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한 얼마든지 서로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11)

그것을 통해서 소스의 개발에 대한 참여자들의 성장과 함께 리눅스, 위

키피디아로 이어지는 세대를 걸친 오픈소스 진영의 확장, 구글의 시장 장

악에 따른 오픈의 질서의 사회 전체로의 파급 효과 증대는, 이러한 웹을

통한 개방, 공유, 창조의 문화, 오픈 컬처를 인터넷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

에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정착시켜나가고 있다.

새로 잡혀가는 인터넷과 사회의 문화를 생각해보았을 때, 그 문화의 기

원인 인터넷의 성격과 오픈소스의 운영 원리를 생각해보았을 때 네트워크

에서 오가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의 답이 나온다. 즉 권력과 이윤을 배제

하고도 사람들 간의 관계가 IT를 통해 형성이 되는 것은 오프라인과 다르

게 온라인의 소유란 근본적으로‘독점’


이 아닌‘분산’
에 그 핵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짜 IT다. 조직, 인간, 그리고 그 둘을 같이 보는 틀로서의 문

화, 이 모든 것이 IT를 기초로 변하고 있다. 인간을 대규모로 연결하는 새

로운 방식으로 네트워크가 등장했고, 그 네트워크 소셜 웹을 중심으로 모

든 평범한 사람들도 기꺼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사회가 나타났고, 정부

와 기업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오픈의 교환방식이 하나의 룰로 정착되

어가고 있다. 권력과 돈을 뺀 관계가 관계의 중요한 요소가 되어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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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IT는 기계가 아니다. 그 기계를 쓰는 인간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

게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함께 일하는 방식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때,

소셜 웹 생태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정체가 보인다. 성공의 주문처

럼 생각되는 웹 2.0은 유령일지 몰라도 네트워크는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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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 Social web 03 한국웹2.0에대한
불편한진실

웹2.0 신화는아직
태어나지도않았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란 안데르센의 동화

가 있다. 새 옷 입기를 좋아하는 임금님이

온 나라에 거액의 상금을 걸고 수소문을

했다.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최고의 옷을 가져오라. 그때 머리 좋은 사기

꾼들이 기막힌 아이디어를 냈다. 그들은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옷을 만들

어내겠다고 임금님께 제안했다. 당연히 새 옷 입기 좋아하는 임금님은 강

한 흥미를 보였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말 그대로 세상에 없는 옷이었다.

사기꾼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들은 거짓말을 교묘하게 포장해 없는 옷

을 있는 것으로 만들어냈다. 그들은 말했다. 이 옷은 바보에게는 보이지

않고 오직 선량한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고. 사기에 넘어간 사람들은 옷이

‘있다’
고 이야기해야 했다.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확인하러 갔던 신하
도, 그 옷을 받아 입게 된 임금님도 모두 자기가 바보가 되는 걸 피하기

위해 그 옷이‘있다’
고 했다. 거리의 어른들마저 경탄해 마지않는 척을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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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한 용감한 아이가 외쳤다.“임금님이 벌거벗었다”
고. 그제야 모든 사람

들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서 사기꾼들이

거액을 챙겨 달아난 뒤였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웹 2.0 붐은 벌거숭이 임금님의 우화를 떠

올리게 한다. 사람들 모두 웹 2.0에 엄청난 것이 있는 척한다. 2.0은 근거

불충분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온갖 조건에도 불구하

고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어디에든 2.0만 붙이면 성공하는 듯 주문처럼

사용되고 있다. 여의도의 증권가에서도 2.0이라는 이름이 붙은 상품을 볼

수 있고, 인터넷 검색 서비스의 이름도 2.0이고, 서점가에서도 범람하는

2.0 관련 책들을 별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2.0은 진짜인가? 물론 상징적인 사건들은 있다. 예컨대, 서로 얼

굴도 모르는 전 세계의 프로그래머들이 온라인에서 뭉쳐서 만든 오픈소

스로 된 리눅스 운영체제를, 적어도 서버 영역에서는 MS와 같은 거대 기

업의 막대한 자본과 고급 인력이 투자된 운영체제에 저항할 만큼 키워놓

았다. 2007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리눅스는 당시 2분기가 끝난 시점에서

연속으로 두 자릿수의 성장세를 기록하며 전체 서버 시장의 12.7%를 장

악했다.12)

또한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전 세계 수많은 네티즌들이 실시간으로 협

업해서 초고가의 브리태니커에 견줄 만한 무료전자백과 위키피디아를 만

들었다. 물론 위키피디아를 둘러싼 핵심적 논쟁 중 정확성에 대한 논란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과학 학술지인 <네이처Nature >가

수행한 연구를 보면 그 시비는 지나친 감이 있다. 과학적 사실에 대한 기

술의 오류 결과를 놓고 비교해볼 때, 브리태니커 대 위키피디아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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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13) 즉 위키피디아가 정확성 부분에서 브리
발생률은“2.92 대 3.86”

태니커에 살짝 뒤쳐지기는 하지만 위키피디아는 브리태니커에 비해‘무

료’
와‘실시간 업데이트’
라는 점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을 생각해볼 때, 큰 약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기 부여가 될 스토리와 실제 시장을 혼동하면 안 된다. 괄목할

만한 2.0 성공 스토리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국내에선 제대로 된 웹 2.0

신화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일단 웹 2.0 붐이 국내 주요 일간지에 등

장했던 2007년에 국내 IT 전문가 28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이들 사이에서도 웹 2.0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상태에

서 회의적인 견해가 다소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14) 급기야는

지난 2008년 12월 11일에 모바일웹 2.0 포럼이 주최하고 전자신문에서 연

“모바일&웹 2.0 리더스 포럼”


에서는“한국 웹 2.0 버블조차 없었다”
며국

내 웹 2.0 붐에 대한 자성적인 주장이 관련 전문가들의 입에서 한목소리

로 나오기도 했다.15)

나아가 이러한 흐름에서 2007년 실시된 IT와 사회 전문 인터넷 신문인

<블로터닷넷>이 국내의 IT 전문가 26인을 대상으로 한 국내 웹 2.0 생태계

에 대한 자체 설문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웹 2.0은 아직 블로그 서비스에

치중된 잠재 시장에 불과하다. 블로그들이 만들어내는 여론시장은 마케

팅 등의 측면에서 활용도가 있으나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비즈니스 모

델은 광고 외에는 아직 마땅한 것이 나타나지 않은 상황이다. 나아가 정

보와 지식의 흐름을 분산한다기보다는 집중시키고 있는 포털 서비스 시

장에서의 지위와 비즈니스 모델로서의 매력은, 저 앞의 광고 시장 등을

고려했을 때 격감하지 않은 상태에서,16) 현실적으로 국내의 웹 2.0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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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포털 서비스 중심의 수익 구조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블로그 등의 실험

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 기회 정도로 받아들여지

는 수준이다.

따라서 산업과 시장에 대한 냉철한 이해 없이 일고 있는 현재의 웹 2.0

붐은, 아직 싸움은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승전가만 요란한 것이나

다름없다. 리눅스와 위키피디아를 통해 발견한 이용자들의 네트워크를

통한 사회적 생산 Social Production 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혁신의 가능성은 부

정하지 않지만, 묻고 싶다. 우리는 그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맞는 길로

가고 있는가?

웹1.0을
넘어서기위한조건 왜 한국 웹은 1.0에서 2.0으로 전환되지 못

하는 것일까? 미국에서 새로운 패러다임

을 수입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우

리가 그 웹 2.0이라는 틀을 가지고 오긴 하되 무언가 좀더 본질적인 것을

놓치고 있기 때문인가?

미국에서 1.0에서 2.0으로 웹 생태계의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났던 시기

는 1990년대 말로, 그때 미국은 닷컴버블의 절정에 있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던 바벨탑은 2002~2003년 사이 한순간에 파도에 모래성이

쓸리듯 무너져내렸다. IT는 한때 모든 사람들의 로망이었다가 그다음 순

간 공공의 적이 됐다. 닷컴이 쓸려나가고 그 버블의 자리를 대신한 대중

의 불신을 덜어주고자 IT 전문가 팀 오라일리가 나섰다. 국내에서는 리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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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관련 서적의 출판자로 알려진 오라일리는 하버드대학교 학부에서 고

전학을 공부했다.

인문사회학적 배경을 가지고 IT계에 입문한 독특한 배경을 가진 그는

일찍부터 IT의 사회문화적 속성에 대한 철학,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

는 닷컴버블을 빼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그는 당시 닷컴

붕괴의 폐허 속에 생존한 IT 기업들의 특징과 공통점을 분석했고, 거기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발견했다. 바로“개방·공유·창조”


의 패러다임이었

다. 꽉 막혀서 받아들이기만 하고 내보낼 줄은 모르는 사해 같은 닷컴기

업,‘웹 1.0’
은 망했다. 반대로 사방팔방으로 소통할 줄 아는 네트워크에

기반해 지속가능한 콘텐츠 축적과 확장을 계속하는 기업은 살아남고 번

성했다.

오라일리가 말한 진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그것은 일방형

콘텐츠 전달에서 네트워크형 콘텐츠 창조로, TV 채널을 인터넷으로 보는

것에서 UCC 서비스 업체인 유튜브YouTube 에 참여하는 것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말한다. 커피를 마시는 행위를 예로 들자면, 전자는 내가 마시는 커

피가 알루미늄 캔에 담기느냐 아니면 좀더 진화된 다른 재료로 만들어진

병에 담기느냐 하는 차이는 있지만 커피를 마신다는 행위는 동일하다. 그

러나 특정 브랜드의 커피를 소비하며 문화를 공유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

다. 이것이 웹 1.0과 2.0의 차이다. 1.0은 결국 커피를 어떤 용기에 담아 마

시느냐는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었다면 2.0에서는 그것을 어떤 경험으로,

이용자들의 감각을 살려 창조하는 패러다임으로 옮겨간 것이다. 유튜브에

서 무언가를 보고 만들어 공유하는 행위는, 수동적으로 TV나 PC 앞에 앉

아서 보던 행위와 문화적 의미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웹이 우리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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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와 일이 엮이는 삶의 공간, 플랫폼으로 침투한 것이다.

웹 2.0으로 정리되는 오라일리의 처방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닫지 말고

열어서 이용자의 네트워크를 잘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더 많은 창조를 확보할 수 있을 때, 그러한 집단 협업에

의한 콘텐츠 창조의 문화가 인간의 잠재된 상호 연결성에 대한 필요를 채

울 수 있다. 나아가 서비스 제공 업체에 대해서는 지속 가능하게 콘텐츠

를 공급하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준다.17)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닷컴붕괴의 원인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의 처

방인 웹 2.0만 기억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개방·공유·창조의 패러

다임이라는 처방전 이전의 배경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웹 2.0이 정

답이어서 더 이상 생각해볼 다른 것이 없다면, 그들은 왜 망했는가? 새로

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이용자들의 경험과 감각을 중시하고

그들에 의한 창조, 그들 간의 문화를 중시하는 2.0으로 제때 갈아타지 못

한 기업들이 환경 변화를 읽지 못해서 뒤처진 것일까? 그렇다면 그 패러

다임을 받아들이지 않은 기업들은 그때 함께 망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

은 그렇지 않다. 분명 살아남은 기업들의 특징은 웹 2.0으로 정리할 수 있

을지라도, 망한 기업들의 특징은‘웹 2.0이 아니다’


로 정리되지 않는다.

우리는 거기서 처방전 이전의 문제의 근본 원인을 생각해봐야 한다.

당시의 들뜬 분위기를 생각해볼 때, 문제의 근본 원인 중 하나는, 그들

이 성공할 것을 너무 쉽게 믿었기 때문이다. 닷컴이면 무조건 성공할 것

같았고, 그래서 벤처 캐피탈을 모으기도 쉬웠다. 너무나 쉽게 커버린 회

사를 상상 이상의 돈으로 팔아 치우고 일시에 부자가 됐다. 그땐 그렇게

돈을 번 사람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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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투자의 아버지인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 에 따르면 투자란

철저한 분석으로 원금의 안정성과 만족할 만한 수익을 기대하게 하는 것

이다.18) 그러한 기준을 놓고 보았을 때, 당시 닷컴에 쏟아진 돈은 투자라

기보다는 실제적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은 투기에 가까웠고, 그에 따라 닷

컴벤처들은 당시 미국 경제에 끼인 버블의 중심이었다. 그 버블이 우르르

무너지자 그 충격파는 직접적으로 관련된 투자자, 기업가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껴안아야 했다. 닷컴 열기 혹은 신경제New Economy 에 대한 맹신이

당시 미국 경기를 부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이들 닷

컴기업이 망한 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당시 잘나가던 닷컴기업이었기

때문이다. 닷컴이면 망하지 않고 성공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

었고 거기에 다수가 동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닷컴이 한물갔으니 이제

2.0으로 대체하면 망하지 않는 것인가? 다수가 그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

에?

다수의 동조는 그리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쏠

리고, 따르는 식의 논리의 순환구조는 그 시작이 사실무근이면 결국 꽝이

다. 적어도 그 상대를 확인하고 따르는 것이 현명한 논리라는 것이다. 그

렇지 않으면 다수에 동조한다는 것은 가라앉는 배에 늦게 올라타는 최고

의 어리석음이 될 수도 있다. 그러한 위험성은 지금 웹 2.0에 대한 마땅치

않은 흥분과 열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웹 2.0 타이틀 걸기 운동’


에 앞서서 닷컴 타이틀

을 왜 떼야 했는지, 그 성공의 묘약의 환상이 어떻게 깨졌는지에 대해 반

성하고 성찰하는 것이다. 그것이 1.0에서 2.0으로 가는 진정한 업그레이

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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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1.0의 실패 원인인,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배제한 기술의 발전에 대한

맹신, 거기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는 우리는 영원히 웹 1.0을 졸업하지 못

한다.『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 』


로 유명한 스탠포

드대학교 교수 출신의 컨설턴트 짐 콜린스 Jim Collins 가 닷컴의 절정기인

2000년에 쓴“일확천금을 꿈꾸지 마라 Built to Flip ”


는 글에는 아직 버블이

터지기 전, 기업가 정신의 상실에서 그 시작을 예견하는 선견지명이 돋보

인다.19)

그 글에서 짐 콜린스는 영속하는 기업에 대한 자신의 강의를 듣고 실리

콘밸리에 가서 문화적 충격을 경험한 한 학생의 이야기를 전한다. 닷컴 붐

이 한창일 때 실리콘밸리의 다수는 영속하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 기업

이 진정한 가치를 품고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조직화해 성공하는 것에

무관심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더 빨리, 더 쉽게, 더 빠르

게 닷컴 이미지를 풍기는 기술,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서 기업을 키우고

팔아 치우는 것이었다. 거기엔 건실한 기업가 정신이란 신경제에 어울리

지 않는 구세대의 사고방식이었다. 그 학생은 기업가 정신은 빠진 실리콘

밸리의 기업 분위기에서 자신이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배치되는 영속하는

가치, 지속하는 기업과는 거리가 먼 문화를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문화를 조장한 그들이 실리콘밸리를 가라앉혔다. 한때

의 무적함대는 어느 순간 그 정체가 종이배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벌거숭이 임금님의 정체를 깨달았다. 내가 한때 조금 이상했었나보다 하

고 깨닫는 순간 그 많던 돈은 다 사라져버리고 이미 식을 대로 식은 애정

을 바닥에 내팽개친 옛 연인은 그 자리를 떠났다. 그것이 닷컴의 신화가

끝나게 된 서글프고 단순하고 명쾌한 진리다. 기업가 정신에 등을 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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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비이성적 과열을 성공의 기반, 성장의 묘약으로 여겼기 때문에 거

두게 된 뼈아픈 결과였다.

여기서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교훈은 하나다. 기본을 무시하지 말자

는 것이다. 기대와 상황을 구분할 정도의 지혜와 분별력이 필요하다. 우

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비즈니스를 한

다면 그에 앞서 왜 해야 하는지,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가 왜 필요한지, 우

리 조직 문화와 핵심 역량은 왜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그‘왜’


라는 질문

을 가혹하게, 냉철하게, 철저하게 던지고 답해야 한다. 그 작업이 끝나고

나서야 유행의 열기 속에 뛰어들 준비가 된 것이다. 닷컴 마력이 갔다고

웹 2.0 주문에 의지해보겠다는 것은, 그래서 성공의 정도가 아니라 망하

는 지름길이다.

성공이상의비전이
웹2.0을살린다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가 IT에, 소셜 웹에

가능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약이 효과

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부작용을 충

분히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가능성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기본부터

닦고 가자는 것이다.

웹 2.0 성공 신화의 대표주자는 구글이다. 구글이 단지 프로그래밍의

DNA라고 할 수 있는 소스 코드를 감추지 않고 공개해서 성장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일까? 그렇다면 오픈소싱을 택한 기업들은 다 성

공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만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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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은 또다시 기술의 마법으로 빠지는 것이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새로운 시대의 비

즈니스 리더십의 간판이다. 그들은 새로운 기업의 비전, 철학, 전략의 삼

위일체를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정보를 공기처럼 쓸 수 있게 해주

겠다는 정보 민주화 The Democratization of Information 의 비전과 철학이 있었고,

그것을 이용자들의 선호에 따라 순위를 결정하는 페이지 랭크 알고리즘

으로 뒷받침했다. 그들은 사회문화적인 속과 기술적인 겉을 다 갖췄다.

내공과 외공을 겸비했다. 비전이 기술로 빛난다. 애초에 기본이 튼튼했

다.20)

같은 시각으로 보면 오픈소싱을 활용한 웹 2.0형 개혁도 성공을 절대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혁신 측면에는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 21) 이 있다. 구름 같은 대중을 끌어당겨 그들의 아이디어를 연구와

개발에 포함하겠다는 것이다. 마케팅 측면에서는 입소문 마케팅 viral


Marketing 22) 등이 있다. 이용자들, 소비자들이 알아서 상품 홍보를 해주는

것이다. 경영 과정 측면에서 그 외 이용자들의 참여를 늘릴 수 있는 온갖

방안들을 생각해낼 수 있다.23) 그런데 그것이 왜 성공을 보장해주는가?

다른 모든 생각과 고려들을 무시할 만큼 그 힘이 절대적인가? 그것이 기

본을 무시하고 겉만 키운다고 생각해도 될 만큼 중요한가? 역사는 과연

그렇다고 이야기해줄 수 있나? 닷컴 붕괴는 과연 그와 같은 교훈을 우리

에게 주는가?

아니다. 역사의 교훈은 반복된다. 여기서 이 웹 2.0 시대에 성공을 꿈꾸

는 모두에게 빠뜨릴 수 없는 질문 한 가지를 던지고 싶다. 가장 단순하지

만 중대한 것으로, 당신의 영혼은 무엇이고 당신의 비전과 철학은 무엇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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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그것은 소비자들의, 이용자들의 신뢰를 살 수 있는가? 과거 1인의 소

비자는 쉽게 속일 수 있는 대상이었을지 몰라도 네트워크는, 웹을 기반으

로 해서 실시간으로 지식과 정보를 교환하고 재생산해내는 현재의 이용

자들은 결코 허술하지 않다. 그들은 쉽게 속지 않는다. 오히려 영악하고

당돌하다.

당신은 그들의 신뢰를 살 수 있는가? 당신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으로

그 비전과 일관되게, 스스로가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걸 증명

할 수 있는가? 이용자 네트워크가 그 진정성을 인정해줄 것인가? 그렇지

못하다면 공허한 2.0 언어들 외에, 오픈소싱의 탈을 쓴 온갖 기술 외에 무

엇이 있는가? 어디에서 그 신뢰와 교환되는 이용자들의 열정적이면서도

지속적인 참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인가?

리눅스와 위키피디아는 이상에 대한 공감과 신뢰를 먹고 컸다. 그것은

여전히 인간임을 말한다. 기술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인간을 끌어당

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2.0도 인간의, 인간

에 의한,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의미가 있고 수익도 있다.

이번엔 과연 다를까? 웹 2.0이 닷컴 붕괴로 무너진 IT를 살려줄까? 웹

2.0이 위기에 처한 IT 강국 한국을 구할까? 그러나‘왜’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무시한다면, 우리가 창조하는 것은 백년 갈 산업이 아니라 또 하나

의 버블이다. 누군가는 또 여기서 치고 빠지는 방법으로 일확천금을 벌

것이고, 또 우리 모두는 그 버블이 쓸려나간 자리에서 쓰라린 가슴을 달

래야 할 것이다.

한 번 잘못하면 그것은 실수이겠지만, 두 번 이상 잘못하면 우리 스스로

가 바보라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벌거숭이 임금님”쇼는 한 번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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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타협하고 양보하지 못할 기준을 정해야 한

다. 그것이 피해갈 수 없는 기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웹 1.0이

냐, 웹 2.0이냐가 아니라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느냐다. 사실 소비자에게

닷컴이냐 2.0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필요와 욕구를 만족시키느냐

가 기준인 것이다. 거기서 다시 출발해보자. 이용자들의 필요와 욕구라는

바닥부터, 그 기본부터. 그 반석 위에 굳건한 성을 쌓아 올리는 기업가 정

신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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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 Social web 04 소셜웹시대의패러다임,
“창조성의혁명”

피터드러커에게
길을묻다 지금까지 웹을 중심으로 한 정보 생태계인

소셜 웹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이야기해보

았다. 이제 성장과 발전의 방향성, 그 미래

를 알아보기 위하여 역사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기로 한다. 역사의 동적

인 힘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고 있는가?

책의 도입부에서 언급했던 피터 드러커가 생전에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에 기고했던“앞으로의 길”
에 나타난 주장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고 있는 역사적 흐름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먼저 드러커가 사용한 분석의 틀을 보면“기술 혁신Technological Inno-


vation ”
과“사회 혁신Social Innovation ”
의 양 날개로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

다. 그는 두 가지가 전 시대의 가장 큰 변화였던 산업혁명에서 각각 어떠

한 역할과 기능을 했는지를 규명했다. 기술 혁신을 통해 인간에게 새롭게

나타난 가능성을 발견하고, 사회 혁신을 통해서 그것이 실제적으로 어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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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변화로서 인간의 삶에 침투해 들어가는지를 분석하기 위해서다. 나아

가 그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여 등장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의 집

단적 움직임인 조직에 주목했다. 이것은 그가 기계적이고 자동적으로 변

화가 일어난다는 의식을 거부하고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특별히 개개

인의 역량의 생산적인 합인 조직이 미래를 창조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

기 때문이었다. 드러커가 그 같은 관점에서 주목했던 이 시기의 조직은

전 시대에 없던 새로운 생산성을 혁신적인 조직 운영 방식을 통해서 보

인, 경영을 선보인“회사”
였다. 그는 회사 조직의 운영 원리들과 실제를

바탕으로 해서 경영학의 기틀을 마련했고, 나아가 회사의 경영적 능률성

이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어 나타나는“생산성의 혁명Productivity Revolution ”

을 그 자신의 산업혁명에 대한 이해이자 비전으로 삼았다.

드러커가 보기에 산업혁명의 기술 혁신은 1770년대 중반 제임스 와트


James Watt 가 증기기관을 개발하면서 새로운 동력 기술의 등장을 통해 시작

됐고, 1829년에 철도가 등장하여 새로운 기술이 사회 대다수의 삶의 변화

의 일부가 되는‘사회적인 인프라’


가 되면서 완성되었다. 여기서 동력 기

술의 등장이 중요했던 이유는, 이전의 농경시대에서 대규모 가정을 이루

면서 살아야 했던 이유 중 하나가 노동력이었던 것을 생각해보았을 때, 사

회의 근간을 이루던 노동력을 인간과 기계의 결합을 통한‘생산성’


으로

대체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철도가 그러한 기술 혁신의

완성점이었던 까닭은 그것이 사회적인 인프라로서 인간 삶에서의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극복하는 기반이 됨으로써 일과 인간의 관계에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것이 산업혁명 시대 기술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기술 혁신만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기술도 결국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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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관계된 인간, 사회의 필요와 욕구에 의해서 그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

는다. 결국 기술 혁신은 사회 혁신, 즉 새로운 기술과 그 기술을 기초로

한 사회적 인프라를 중심으로 어떻게 사람을 새롭게 조직하고 그들로부

터 창조와 혁신, 생산과 능률을 끌어낼 수 있느냐와 연결하여 생각해야

한다.

사회 혁신의 측면을 보면, 와트가 증기기관을 개발한 16세기에 이미 새

로운 조직과 새로운 이론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가내

수공업이 동력 기관 등의 발달로 인해 공장제로 대체되어가기 시작했고,

이러한 새로운 생산조직은 곧 새로운 인간, 노동자를 낳았으며 그들은 사

회의 핵심적인 새로운 계층으로 자리잡게 됐다. 1810년에는 로스차일드

가 the house of Rothchild 가 등장해서 현대 금융업의 기틀을 마련했고, 지적재

산권, 보편적 법인격, 유한 책임, 노동조합, 상호조합 기술 대학과 일간신

문들과 같은 새로운 조직, 이론이 등장했다. 이러한 새로운 조직들과 이

론들, 기술 혁신이 만들어낸 사회적 인프라를 바탕으로 하여 오늘날의 행

정 서비스와 현대 기업, 상업 은행, 경영대학이 만들어졌고 여성의 사회

진출의 문이 열렸다.

이러한 기술 혁신과 사회 혁신을 바탕으로 드러커가 주목했던 인간의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는 자유의지의 집단적 움직임인“조직”


의 새로운

형태가 등장했다. 1881년에 시작된 프레드릭 윈슬로 테일러Fredrick Winslow


Talyor 의『과학적 관리Scientific Management 』
에서 발현되기 시작한“경영”

다.24)

간단히 말해 테일러의“과학적 관리”


란 노동자의 작업 목표와 그에 관한

작업 표준을 설정하고 다시 작업 표준에 따른 작업 방식을 결정하여, 그에

62
따라 작업 조직을 전체적으로, 효과적으로 규율하는 것이었다. 여기서‘전

체’
는 그러한 관리를 통해서 조직 내의 노동자 각자의 단점이 서로의 협업

에 의해서 극복되고 강점만 남아서 극대화될 수 있게 되어 있다.

여기에 드러커가 발견했던 개개인의 역량의 생산적인 합을 위한 조직

의 운영 원리로서의‘경영의 씨앗’
이 있다. 오늘날에 와서 통상적으로 경

영은 기업에 관한 것이고 그 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운영된다고 하

지만, 드러커는 영리 행위란 기업의 존재 조건bottom-line 이지 결코 존재의

목적으로 승화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물론 기업도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

으려면 이윤을 남겨야 한다. 그러나 이윤은 소비자가 주는 것이므로 목적

은 소비자에게 맞춰져야 한다.

따라서 드러커가 본 경영의 목적, 기업의 목적이란 소비자를 창조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러한‘내부의 비용’


이 아니라‘외부의 필요’
에서 조직

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관점에 대한 영감은 테일러가 주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드러커는 테일러에게서 외부의 가치와 필요를 위해서 내부

의 자원을, 각자의 약점은 보완되고 강점은 집약되고 극대화될 수 있는

방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25)

지난 세기는 경영의 세기, 회사를 중심으로 한 생산성의 혁명이 일어난

시기였다. 경영은 이제 전문용어가 아닌 일상어가 됐고, 경영이 발전한 지

난 100년 동안 인류의 GDP는 300배나 증가했다.26) 그 이유는, 드러커가

주목했던 것처럼, 그들이 놀랄 정도로 생산적이기 때문이었다. 경영의 요

점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 그 원리와 실천에 대해 눈이 열린 사람들은

어떤 일에 대한 성과의 정의를‘외부의 필요를 만족시키고 있는가 하는 그

결과, 존재의 목적, 조직의 사명’


에 의해서 내린다. 다시 말해 그들은 한두

63
명의 카리스마적인 리더나 스타플레이어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

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부이기 때문이다. 조직은 그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또 않아야 한다. 조직의 존재 목적은 외부의 필요를 내부 구성원들

의 강점의 생산적인 합으로 채우는 공헌을 위하는 데 있다. 따라서 그들은

그 사명을 따라서 하나로 통합되고 하나로 규율되어 움직인다. 이들 경영

조직은 한두 명의 카리스마적인 리더나 스타플레이어에 의해서 움직이는

조직들을 경쟁의 무대에서 밀어내기 시작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20세기 중반 알프레드 슬론Alfred Sloan 의 GM은 포

드Ford 보다 불리한 위치에서 경쟁을 시작했다. 당시 포드는 시장의 선두

주자였고, 자동차라는 상품의 대명사로 확실한 브랜드 지위를 가지고 있

었다. 그러나 슬론은 앞서 말한 경영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에는

새로웠던 전문경영진Top Management System 의 도입을 통해서 분산되어 있던

조직의 역량을 일점으로 집중시켰고 효과적인 의사결정체계를 통해서 운

영의 효과를 극대화시킴으로써 5년 만에, 놓쳤던 자동차 시장을 탈환했

다.27) 경영이 생산적인 까닭은 경영자 1인의 뛰어남이나 혹은 탁월한 브

레인을 갖춘 소수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영이 힘을 발휘하려면‘전체’
를 보고‘전체’
를 움직일 수 있어야 한

다. 즉, 가장 평범한 조직 구성원도 평균 이상의 공헌을 낼 수 있도록 조

직이 외부의 가치와 평가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 그 사고와 실

천의 일대 혁명이 경영이고, 그렇게 경영을 정신으로 삼는 경영 조직의

놀라운 생산성은 그들을 사회의 중심에 올려놓았을 뿐 아니라 동시에 전

세기를 생산성의 혁명이 일어난 세기로 만들었다.

64
“생산성의혁명” 은
지속될것인가? 그렇다면“생산성의 혁명”그다음은 무엇

인가?

사람들이 이 질문을 진지하게 다뤘던 까닭

중 하나는 20세기 중반 이후 IT 기술의 급격한 발달에서 산업혁명 초기에

일어났던 기술 혁신과 비슷한 새로운 변화의 징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드러커 역시 앞서 소개한 <이코노미스트> 기고문“앞으로의 길”


에서 그

질문에 대답하려고 노력했었다. 드러커는 1940년의 컴퓨터의 개발을

1770년대 중반에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했을 때와 비교했다. 비

슷한 충격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사람들에게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산업

혁명 시대에 와트의 증기기관이 철도로, 그리고 철도를 통한 우편과 통신

수단의 발달로 확장된 후에 실제적인 경제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던 것에

근거하여, 인터넷의 등장과 전 세계적인 보급이, 웹의 등장이, IT 혁명이

기술 혁신의 단계를 넘어서 사회 혁신의 단계로 확장되는 시작이라고 예

측했다.28) 최근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Harvard Business Review >의 편집자

출신인 IT 컨설턴트 니콜라스 카가 그의 저서『빅 스위치』


에서 IT는 이제

그 자체로 비교 우위를 창출하지 못하고 하나의 사회적 인프라로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주장한 것을 보면, 드러커의 예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29)

문제는 이 같은 정보화 사회에 대한 드러커의 입장이“생산성의 혁명”

의 비전과 다르게 미래에 대한 어떤 실질적인 대안과 방향을 제시하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무엇인가? 사회 혁신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이며, 새로운 세기를 이끌어나갈 조직은 과연 기업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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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새로운 조직체일 것인가? 경영은 과연 다음 세기에도 오늘날의 지

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새로운 조직의 운영 원리를

생각해야 하는가? 새로운 조직의 운영 원리는 개개인의 역량의 합을 통해

서 무엇을 창출해낼 것인가? 그것은 생산성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해서 드러커는 명확한 대답을 제시하지 않은 채 지난

2005년 우리 곁을 떠났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몫으로 남은 이 질문들을 드러커가 남긴 영속하는

아이디어, 역사의 흐름에 대한 분석틀을 통해서 스스로 풀어보기로 하자.

먼저 사회 혁신에 대한 질문의 답이다. 사실 드러커의 정보화 사회


Information Society , 혹은 후기 산업사회Post-Industrial Society 에 대한 입장은 그

사회의 모습을 설명해줄 뿐이지 그 내부를 움직이는 힘을 파악해서 분석

하기에는 취약하다는 것은 버클리 대학의 사회변화에 관한 이론가 마뉴

엘 카스텔Manuel Castells 에 의해서 일찍이 지적된 바다. 대신에 그는 네트워

크 사회Network Society 라는 개념을 우리가 지금 속해 있는, 변해가는 세상

에 대한 새로운 정의로 제시했다. 그가 정의한 네트워크 사회에서 네트워

크가 의미하는 바는‘IT 기술’


에 의해 사람들이‘서로 연결되어 있다’

것을 말한다.

물론 이러한 사람들 간의 상호 연결성이야 이전 시대에도 정부의 행정

망이나 기업의 유통망을 통해서 존재해왔다. 그러나 마뉴엘 카스텔이 보

기에 여기서 분명히 다른 것은 IT 기술이 사람들을 수평적으로 묶어준다

는 것이다. 그 점은 이전의 행정망, 유통망에서 존재하던 권력의 체계와

이윤의 사슬에 따른 수직적 관계와 분명히 다르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

네트워크 사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한 실체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

66
에서 그는 그의 네트워크 사회 이론이 정보화 사회, 후기 산업사회에 대

한 단순한 설명에서 그치는 주장보다 훨씬 더 분석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네트워크 사회에 대한 정의와 이해에 따라서

그가 제시한 네트워크에 기초한 사회 혁신은 1980년대 각국의 정부들이

실시한 탈규제와 자유화다. 그 덕분에 정보통신 인프라와 고속 교통 시스

템이 전 세계로 확장되어 자본 시장, 생산 시스템, 관리 시스템, 정보가

지구적인 차원에서 실시간으로 처리될 수 있어야 이루어지는 오늘날의

글로벌 경제가 등장했다.30)

그러나 카스텔의 이 답변도 충분하지 못하다. 사회 혁신이 일어나는 배

경과 그 과정을 그의 네트워크 사회 이론이 설명해줄 수 있을지는 몰라

도, 카스텔은“생산성의 혁명”
을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이 무엇일까 하는

부분, 지난 세기 주도적 위치를 차지했던 회사와 경영이 네트워크 사회에

서 어떠한 변화를 맞을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답변을 주지 못하고 있다.

네트워크의 수평적 구조가 회사의 수직적 유통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수직적 유통 구조가 붕괴된다면 경영은 기본 원리를 어떻게 다시

생각해야 하는가? 네트워크라는 사회 구조는 사람들에게 전에 없는“연

결성”
을 제공해주고 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촌 사람들이 정부

행정망, 기업 유통망 등 행정과 시장으로 제한된 틀을 넘어서서 자유롭게

직접적으로 가치를 상호 교환하고 온라인을 통해서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 가능성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어가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이 여전히 호기심의 영역에 남아 있

다는 것이 그의 다음 세기에 대한 분석과 전망의 한계다.

이러한 새로운 조직과 그 조직의 운영 원리와 관련하여 우리가 관심을

67
가져야 할 것이 디지털로 융합된 개개인의 지성의 합과 그 지성의 창조성

에 관련된 이슈인“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 ”


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이

러한 집단지성이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서 급격히 활성화되고 있는 동

시에 그에 의한 사회적 생산의 활용 범위와 그 결과물의 정도가 이제 무

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집단지성이“개방·

공유·창조”
의 패러다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그것이 경제적 보상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기 때문에 기존의 상업적 생산

을 넘어서는 사회적 생산으로서, 새로운 조직 운영 원리로서 가능성을 보

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단지성의 대표적 사례는 열정적 아마추어들이 프로들의 집단

인 회사로서도 하지 못할 MS에 대항하는 운영체제인 리눅스와 브리태니

커에 견줄 수 있는 무료전자백과 위키피디아와 같은 대작 프로젝트들을

성공시킨 것이다.

사실 리눅스와 위키피디아 말고도 집단지성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례들이 있다. 미항공우주국 NASA,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 에

서는 화성 탐사를 할 때 수많은 인터넷 자원봉사자들을 받아서 그들의 도

움으로 행성 표면의 구멍인 크레이터를 찾아내고 화성의 전체 지도를 만

들어낸다.“프로젝트 구텐베르크Project Gutenberg ”


라는 고전 도서 디지털화

사업은 셰익스피어부터 스탕달에 이르는 6,000권이 넘는 지성들의 고전

들을 전부 인터넷 자원봉사자들의 자발적인 도움으로 디지털화해냈다.

심지어“도우 네트워크Doe Network ”


라는 사건 수사와 해결에 관련된 프로

젝트까지 등장하여 전 세계 미해결 범죄나 실종 사건을 인터넷 자원봉사

자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100건 이상 해결했다.31)

68
그러나 이러한 집단지성이 디지털 시대의 무정부주의에 불과하다는 주

장에도 일리는 있다. 집단지성의 정체가 무엇인가? 더 많은 사람들이 참

여했다고 해서 반드시 더 지성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집단이 온라인

으로 옮겨간다고 해서 그것이 더 지성적이 된다고도 할 수 없다. 이는 수

학으로 따지면 함수 같은 것이다. 집단의 참여가 의사결정에 관여하게 되

었다는 것을 원인으로 넣는다고 해서 반드시 그 결과물이 지성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것을 지성적이라고 단정한다면 그 이유는‘이익 집단적’


이라

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여론이 사회를 주도하건, 혹은 대규모 집회를 조

직할 수 있는 탈제도적, 저비용, 고효율의 방법을 찾아내어 일시적으로

적어도 지금은 그 여론이 내 편을 들고 있다면, 그 여론에 좋은 이름을 주

는 것이 유리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그것이 집단지성이 주목받을 만한

많은 사례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이유일 것

이다. 이는 집단지성에 대한 선도적인 연구를 하고, 그것이 온·오프라인

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원리임을 밝혀낸,『대중의 지혜The Wisdom of


Crowds 』
를 쓴 제임스 서로위키 James Surowiecki 의 조언과도 일치한다.

그는 대중의 지혜가 조건반사는 아니라고 했다. 음식을 잘 만들려면 재

료, 조리법, 요리사의 숙련도 등이 모두 중요한 것처럼, 대중의 지혜가 일

어나려면 의견의 다양성 diversity of opinions , 독립성 independence , 분산화


decentralization 와 집합성aggregation 이 모두 지켜져야 한다.32) 이는 한 가지

조건만 빼먹어도 답이 엉뚱해지는 수학의 문제풀이 같은 것이다. 답이 엉

뚱해진다는 것은 대중이 만들어낸 것이 모두 진리도, 지성도 아니라는 것

이다. 저 조건들이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오는 진리와 지식은 때로는

69
잘못됐다. 그 대중이 바로 소피스트의 편을 들어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마시게 했고, 그 대중이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지 않았

던가. 그러나 의견은 언제나 다를 수 있어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개개인의 합은 어떠한가? 전보다 더 빨리, 더 많은 사람을 더

쉽게 대중 동원에 참여시킬 수 있다면 인터넷이 더 지성적이 된 것인가?

네트워크 환경을 이용해서 우리가 대규모 협업을 발휘한다는 것이 우리

가 더 깊은 생각과 그 생각을 실현할 수 있는 의지와 용기를 갖춘 사회로

발전하고 있다는 뜻인가?“집단=진리”


가 아니라는 것은 다양성, 독립성,

분산화와 집합성을 지키기 위한 조직 운영의 방식과 원리가 중요함을 말

하고 있다. 즉, 문제는 집단의 지성이냐가 아니라 그것이 어떠한 집단의

지성이냐는 것이다.

그것은 찰스 리드비터Charles Leadbeater 가 최근에 발표한 집단지성에 대한

야심작인『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We-Think 』
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되는 부

분이다. 리드비터 역시 집단지성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이것도 다른 여타의 사회 연결 조직Social Network Organizations 과 마찬가지로

집단지성 프로젝트에 속한 집단의 중심적인 역할을 할 핵심 인력이 중요

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구성된 평등한 집단에 흥미

롭고 열정적인 목표를 제시해주고, 작업에 대한 동참을 위한 도구를 분배

해주고, 그 절차를 단순하게, 실험은 빠르게, 동료에 의한 평가는 넓은 층

에 의해서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각자가 분담하여 나눠 가진 작은

일들이 효과적으로 결합될 수 있도록 조직 운영 구조를 세워줘야 한다. 그

러한 작업들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할 때에는, 즉 이러한 핵심 인력이 형

성되어 있지 않을 때에는 시간과 비용만 초래하게 되고, 의사 결정은 애매

70
하고 규칙은 복잡하여 대규모의 협업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충분한 숫자

의 집단’
을 형성하는 데에서부터 실패하고 만다. 이러한 리더십과 핵심 인

력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것은 리눅스와 위키피디아를 비롯한 대다수의

성공적인 집단지성 사례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성격이다.33)

그러므로 집단지성은 온라인 이용자들의 네트워크를 통한 자동 지성이

아니다. 그것은 섬세하고 복잡한 지성이다. 여전히 인간의 조직에 대한

이해와 그 조직을 제대로 움직이기 위한 노력은 중요하다. 디지털이 그러

한 이해와 노력까지 기계가 대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조직의 관리가 문제라면, 이러한 핵심 인력을 심는 것이 문제라면, 회사

와 경영의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그들은 일반인들보다 이러한 경영 조직

을 만들고 핵심 인력을 구축하는 데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 있다. 그렇다

면 그동안 열정적 아마추어들이 이끌어오던 집단지성의 사례들이 유통망

의 영역으로 들어오지 않은 것은 단지 아직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

인 것인가? 전 세기에 이어“생산성의 혁명”


은 지속되는 패러다임인가?

사람들을네트워크로
이끄는정체 사실 이것이 2006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

뷰> 편집자 출신 IT 컨설턴트인 니콜라스

카와 당시 예일대 로스쿨 교수였던 요하이

뱅클러Yochai Benkler 간에 벌어졌던 논쟁의 핵심 주제였다. 이용자들의 네

트워크에 의한 생산은 집단지성 등의 사례를 통해서 주목받고 있다. 그러

나 언제까지 열정적 참여자들에 의한, 경제적 보상을 배제한 사회적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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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머무를 것인가? 이러한 집단 역시 조직의 원리가 필요하고 핵심 인력

이 중요하다면 회사가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용자

들의 네트워크 역시 곧 기업의 유통망 내로 포괄되지 않을까?

카가 먼저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2006년 7월 19일 그의 블로그

를 통해서 IT를 기반으로 한 정보 생태계에서 이용자들의 네트워크를 통

한 사회적 생산이 기존의 유통망에서의 상업적 생산을 앞설 것이라고 전

망했던, 당시 예일대 로스쿨 교수였던 요하이 뱅클러의『네트워크 부론


The Wealth of Networks 』
34) 의 주장에 대해, 인터넷을 통한 자유로운 지식과

정보의 교환은 아직 그것의 상업적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준비

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카는 온라인을 통한 이용자들의 대규모

협업이라는 것도 실제로는 대규모가 아니라 탁월한 소수가 주도하는 생

산임을 강조했다. 따라서 그 소수가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 소속해서 프

로젝트에 기여한다는 사회적 가치보다 자신의 결과물에 경제적 가치를

매겨서 오는 경제적 보상에 더 의미를 둔다면 이용자들의 네트워크는 충

분히 현재의 유통망 내로 편입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35)

이에 대해 뱅클러는, 당시가 2006년이었으므로 그로부터 수년 후인

2008년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그 당시의 주요한 웹 사이트들의 운영 방식

이 카가 말한 것처럼 경제적 보상을 통해서 운영하는 방식이 주도할 것인

지, 아니면 그 자신이 말한 것처럼 이용자들의 자유로운 교환에 의한 사

회적 생산이 주도할 것인지를 보고 그 미래의 경험적 자료를 바탕으로 해

서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를 판단하자고 응전했다. 예를 들면 그 시점의

다수 상위권 블로거는 자발적으로 글을 올리는 사람일까 아니면 돈을 받

고 블로그에 글을 게시하는 사람일까 하는 것이 그의 반박의 핵심이다.

72
뱅클러가 강조했던 것은 이용자들이 사회적 생산에 온라인으로 참여하

는 동기는 공동체에 소속되고 기여한다는 문화적 해석과 만족감 때문이

라는 것이다. 또한 이용자들의 온라인 네트워크에 의한 사회적 생산의 참

여가 비록 카가 말한 것처럼 소수가 그 생산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주도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좀더 큰 그림을 볼 것을 주장했다. 그 큰 그림에서

는, 실제로 그러한 공헌물이 만들어지는 것이 가능한 것은 애초에 방대한

참여자들을 확보했기 때문에 그 다양성 속에서 그러한 핵심 인재들을 추

릴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러한 대규모 참여가 가능했던 것은 앞서 말한 경

제적 보상을 초월하는 사회적 의미, 목표의 진정성과 신뢰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용자들의 온라인 네트워크는 경제적 유인 동기가 부

족해도 사람들의 참여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36)

여기서 두 사람의 주장의 배경을 좀더 깊이 들어가서 생각해보고 이 논

쟁이 가지는 의의를 정리해보자. 카가 이용자들의 네트워크가 유통망의

일부로 편입된다고 말한 근거는 경제적인 인센티브는‘먹고 사는 문제’


관련된 확실한 동기이고, 그것이 그들이 생산한 지식과 정보의 질을 높이

기 때문이다. 동시에 온라인 커뮤니티도 누군가의 관리와 감독 없이는 운

영되지 않는다. 이용자들의 온라인 대규모 협업에 의한 사회적 생산의 대

표적 예인 위키피디아도 양적인 측면에서 더 이상 팽창할 수 없는 지경까

지 이르자 이제 질에 신경을 쓰면서 좀더 상하관계가 분명한 엄격한 관리

체계를 띄게 된 것을 카는 그 근거로 들었다.37) 따라서 카의 주장을 완전

히 부정할 수는 없다.

이용자들의 네트워크라는 것도‘사람’


의 조직이고, 인간에게‘자유의

지’
가 있는 이상 인간을, 각각 개성을 띤 그 존재들이 어떠한 의미 있는 상

73
호작용을 만들어내는지 주목해보고, 그것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주도하는 소수의 핵심 인력과 그 전체의 방향성과 비전을 제시하

는 리더가 필요한 것은 지당하다. 네트워크의 어떤 논리적인 새로운 법칙

과 원리의 발견이 이에 관련된 미래의 모든 과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뱅클러가 말한 것처럼 리눅스, 위키피디아와 같은 이용

자들의 온라인 네트워크에 의한 사회적 생산이 가지는 참여와 창조의 문

화적 의미,‘함께 새로운 것을 만든다’


는 비전이 인간과 사회에 던지는 가

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경제적 보상 외에도 인간 삶에 중요한 것은 많다. 그중에 하나가 창조성

이다. 창조성은 인간을 동물과 기계와 구별시키는 가장 주요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MIT의 언어학 대가 노암 촘스키Noam Chomsky 교수의 주

장을 따른 것이다. 촘스키의 언어학 이론의 핵심적 내용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정의하는 것이 언어라는 것이다. 다른 부분에서야 인간은 천차

만별의 차이가 있지만, 적어도‘언어를 사용한다’


는 것만큼은 인간 모두

가 공유하고 있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학교 공부는 못하더라도 일

단은 하나의 언어, 모국어라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그 분명한 증거다.

이러한 인간 언어의 추상적인 특징은 결코 동물이 추종할 수 없는 복잡한

것이다. 나아가 인간 언어의 개방성은 한정된 메모리에서 이루어지는 반

복된 연산으로 추론하는 기계가 따라잡기엔 여전히 오묘하다. 따라서 이

보편적 언어의 사용은 인간을 동물로부터, 기계로부터 명확하게 구분해

준다.

동시에 이것은 인간의 언어습득장치Language Acquisition Devise 안에 존재하

는 보편 문법Universal Grammar 때문에 가능한 것인데, 이러한 인간의 보편

74
적 언어 능력에서 언어 대신에 창조성이라는 말을 넣어도 큰 무리가 없

다. 이 언어적 창조성이 지식을 창조하고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핵심이고,

지식의 성장과 발전이 일반적인 창조성의 발현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그

래서 한마디로 정의하면 이것이다. 보편 문법을 가진 인간은 보편 창조성


Universal Creativity 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그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

다. 왜냐하면 기존 사회는 소비를 위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소수가 창조

하면 나머지 대다수가 상품이 유통되는 채널을 통해서 그것을 소비하는

것이 유통망에 의한 기존 사회, 상업 사회의 정의다. 그 틀을 유지하는 것

이 그들의 이윤을 유지시켜주기 때문에, 기존의 유통 채널은 이용자들에

게 좀처럼 창조의 권리를 허용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반전의

기회가 왔다. 이용자들은 자신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행정망, 유통망을

벗어나서 IT라는 그들 간의 지식과 정보를 혹은 창조성을 연결할 수 있는

도구를 통하여 그들만의 리그,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가“정치적 인간만이 인간이다”


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의 정치

적 참여의 기회가 폴리스의 아고라에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

체제의 틀에서 벗어나자 정치적 참여의 기회는 극적으로 증대됐다. 마찬

가지로 지금까지 창조성은 자격증을 통해서 행정망, 유통망에 의하여 관

리되었다. 그러나 그 틀을 벗어난 새로운 장이 생겼다. 자격증이 아니라

공헌할 수 있는 능력, 지식과 정보 자체만으로 창조성을 평가할 수 있는

체제인 네트워크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것이 극적으로 확대시킨 창조성의

기회는 창조성의 밖으로부터, 아래로부터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예를 들

75
어 대부분의 창조성, 혁신들은 미국의 사례만 들어도 79%가 이러한 제도

적인 틀 밖에서 온 것이다. 사무용품 공급 업체의 대표주자인 스테이플스


Staples 의 히트 상품 중 하나가 워드락Wordlock 인데, 이것은 스테이플스가

자체 개발한 것이 아니라 해마다 열리는“오픈 이노베이션”경쟁 제도인

“인벤션 퀘스트Invention Quest ”


의 우승작이다. 덴마크계의 완구회사인 레고
Lego 는 새로운 마인즈톰스 키츠Mindstorms Kits 를 만들기 위해서 마니아 lead
users 를 활용하고 있다. 2005년에 나온 최상위 15개의 의약품 중 7개는 애

초에 그것을 상업화한 회사에서 개발한 것이 아니다. 역시 의약계의 주요

한 연구 개발자 중 평균 40%는 의약계의 틀 밖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38)

즉 보편적 창조성이 네트워크를 통해 그 창조성을 발현할 수 있는 기회

가 민주화되자 그것이“창조성의 혁명”


으로,“혁신의 대중화”
로 나타나

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애초에 그 집단이, 그 대규모의 사람들이 왜 네트

워크에 있었는지를 설명해준다. 경제적 이윤이라는 동기 외에도 그들의

참여 동기의 본질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정의, 능력, 창조

성에 대한 잠재적 실현 욕구 때문이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서로위키, 리드비트가 지적한 것처럼 집단지성은 엄

격한 조건을 통해서 발현될 수 있고, 카가 주장한 것처럼 그 조건 중 하나

인 핵심 인력을 경제적 보상에 의해서 사들일 수 있어 유통망에 포함될

수도 있겠지만, 뱅클러가 말한 것처럼 집단지성의 최적의 발현 장소는 여

전히 이용자들의 네트워크, 소셜 웹 생태계의 중심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창조 본능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창조할 수 있는 능력

이 있고, 창조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며, 그것은 결코 경제적 보상으로

완전히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76
사회적상상력과
인간의의지가 결론적으로 이러한 네트워크 사회의 집단

결합될때 지성의 발현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은 인간의 보편적 창조성이 웹을 통

해 사회 전체로 확대되는 소셜 웹 시대의“창조성의 혁명”


이다. 그러나 그

것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조직을 이끄는 사람들의 노력

과 그러한 집단지성을 통한 창조성을 수용하려는 사회의 자세가 함께 맞

물려야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남은 과제는 이것이다. 이 목표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피터 드러커가 지난 세기에“생산성의 혁명”


이라는 목표를 어떻게 달성

했는지부터 생각해보자. 1998년에 잭 비티 Jack Beatty 가 쓴『피터 드러커가

본 세상 The World According to Peter Drucker 』


39) 에서 보면, 그가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힘은 그의 예측성이 아니라 그의 비전이 가지고 있던“사회적 상

상력Social Imagination ”덕분이었다. 그의 예측이 과학적으로 정확성이 있었

다기보다는 그 사회적 상상력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도덕적 행동의 촉구

가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대를 형성했고, 그렇게 형성된 공감대가 그들의

실제적인 행동으로 이어져서 그것이 단순한 비전으로 머물지 않고 미래

로 현실화됐다는 것이다.40) 이러한 평은 경제학, 경영학 어디에서도 학

문적으로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으나 현장에서는 만인의 스승이자 최고의

경영 구루로 존경받았던 그의 전력을 생각해볼 때 일리가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최종적으로는 이 창조성의 혁명이라는 사회적 상상력이 더 많은 사람

들에게 공유되고 설득력을 발휘할 때, 그래서 비전에 인간의 의지가 더해

77
졌을 때만 이 비전이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그것 역시 반복되는 역

사의 교훈 중 하나다. 흔히 우리는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의

『군주론 The Prince 』


을 기준으로 중세와 근대의 정치철학을 나눈다.41) 그렇

게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마키아벨리의 사회적 상상력이 인간의 의지를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대변혁의 시기인 르

네상스에 니콜로 마키아벨리가『군주론』


을 써서 이탈리아 소국의 군주들

을 깨우고 그들에게 정치를 당위적인 윤리적 명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를 보고, 악이 있다면 종교의 가면 뒤로 숨어 피할 것이 아니

라 당당히 힘으로 맞서 싸울 것을 촉구했을 때, 마키아벨리의 당대 사회

에 대한 분석은 단순히 사회의 흐름을 읽고 그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 등 강대국이 이탈리아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

한 그 시점에서, 독립을 지키고 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자신의 고국 플로

렌틴의 지도자들이 정치 현실에 대해 자각하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거기에서 그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드물게 주어지는 운명적 기회

를 기존의 사고, 당대의 도덕적 관념을 벗어난 새로운 시각과 관점인 근

대 정치철학과 공화국이라는 새로운 비전, 그 덕목을 가지고 쟁취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비록 그의 시대는 아니었으나 그의 뒤를 이은 많은 사람

들이 그의 사회적 상상력에 의지적으로 동참한 결과, 공화국은 하나의 국

제 질서로 자리잡았고, 오늘날 우리는 그가 꿈꿨던 독립성과 자주성이 지

켜지는 공화국에서 발전한 근대의 국민국가 Nation-State , 그리고 그 국가들

이 이루는 국제사회International Society 를 살고 있다.42)

창조성의 혁명도 마찬가지다. 드러커의 혜안을 가지고 있더라도, 분석

의 정확함과 엄밀함이 있을지라도, 그렇게 제시한 비전이 바로 미래가 되

78
지는 않는다. 그것을 미래로 만드는 것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몫, 우

리의 역할이다. 민주주의자 없이 민주화가, 기업가 없이는 경제 발전이

불가능하다. 창조성의 혁명도 예외가 아니다. 소셜 웹 시대의 창조성의

혁명, 그 사회적 상상력에 우리의 힘과 의지가 합쳐질 때, 그때만이 모두

에게 창조의 문이 열린 사회가, 인간의 보편적 창조성이 인정되는 사회가

이루어진다.

79
Being Social web 05 창조성의혁명을위한
소셜아키텍처

창조성의혁명을
방해하는것 시대에 꼭 창조성의 혁명을 돕기 위한 흐

름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업시대에도

개인의 자유로운 정치활동과 경제활동을

지원하고 보장하기 위한 흐름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에 역행하여 인

간을 더 통제하고 억압하기 위한 사회제도와 사상이 강화되기도 했다.

20세기의 대표적 정치철학자 중 한 사람인 칼 포퍼는 왜『열린 사회와

그 적들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


을 1945년 세계대전이 끝나고 본격적인

이념의 시대가 막을 열 때 써야만 했던 것인가? 그것은 그가 보았던 개인

의 이성과 그 이성의 합의에 의한 사회, 개인주의와 이성주의가 기초가

된 열린 사회, 상호 비판을 통해 오류를 수정해나가는 합리적 사회의 실

현이, 자유롭게 전개되어야 할 개인의 의견과 주장을 통제하는 전체주의,

나아가 그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한 역사의 변화를 부정하는 역사주의의

흐름에 의해서 저지될 위험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80
그럼 창조성의 혁명은 어떨 것인가? 시대는 흘러 이제 정부 행정망, 기

업 유통망 외에 시민들, 이용자들의 네트워크가 살아 숨쉬는 시대가 됐

다. 그리고 네트워크는 조금씩 그 세력권을 확장해서 이제 정부 행정과

기업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과거엔 밀실에 숨어서 행하던 행정

과 경영이 이제 만인에게 공개되고, 공개된 정보는 네트워크의 대규모 협

업을 통해 또다시 새로운 형태의 지식과 정보로 진화한다. 즉, 현재 네트

워크는 이제 그들만의 잔치를 넘어섰다. 네트워크의 영향력은 사회 전반

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이제 소셜 웹이 창조성 혁명으로 진전되는 경계선

에 우리는 서 있다.

문제는 이 변화의 속도에 기존 사회의 틀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의 틀이라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강제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을 제한한다는

측면에서 법과 제도를 가리킨다. 그 제재력이 변화의 촉진을 방해하는

‘장애요소’
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포퍼의 열린 사회의 적이 전체

주의와 역사주의의 구속력이었다면, 우리가 꿈꾸는 소셜 웹 시대의 적은

변화에 대한 저항, 그것을 유지 가능하게 해주는 사회적인 틀이다.

비근한 예를 가지고 생각해보자. 국내 아이폰용 앱스Apps, 어플리케이션. 응


용 프로그램 개발자로 주목받았던 사람 중에 2009년 당시 경기고 2학년이었

던 유주완 군이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그가 만든 무료, 유료 프로

그램이 모두 해당 랭크에서 1위를 할 정도로 많은 이용자들의 지지를 받

고 있다. 그가 만든 무료 프로그램은“서울 버스Seoul Bus ”


로, 지도를 바탕

으로 수도권 내 버스의 도착 시간을 알려준다. 많은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버스 도착 시간을 알 수 있는 앱스는 매우 유용했다. 이 무료

81
프로그램은 단기간에 국내외 20만 명의 이용자를 얻을 정도로 폭발적 인

기를 얻었다. 그러나 경기도는 이 무료 프로그램이 경기도의 버스정보시

스템을 무단으로 이용했고 문제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이유

로 12월 중순, 서비스 중단시켰다. 결국 이에 경기도 관청에 민원이 빗발

쳤고, 끝내 경기도는 백기를 들고 서비스를 재개했다.43)

위의 이야기에는 사실 여타의 사례들에서도 반복되는 몇 가지 공식 같

은 원리들이 있다.

1. 우리는 이용자의 혁신 사례를 보았다.

시민이자 대중교통 이용자인 한 고등학생이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필요

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평소 컴퓨터 프로그래밍 실력을 바탕

으로 무료 앱스로 만들어서 애플 앱스토어에 올렸다.

2. 법과 제도는 이에 산업시대의 굳은 사고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먼저 경기도의 버스정보시스템을 무단으로 이용했다는 지적에 대해서 말

해보겠다. 경기도의 버스정보시스템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시민들이 그

것을 활용하도록 공개해놓은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공개된 자료의 저

작권은 그것이 더욱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설정되는 것이 합리적이

다. 따라서‘무단으로 이용했다’
는 지적은 그 합리성과 대치된다.

나아가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연결성을

통한 창조성’
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IT는 사람들

을 서로 연결시키고, 서로 간에 연결된 지식과 정보를 통해 사회적 효용

을 만들어낸다. 산업시대의 기계들은 소유자가 중요했겠지만, 정보화시

82
대의 기계들은‘연결성’
이 중요하다. 연결성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책

임 소재를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따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3. 이러한 법과 제도의 제재는 결국 많은 사람들의‘반발’


을 일으켰다.

반발의 근거를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이 앱스가 통용되는 것

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빗발치는 민

원을 제기했고 관청은 그들의 요구를 수락했다. 다시 말해 이 앱스가 제

재를 당해서 설사 사용이 금지되었더라도 충분히 다른 앱스가 등장해서

같은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이들의 거센 요구는

그들의 강력한 수요를 스스로 증명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무엇인가. 네트워크는 성장하고 그것이 사회를 변화시키

려고 하는데, 기존의 법과 제도는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

고,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그 변화를 범법으로

몰고 규제의 대상으로만 삼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응한다는 것은 네트워크에 대한 기존의 법과 제도의 무

지를 지적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그들이 옹호하고 있는 것이 사실은

‘사회 정의’
가 아닌‘변화하지 않기 위한 변명’
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히

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넉넉

한 사회적 틀, 제도와 문화를 디자인해보는 것이다.

사실 기술의 혁신에 따른 새로운 사회적 환경이 등장했을 때 그에 대응

해 법과 제도, 문화를 새롭게 디자인할 필요는 시대의 변화가 일 때마다

반복하여 요구되었다. 그것은 바로 전 시대인 산업시대에도 예외가 아니

83
었다. 한 예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의 창시자이자 현재 하버드 로스쿨 교

수인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 이 2007년 세계 지식 포럼 TED에서 가진

“창조성을 질식시키는 법들Laws That Choke Creativity ”


이라는 강연의“기술의

혁신에 따른 사회 변화, 그리고 그에 따른 법 개정의 필요성”


의 내용에서

생각해보자.

레식은 산업혁명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동력기관의 발달에 따른 교통수

단이 급진전하던 시대를 이야기한다. 그 시대의 토지에 대한 소유의 개념

은 단순히 소유한 토지의 밑과 위였다. 따라서 그 토지 위를 지나가는 것

은 정당한 권리의 침해였다. 그 당시에는 이것이 상식적인 법이었다. 그

러나 비행기가 등장했다. 비행기는 자유롭게 땅 위를 날아다닌다. 그렇다

면 이것은 토지 소유자의 권리를 침해한 것인가?

1945년 미국의 두 농부인 토마스 리Thomas Lee 와 티니 코스비Tinie Cosby

가 이에 대해서 소송을 걸었다. 그들의 닭들이 비행기가 나는 모습을 모

방해서 닭장을 넘어 날아오른다는 주장이었다. 이 토지 소유권에 관련된

법은 블랙스톤 경Lord Blackstone 으로부터 내려오는 100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 대법원의 대법관이었던 윌리엄 더글라스William


Douglass 는 100년의 전통이 있기는 하지만 산업화된 현대에 맞지 않는 법

률이므로 소송에서 이 농부들의 편을 들지 않기로 했다. 이 농부들의 편

을 들었다가는 모든 비행기들이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것은 상식이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그 전의 상식은 토지 위를

해당 토지 소유권 자의 허락 없이 지나는 것은 불법이었지만, 같은 법률

로 불법을 말하기엔 시대가 너무 변한 것이다.44)

결국 문제는 우리가 더글라스 대법관이 말했던 상식을 잊었다는 데 있

84
다. 법이라는 것도 한 시대의 사회적인 관념과 의식이 제도로서 구조화된

것이다. 다시 말해 시대의 변화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규정하는 법과

제도의 기원을, 형성 과정을 다시 생각하면서 어떻게 개선하여 나가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닭이 비행기를 쫓아 닭

장을 넘어 날려고 하기 때문에 모든 비행기들이 함부로 개인 소유의 땅을

넘나들지 못하도록 하늘을 규제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고 말 것이다. 그러

나 그것이 상식적으로 될 일인가? 그렇게 변화는, 새로운 시대의 감수성

은 기존 법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개선을 요구한다. 이렇게 보았을 때 우

리는 어떻게 이용자들의 네트워크의 중요성에 대한 상식을 갖출 것인가?

나아가 그 상식을 반영한 좀더 넉넉한 틀에서 지속적인 기술 혁신과 그를

토대로 한 인간 조직의 발전, 사회 혁신에 기초한 창조성의 혁명을 이끌

것인가? 그를 예고할 수 있는 충분한 사회적 조건들을 우리는 갖추고 있

는 것인가?

시대를반영한상식,
넉넉한사회적틀이 충분한 사회적 조건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필요하다 위해 다시 산업시대로 돌아가보자. 공장은

그냥 지어지고, 학교는 그냥 생기고, 병원

은 그냥 운영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기본적으로 설치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컴퓨터로 따지면 넓은 의미에서의 운영체제라고 하는 것이 필

요하다. 오프라인 세상에서는 그것을 인프라라고 부른다. 먼저 수도가 필

요하고, 전기가 필요하고, 도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물을 대고 기계를

85
돌리고 원재료와 가공한 제품을 옮길 수가 있다. 일단 인프라부터 깔려야

그다음의 발전을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조성에도 인프라라는 것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 인프라

를 우리는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 것일까? 웹 생태계의 인프라를 세 가지

로 아주 간단하게 구분해보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온라인 디지털 콘텐

츠라 할 수 있다. 웹 생태계는 그것을 작동하는 물리적 기반인 하드웨어,

그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해서 일종의 사고체계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도

와주는 소프트웨어혹은 코드, 그리고 코드라는 뇌 속에 들어가 있는 내용물

인 온라인 디지털 콘텐츠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빠

지거나 중복되는 것 없이 전체를 들여다볼 수 있다.45)

먼저 하드웨어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의 웹 생태계 환경은 좋

은 편이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보급률은 세계적인 수준이고, 그 속도도

빠르고 안정적이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보면 국내 웹 생태계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에

대한 호환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가 있다. 예컨대, 대부분의 관공서들에

설치된 보안 프로그램은 파이어폭스 등과 호환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대

부분의 핵심 소프트웨어들을 경쟁력 있도록 자체 개발을 하지 못하여 외

국산에 의존하여 비싼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는 현실을 면치 못하고 있다.

V3나 한글 워드프로세서 같은 것들도 정부의 보호와 지원이 없었다면 지

금 수준의 명맥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호환성에 대한 부분은 호환이 되지 않는 프로그램 등에 대해서

도 이용자층이 두꺼워지면 시장의 압력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는 부분이다. 외산, 국산 프로그램의 문제는 창조성의 혁명으로 가기

86
위한 인프라라는 측면에서의 안건은 아니다. 이 부분으로 파고들면, 결국

보호정책과 개방정책 등 경제 부문의 논쟁, 산업의 육성을 위한 교육 지

원 등의 정책 관련 이슈와 엉켜 들어가는데, 그것은 해당 분야를 중심적

인 주제로 삼는 다른 책들에서 다룰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창조성의 혁명이라는 것은 특정 국가나 민족과 유독 연관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보편성에 기초한 것이다. 따라서 외산이냐, 국산이

냐가 문제시되는 것은 국가 경쟁력 등의 문제 외에도‘국가적’


이라는 어떤

특정한 지역, 종족에 기초한 인식과 주장이 있는 것이므로 창조성의 혁명

과 바라보는 가치라는 측면에서는 같은 궤도를 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창조성의 혁명을 위한 근본적인 인프라를“콘텐츠

층 layer ”
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간단한 예로 생각해보자. 아무리 건강한

몸과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어도 교육받지 못해서 머리 안에 든 것이

없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빈곤한 두뇌 안에 창조성의 혁명을 위한 인프라를 어

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웹 생태계에서 생산하는 것

은 지식과 정보다. 그러나 우리가 웹에서 무엇인가를 복사하는 데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

것은‘유’
에서‘유’
를 창조하는 것이다. 법적 용어로 생각해보면 1차 저작

물에서 2차 저작물을 만드는 것이다.

글로 쓰는 것이야 1차 저작물을 인용해 2차 저작물을 만들 때 제대로

인용 표시만 한다면 별문제가 안 되지만, 음원이나 사진, 영상일 경우 심

각한 문제가 된다. 저작권 위반으로 고소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9년 2월 다섯 살 난 아이가 유명가수 손담비의 <미쳤어>를

87
따라 부른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당한

사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사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공공영역에 속한 콘텐츠들을 생각해보

자. 창조성의 혁명을 위해서는 이 자료가 절실하게 많이 필요하다. 왜냐

하면 공공영역에 속한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것들로, 말 그대

로 걱정 없이 쓸 수 있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쌓아 올리기 위한

방법은 산업시대에 우리가 만들어놓은 콘텐츠들의 저작권 보호기간을 단

축하는 것인데, 산업계의 거센 반발로 그 작업은 오히려 반대로 진행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이들 콘텐츠의 저작권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지

속적인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산업시대의 유통구조에 의거한 비즈니스 모

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식 기반 경제 사회, 즉 사회 구성원의 절대 다수가 지

식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사회에 걸맞은 제도적 틀인가? 따라서 우리가 창

조성의 혁명의 인프라 중 콘텐츠 측면에서 대규모 협업을 촉진시키기 위

해서는 그것을 다루는 법이‘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있는지’따지

지 않을 수 없다.

소유권과정보접근권
사이에서균형잡기 먼저 온라인 디지털 콘텐츠들이 대규모 협

업을 위해 활용되는 데 핵심적인 법적 이

슈가 되고 있는 지적재산권부터 생각해보

자. 이 법은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고 있으며, 어디에서 와

88
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46) 근현대적 지적재산권이 틀을 갖춘 것은 산업

혁명의 요람인 영국에서다. 당시 영국은 창조자에게 그 창조의 고단한 비

용을 감수할 동기부여를 주기 위해서 지적재산, 상품 특허와 저작물에 대

한 독점적 권한 exclusive right 을 허용했다. 이것이 현대 경영의 본산지인 미

국에 와서는 제품에서 서비스 영역으로까지 확장됐다.47) 그러나 이것은

지적재산권의 적용 범위가 확장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 배경

이 되는 기본적인 사고가 바뀐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정보화시

대에 살고 있지만 산업시대의 패러다임, 그 당시의 조직과 문화, 인간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까지도 굳건하게 그 법적 사고의 뼈대로 남아 있다.

다시 말해 앞서 말한 법과 제도가 창조성의 혁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사

례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의미다. 법이 시대적 변화에 따른 사회적 부

의 원천이 바뀌고 있는 흐름을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새로운 가치

창조의 편을 들어주기보다는 기존의 구조를 유지하는 데 힘을 보태는 역

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미래학자로 유명한 와튼스쿨의 제레미 리프킨 Jeremy Rifkin 이

그의 저서『소유의 종말 The Age of Access 』


에서 언급한 산업시대에서 정보화

시대로 이전되는 과정의 사회적 갈등의 요점, 법적 쟁점의 핵심인“소유

권 대 정보 접근권A2K, Access to Knowledge ”


의 구도에서 지적재산권이 처한

상황을 생각해보자.

리프킨이 말하는 시대적 배경은 산업시대에서 정보화시대로 이전되는

사회다. 이는 사람들에게 네트워크에 연결되고 접속하는 것이 점점 더 중

요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연결되고 접속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특정한 콘텐츠에 접근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89
콘텐츠들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갈 때, 더 상업화된다는 것이

다. 문제는 상업화 자체가 아니라, 어떤 콘텐츠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

로 옮겨갈 때 이전 법의 관성, 전통에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적으

로 과연 가장 이로운 것인가 하는 논의 없이 옮겨간다는 것이다. 둘째는

상업화된 범위의 영역이 인간의 경험과 관계 등을 포괄할 만큼 광대해졌

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프라인에서는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하는 것에

는 큰 제한이 없지만 온라인에서는 모두 소유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많은 경우 그 권리의 대가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한 현실의 추세에 기대어 생각해보았을 때, 만약 이러한 경향이 강

화된다면 본래 중립적이고 개방성을 유지하던 네트워크라는 공간은 인간

의 모든 삶의 영역을 더 상업화하는 곳으로 변질된다. 상업화 과정이 산

업시대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법과 제도의 틀 내에서 큰 변화 없이 유지

된다면,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사회, 소셜 웹은 이용자들의 네트워크에

의한 창조성의 혁명으로 가기보다는 상업성이 한층 더 강화되고 진전된

사회에 가깝게 된다. 이것은 상업성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까지

팔아서, 시민성을 상실해가면서 상업성을 추구할 가치가 있느냐 하는 의

문을 남긴다. 그것이 리프킨의『소유의 종말』


이 미래의 디지털 사회에 대

한 회의적 논조를 가지는 까닭이었다.

나아가 이윤을 창출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즉, 그 이윤은 새로운 시대를 열 혁신에 제도적 유인

동기를 주어서 만들어지는 상업성인지, 아니면 변화를 외면한 채 기존 유

통망의 틀을 제도적으로 유지시켜주어서 만들어지는 상업성인지 그것이

관건이다. 문제는 이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지속가능한 것이냐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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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그것은 미래의 기회로 연결된 길인가, 아니면 과거의 닫힌 문으로

돌아가는 길인가.48) 이것이 꽉 묶인 매듭의 정체다. 산업시대의 소유권

개념으로부터 발전한 지적재산권의 흐름에서 보면, 온라인의 대규모 협

업에 의한 사회적 생산 방식과 그를 위한 정보 접근권은 미래 사회에서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공간이 상업성에 오염되는 것을 막고 그곳의 시민

성, 창조성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임에도 불구하고 간과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매듭을 풀기 위해 두 갈등하는 권리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

라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충돌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먼저 소유권은 기계의 소유가 그 기계의 생산성을 소유하는 것이기 때

문에 의의가 부여되던 시절의 권리 개념이다. 산업시대에는 경쟁과 혁신

을 위해서 이 같은 개념이 중요했고, 그래서 기계를 넘어서 서비스 영역

에까지 그것의 창조자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허용해줬다. 창조하는 데 드

는 비용보다 모방하는 데 드는 비용이 더 적다면 누가 창조하려고 하겠는

가. 그와 같은 배경에서 창작자에게 그의 지적재산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

를 허용했다.

반면에 정보 접근권은 기계의 소유가 아니라, 그것을 통한 인간 네트워

크의 연결이 의미를 가지는 지금 이 시대의, 그리고 미래를 위한 권리 개

념이다. 바로 이‘연결’
이라는 측면에서 온라인 대규모 협업 등 새로운 협

업의 방식이 등장했다. 그것이 새로운 혁신의 원천이기 때문에 배타적 권

리가 시대적 적절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정보

접근권은 기존의 법과 제도에서 탄력적으로 수용되지 못하고 있다. 정보

접근권이 확장되면 기존의 산업시대에 중요했던 배타적 권리들과 충돌하

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소유권과 정보 접근권의 갈등이고, 유지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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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 간의 싸움의 정체다.

현재 상황에서는 법적 사고의 뼈대가 산업시대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정보 접근권보다는 소유권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법

과 제도는 현상유지적, 과거지향적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고 미래의 가능

성이라는 거시적 목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것이 법과 제도가 창조성의 혁명의 발목을 잡는 이유다. 그러나 이 상

황이, 과거에 집착하여 미래를 외면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판단일까? 애

초에 그것은 가능한 일일까?

그러나 이렇게 법이 막는다고 해도 그 불법의 원인이 사라지는 것은 아

니다. 여기서 불법의 원인이란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조직, 문화, 인간이

다. 이들은 소셜 웹의 확장을 통해서 사회 전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새로운 질서 속에서 오픈 컬처가 성장하고 있고, 사람들은 개방·

공유·창조를 점점 더 자연스러운 패러다임이자 삶의 일부로 여기게 된

다. 이것이 보편화되어가는 추세를 감안할 때, 그 추세를 불법화한다고

해서 원인을 근절할 수는 없다. 인터넷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인터넷이라

는 공간에서 경제학적 원리에 따라 정보의 복사 비용이 0이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 한,“제로의 감수성”


에 따른 오픈 컬처의 발전이 종식되지

않는 한, 디지털 감수성에 근거한 정보 접근권은 끊임없이 주장되고 실험

될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변화를 포함할 수 있는 좀더 큰 틀에서 이 모든 상황을

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소유권 대 정보 접근권”


의 전쟁에서 원고는 기

존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서 그대로 얻는 수익을 잃는 것을 배 아파하는

쪽이다. 그러나 이들이 유료 콘텐츠를 독점적 채널을 통해 배포해서 얻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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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을 잃는 까닭이‘단순 의식 부족’
이 아니라‘네트워크의 새로운 질

서’때문이라면, 이용자들이 그 유통망을 이용하지 않고도 자신들끼리 가

격을 배제한 가치에 따른 교환행위를 통해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재생산

해낼 수 있기 때문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이 문제를 생각해야 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피해자와 범법자 간의 대결이 아니라 소유권과

정보 접근권의 대결로서, 과거와 미래의 패러다임 간의 싸움이 일어나는

전환기의 시대적 갈등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어떻게 접

근해야 할까?

그것은 좀더 직접적으로 현재의 지적재산권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지적재산권은 어느 편에 서 있나? 기존 산업시대의 패러다

임에 기초한 지적재산권이 기존 산업 진영의 손을 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들의 논리체계, 사고의 흐름상에는 네트워크가 설 자리가 없다. 현재의

지적재산권이 네트워크를 배제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축소하기 위해서 존

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상황이 과연 현명한 것일까?

변화가 무조건적인 선이라는 말이 아니다. 또한 유료 콘텐츠를 마음대

로 유통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용자들의 네트워크의 대규모 협업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혁신의 효용

성을 고려해서 그 사고에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고

속도로에서 하루에도 수많은 교통사고가 일어난다고 해서 자동차 사용

을 금지하거나 고속도로를 철폐하지 않는다. 오프라인 세계에 대해서는

그 정도의 상식적인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 왜 온라인에 대해서는, 웹

생태계에 대해서는 그러한 균형감각을 유지하지 못하는가? 기존의 지적

재산권 소유자들의 권리는 보장하되, 그것이 미래 사회, 창조성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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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끄는 세기의 핵심적 성격인 네트워크의 연결성을 죽여서는 안 될

것이다.

지식 기반 사회에서 저작권 보호의 대상자인 콘텐츠 소유자들이 꼭 대

형 음반사나 영화사의 저작권 소유자만 해당될까? 자기 블로그에 관심사

를 게시한 경험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다는 점에서 절대 다수의 일반 대중

도 콘텐츠 소유자이고, 그들도 지적재산권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 전자의 편만 들고 후자가 중심이 되서 이끄는 미래 사회의 가

능성에 대해서는 등을 돌리고 있는가? 전자의 이해관계는 소유를 통한 배

타적 권리를 바탕으로 한 이윤의 창출이겠지만, 후자의 이해관계는 연결

을 통한 공유적 권리의 인정, 그리고 그 권리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부와

공공재의 창출이다.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절대다수인데도 전자의 권

리와 주장만이 존중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공리적으로 옳지 않다.

상황은 이러한데 기존 산업계나 국회, 법원에서는 그냥 손 놓고 가급적

하던 대로 하는 것business as usual 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것은 천

천히 끓는 물속에서 여유롭게 헤엄치는 개구리의 어리석음이다. 지금이

야 따스하고 기분 좋겠지만 끝에 가선 결국 죽고 만다.

네트워크에 기반한 새로운 문화, 조직, 인간을 불법으로 몰아가는 현상

이 지배적이라면, 사람들의 창조 행위는 법과 제도의 벽에 막혀 점점 더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창조성의 혁명은 한때 뜨거웠던 꿈에 불과해지

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과거를 택하고 미래를 버리는 그 선택의

연유가 단지 우리의 안일함과 생각의 깊지 못함, IT에 대한 사회적, 문화

적 성찰의 부족이라면 그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닌가?

이는 과거를 유지해서 미래로 가는 길을 지연시키는 전략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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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는 죽지 않는다. IT를 죽이고 연결성을 없애려고 하지만 그것이

IT의 본질인 이상, 그리고 우리가 IT를 떠날 수 없고 웹을 버릴 수 없는 이

상 변화는 언젠가는 촉발될 것이다. 기존 산업계도, 그 어느 기업도, 존재

할 수 있는 까닭은 소비자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이 언젠가 등을 돌

린다면, 정을 끊고 다른 좀더 개방적인 비즈니스 전략과 모델을 택한 기

업을 따라가게 된다면, 그날로 그들의 화려한 시절은 옛 추억이 되어버리

고 말 것이다. 따라서 상황 유지는‘공멸의 길’


이다. 이렇게 볼 때 창조성

의 혁명, 그 적들이란 사실상 우리의 굳은 사고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현명해질 것인가? 사자를 앞에 두고 모래에다가 머

리를 박는 타조처럼 눈앞의 변화를 보지 않는다고 해서 살아남는 것이 아

니다. 현명한 것은 그 운명에 꼿꼿이 고개를 들고 맞서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현명함이, 변화가 주는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 안일함을

깨우치는 의지가 필요한 때이다.

기존의 지적재산권 개념의 틀에 변형이 온다고 해서 창조성이 죽는 것

은 아니다. 물론 기존의 콘텐츠를 소유하고 배타적 권리를 통해서 독점적

이윤을 창출해오던 지대 창출형 기업들은 많은 위기를 겪을 것이다. 그러

나“위기=창조성의 죽음”
은 아니다. 오히려 소수 콘텐츠 소유자들에 의

해 독식당하던 사회 생태계에 더 많은 창조성을 꽃 피우는 계기가 될 것

이다. 더 다양한 콘텐츠 공급자들이 이용자들의 네트워크에 의해서 공정

한 평가를 받을 것이고, 더 많은 이용자들이 창조자의 대열에 진입할 것

이다. 상업형 창조성은 약화될 수 있으나 대규모 협업은 창조성의 혁명,

창조와 혁신이 일상화되는 추세는 증가할 것이다.

지적재산권은 역사적 유산일 뿐이다. 그것은 창조성을 촉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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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사회 전체에 더 좋게 쓰이기 위해 존재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지

적재산권의 소송의 핵심을 도덕의 법칙으로 보면 선과 악의 대립이지만,

이해의 관계로 보면 이것은 소유권 대 정보 접근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언어가 주조하는 현상을 넘어서서 그것의 실상, 실제로 어떻게 이

해가 갈리고 있는지, 그 권리와 이해 간에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사회 전

체와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새시대를위한
몇가지대안 “창조성의 혁명”
이라는 미래 사회의 가치

에 의의를 두고 우리의 법과 제도를 좀더

넉넉한 틀 안에, 새로운 계약 안에 포함시

킬 수는 없을까? 제도적으로 소유권 외에 정보 접근권도 법적 보호의 틀

안에서 미래의 대규모 협업을 위해, 창조성의 혁명을 위해 존중해줄 수

없을까? 그래서 우리 사회의 기존 창조성 외에 플러스 알파 창조성, 대

규모 협업을 잘 키우고 가꿔서 사회 전체의 혁신성을 제고할 수는 없을

까?

여기서 굳은 사고를 넘어선 비전 디자인, 전 시대부터 흘러 내려온 사고

의 틀을 넘어서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포괄할 수 있는 역동적인 사고의

한 예를 보도록 하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ces 49) 의 예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는 2001년 당시에는 스탠포드에 있다가

지금은 하버드 로스쿨로 옮긴 로렌스 레식을 중심으로, 역시 사이버 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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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 전문가인 제임스 보일 James Boyle , 마이클 캐롤 Michael Carrol , 몰

리 쉐퍼 반 호웰링Molly Shaffer Van Houweling , MIT의 컴퓨터학과 교수인 할 아

벨슨Hal Abenson , 변호사였다가 다큐멘터리 감독을 했고 지금은 사이버 법

전문가인 에릭 솔츠만 Eric Saltzman , 저명한 다큐멘터리 감독 데이비스 구겐

하임Davis Guggenheim , 일본의 기업가 조이 이토 Joi Ito , 공적 영역public domain

웹 출판자인 에릭 엘드레드Eric Eldred 가 함께 만든 것이다. 이용자들의 온

라인 집단 협업에 의한 사회적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서 창작자들이 자유

롭게 자기 콘텐츠를 공개하고 공유하고 리믹스할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

기 위한 새로운 제도적 틀, 저작권 계약을 만든 것이다.50)

이 라이센스를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KS마크”같은 것이

라고 생각하면 된다. KS마크의 기능이 구입한 제품의 기능, 안정성 등에

대한 품질보증이었다면 이 라이센스의 기능은 지식 기반 경제 시대의 다

수가 창작자가 된 사회에 대한 존중과 지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림1. 저작자 표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어떤 글, 그림, 음악, 동영상 등에 위와 같은 태그

가 붙어 있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1. 나는 이 저작물의 개방, 공유, 재창조 등을 모두 허용한다.

2. 다만 그 모든 과정에서 내가 이 창작물의 원작자라는 것은 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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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 라이센스는 일종의 그림 태그로서, 그림만 보면 모든 것이 가능한

한에서‘무엇이 제한되는지’
를 이해할 수 있다. 매우 직관적이고 손쉽게

저작권의 설정 과정에 창작자가 직접 참여하여, 스스로 자기가 원하는 저

작권을 선택해 본인이 의도한 바에 따라서 웹 생태계에서 지식과 정보의

콘텐츠를 창조하고 유포할 수 있다.

여기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첫째는 기존의 법과 제도의 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창조성, 집단 창조성에 대한 존중과 이해와 배

려다. 둘째는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기존 창조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는 것이다. 예컨대 만약 누군가가 내가 만든 콘텐츠를 다시 수정하는 것

이 맘이 안 든다고 하면 다음과 같은 그림을 태그 안에 추가하면 된다.

그림2. 저작자 표시, 리믹스 금지

그림1과 달라진 것은 태그의 오른쪽에 동그라미가 하나 더 생겼다는 것

이다. 그 동그라미는“리믹스 금지”


라는 표시다. 즉 내가 만든 콘텐츠를

제3자가 임의로 수정하거나 편집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콘텐츠는

있는 그대로 전달되어야 한다. 이러한 설정 조건은 기존의 상업적 창조성

에 따라 콘텐츠를 생산하는 측의 뜻을 만족시킬 수 있다.

이처럼 이 라이센스는 상식적 균형감각을 갖췄다. 나아가 위의 두 개의

설정 조건에“상업적 사용 금지”
,“동일 조건으로 유포”
라는 두 개의 설정

조건을 더 가지고서 창조자가 자신의 고유한 뜻과 목적에 따라 저작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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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설정하는 것을 도와준다. 다시 말해 저작권이 창조자의 변화하는 수

요와 가치에 따라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을 법과 제도의 내부

에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과거와 미래가 같이 살아 숨쉬고

있다.51)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러한 라이센스를 좀더 적극적으로, 사회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이와 같은 법적, 제도적 실험들을 권장하고, 웹 생

태계에서 오는 새로운 기회들을 제대로 발전시켜서 사회의 성장과 복지

를 증진시킬 수 있는 거목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앞서는 우리의 안일함을 지적했다. 과거만 먹고 살아

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게으른 사고와 기존 창조성밖에 보지 못하는 편

협한 시각에 주목했다. 한 단어로 그 둘을 합쳐서 정리하자면‘포만감’


다. 그것에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젖어서 젖었다는 것도 이미 잊은 것이

다. 생산성의 혁명의 끝에서 우리는 창조성의 혁명의 시작을 보고 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자. 경직된 사고의 틀, 산업시대에 뿌리내린 법과 제

도를 좀더 자유로운 공간, 더 많은 가능성을 약속하는 미래를 향해 열자.

그것을 위해 이처럼 제도적인 차원에서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산

업시대에 우리가 만들어놓은 법과 제도가 웹 생태계에서의 창조 행위에

대한 제한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를 넘어 문화적인 차원에서 중요한 것은 콘텐츠 소유권자들이 좀

더 개방적인 마인드를 가지는 것이다. 자선사업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구글의 초기 핵심 기술은 페이지 랭크 알고

리즘에 있다. 한마디로“검색 민주주의”


다. 검색할 때 특정한 소수의 권위

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의 절대다수, 그들의 선호도에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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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링크에 따라서 그 사이트를 상위에 랭크하겠다는 것이다. 구글은

그 기술을 바탕으로 시장을 장악했고 여전히 소셜 네트워킹형 광고 서비

스인 구글 애드센스를 비롯한 다양한 오픈 시스템을 통해서 시장 지배력

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막힌 곳에서 뚫린 곳으로 물이 쏟아져 흐르는 것

은 당연한 일이다. 그 덕택으로 구글은 시장에서 파도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성을 가지게 됐다.

따라서 콘텐츠 소유권자들은“오픈”


을 그들의 비즈니스 철학이자 모델,

전략으로서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을 그냥 올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

들이 IT 기기를 통해서 좀더 쉽고 빠르게, 편하게 연결하고 창조할 수 있

도록 그 시간과 비용을 최소한으로 낮출 수 있는 형태로 디자인되어야 한

다. 오픈은 전시용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공개된 콘텐츠를 통해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것을 돕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용자들 스스로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부분은 바로 리믹스 활

동 등을 비롯한“오픈 컬처”
에 대한 관심과 참여다. 오픈 컬처는 한마디로

개방, 공유, 창조 문화를 말한다. 내 것을 열어주고 남과 나누고,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창조성을 만들어내는“놀이”


다.

사실 사회적인 차원에서 보면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리눅스 토발즈와

전 세계 온라인 네트워크로 연결된 프로그래머 협력자들은 인터넷을 상

업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독점적 운영체계에 저항하는, 얼마든지 이

용자들에 의한 개정과 보완이 가능한 리눅스 운영체제를 만들어 보급했

고, 이제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서버 시장을 장악하는 것을 넘어서 위키

피디아 등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생산의 방식으로 그 적용 범위를 확장

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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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예로 일본 만화 시장을 꼽을 수 있

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재창조하여 공유하는 행위는 일본 만화·애니

메이션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일상화된 문화다. 그들이 서로의 창작

물을 게시하고 공유하는 매체인 동인지는 시장에서 이미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동인지의 최대 판매 행사인“코믹마켓”


은 1년에 두 번 개

최되는데 한 번에 평균 3만 5천 개의 동호회가 참여하며, 그 인원도 50만

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만화, 애니메이션 행사다. 오픈 컬처는 이용자

들에게는 창조적인 놀이이기도 하지만, 산업 전체로 보았을 때에는 새로

운 혁신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52)

그 같은 리믹스 컬처의 국내 사례로서“CC Mixter”53) 를 생각해보자.

이것은 현재 수많은 분쟁의 근원이 되고 있는 음원을 집단 창조의 원천

이 될 수 있도록 공개, 공유하는 운동이다. 본래 미국의 크리에이티브 커

먼즈에서 시작한 프로젝트가 한국으로까지 넘어온 것인데, 음원을 가져

간다고 할지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도록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

이센스를 해당 콘텐츠에 설정해놓은 것이다. 음악 창작 활동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소스를 인터넷에 공개해놓고, 음악판 오픈소

스 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참여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계속되지 못하다면 네트워크는 영양 결핍으로 말라 죽고 말 것이기 때문

이다. 네트워크의 창조성은 그 자체로서의 문화적 가치뿐만 아니라 산업

계 전체에도 새로운 혁신의 가능성으로 의의가 있기 때문에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정부와 산업계, 일반 대중의 이러한 노력 외에 또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인프라는, 이용자들의 온라인 대규모 협업의 경영적, 정책적 활용에

101
대한 좀더 심도 있는 연구와 연구 결과의 공유를 통한 사회 전체의 소셜

웹 시대에 대한 이해의 향상이다. 인터넷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하버드 로

스쿨에서 그와 같은 목적으로“인터넷과 사회를 위한 버크만 센터Berkman


Center for Internet and Society ”54) 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한국도 21세기 지식

기반 경제사회를 꿈꾸고 있는 만큼 국내에 그와 견줄 수 있는 웹 생태계

에 대한 분석과 전망, 비전의 실현을 위한 씽크탱크를 만드는 것이 필요

하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법과 제도가 꼭 부정적으로 작용할 이유는 없다. 특

허제도 등의 지적재산권의 발달이 초기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활동을 촉

진했던 것처럼 소셜 웹을 잘 이해하고 짜인 법과 제도는 이용자들의 네트

워크에 의한 사회적 생산이 사회 전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가능성과 실제적인 방법들이 있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문이 열려 있는데도 여전히 과거에 안주하고 현실에 만족하려는 것은 핑

계일 뿐이다. 소셜 웹이 점점 더 현실화되어가는 시대에 그러한 핑계를

댈 더 이상의 여유는 없다. 시대는 흘러 우리는 이제 그동안 분열되었던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하나로 합쳐지는 시대를 목격하고 있다. 사회의 아

날로그 영역들이 점점 더 디지털화되고 있다. 조금 더 지나면 종이신문보

다 전자신문을 더 많이 접하듯 전자책이 종이책을 압도하고, 그에 따라

오프라인에 잔존하던 지식과 정보가 모두 디지털화될지도 모른다.

변화의 속도는 실로 눈 깜짝하는 것보다 더 빠르다. 회로wire 를 타고 흐

르는 전자 electronics 는 빛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제 걷고 뛰고,

마차와 자동차, 기차와 비행기를 말하던 시대에서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102
사회로 들어가고 있다. 이것이 소셜 웹이다. 과거를 택할 것인가, 미래를

택할 것인가? 창조성의 혁명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그 변화의 기회를

스스로 놓칠 것인가? 산업시대의 제도적 틀을 넘어서서 소셜 웹 시대를

위한 제도를 준비하고 문화를 꽃 피우는 과제는 이제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숙제로 다가와 있다.

103
소셜 웹 시대에 통하는 리더십 l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시작하는 혁신 l 뱅크 오브 아메리카, 유니클로, 구글이 던

지는 메시지

기술적으로는 정부가 블로그를 운영하고 기업이 커뮤니티를 운영하면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물리적 연결과 심리적 연결은 다르다. 심리적 연결은 광케이블이 아니라 비전과 진정성의 회로를 따라

움직인다. 그런데 기존의 정책 홍보와 기업 마케팅이 제대로 되지 않는 까닭은, 거기에는 아직 권력과 이윤의 냄

새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웹 생태계의 조직들은 경계가 없고, 구속력이 약한 조직은 끊임없이 수

평적 구조를 만들며, 권력과 이윤으로 수직적 구조를 만드는 것에 대해 저항하고 그 개방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고 했다. 그렇게 보면‘낚는 인상’


을 주는 정부 블로그와 기업 커뮤니티에 이용자가 매력을 느낄 리는 만무하다.
PART 2
소셜웹은
이것이다르다
소셜 웹이다
Being Social web 06 소셜웹시대에
통하는리더십

리더가없는곳에
리더십이있다? 리눅스, 위키피디아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온라인 이용자들의 네트워크에 의한

실시간 협업, 그 집단적인 창조의 힘 덕분

이다. 여기서의“집단”
은 기존의 집단과 어떤 차별성을 가질까? 나아가

조직을 창조하고 지속시키는 리더십과는 어떠한 연관성이 있을까?

오프라인 집단이 가지는 분명한 특징 중 하나는‘경계성’


이다. 가족은

그 가족의 구성원이 혈연으로 결정되어 있다. 학교는 그 학교의 재학생,

졸업생, 교직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회사도 정직원, 비정규 직원 등의

구분이 있기는 하지만 분명히 소속원과 비소속원의 구별이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적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 국적에 따라 내국인과 외국인

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오프라인에서 어떤 집단에 속한다는 것은 때로는


다른 집단에 속하지 못하는 배타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성격들이 웹 생태계의 커뮤니티 구성원들에게는 매우

107
약하게 존재한다. 물론 어떤 커뮤니티든 그만의 취향이 있을 것이므로 한

커뮤니티 내의 사람들은 다른 커뮤니티 내의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을 것이긴 하지만 오프라인에서만큼 분명한 경계를 만드는 것은 아니

다. 웹 생태계에서 한 커뮤니티 내의 구성원이라는 것이 오프라인에서처

럼 필연적으로 다른 커뮤니티의 구성원이 되는 것을 배제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초입부에 설명한 미국 버클리대 정치학과의 위버 교수의

2004년 발표작『오픈소스의 성공 The Success of Open Source 』


을 보면 알 수 있

다. 소유의 문제에 있어서 오프라인 환경은 배타적이어야 말이 된다. 내

가 손에 든 천 원이 내 것이면서 남의 것일 수는 없다. 그러한 배타성은

소유에 기반한 권력, 이윤 관계, 그리고 그 관계의 맥락에서 설명되는 집

단의 형성과 유지에도 일관된 성격을 보인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소유

라는 것이 꼭 독점적일 수는 없다. 오히려 분산성을 통해서 전체 시스템

을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태어난, 정보 생태계로서의 생명력을 공유

성에 둔 인터넷의 속성을 생각해볼 때, 그곳에서의 소유권은 배타성보다

는 분산성이 더 자연스럽다. 따라서 분산성에 기반한 온라인 이용자들의

네트워크 관계 형성은 이전보다 배타적인 성격이 훨씬 더 약화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55)

그렇다보니 웹 생태계의 커뮤니티들은 형체라는 것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고, 수시로 움직이며, 그 규모의 변화도 시시각각이다. 그렇다면 이러

한 경계 없는 조직에도 리더가 존재하는가? 리더십이란 것이 필요한가?

이런 의문이 드는 이유는 이 조직이 마치 리더가 필요 없다는 듯이 움직

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누가 그러한 창조성을 명령하고 지시한단 말인

108
가? 그러한 사람이 없다면 과연 이 조직에도 리더가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러나 어쨌든 처음 그 일을 기획하고 시작한 사람들은 있다. 리눅스는

리눅스 토발즈Linux Tovalds 라는 핀란드의 괴짜 프로그래머가 처음 그런 대

안 운영체제를 만든 데서 시작됐다. 사실 그 운영체제도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위키피디아는 인터넷에 대한 상상력이 풍부한 지미 웨일즈 Jimmy


Wales 라는 증권 중개인이 처음 만들었다. 그는 지금도 그 일에 깊이 관여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만약 아무도 처음‘리눅스’


를,‘위키피디아’
를생

각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리눅스도, 위키피디아도 있을 수 없었다는 얘기

다. 그래서 적어도 이 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그 사실 자체로 오늘날 웹

생태계에서 대표적인 대규모 협업의 사례들이 만들어지는 데 크게 기여

했다.

그렇다면 처음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그들을 리더라고 부를 수 있을까?

몇 줄 안 되는 이메일로 자기가 만든 운영체제의 소스를 인터넷에 공개하

고, 사비를 조금 투자해서 웹 사이트를 만들고 무료백과사전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대수로우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웹 생태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많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저 잠시 반짝이는 빛으로 사라지지만 리눅

스와 위키피디아는 살아남아 번성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은 그들의 존재

와, 혹은 그들에게 리더십이 있다면 그것과는 또 어떻게 관계되는가? 한

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이슈다.

109
네트워크를이끄는
리더십, 리눅스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전통적인 리더십에

구글에서찾다 대한 이해의 틀로 과연 이들의 리더십을

잡아내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

제다. 가정에서 통용되는 리더십과 회사에서 필수적인 리더십에는 공통점

이 있지만 다른 점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이끌어야 할 조직의 차이 때문

이다. 회사의 영업 마인드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마음과는 다를 것이다. 따

라서 네트워크 환경에서의 리더십도 오프라인 조직이라는 차이 때문에 분

명 다른 특성을 가질 것이다. 그런데 그 특성의 차이를 무시하고 우리가

찾고자 하는 소셜 웹 시대의 리더들의 특성, 그들의 리더십을 정의할 수

있을까? 대답은‘상식적으로 아니다’


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명령

하고 지시하느냐라는 관점에서는 리더를 찾을 수 없었다. 온라인 네트워

크 조직은 지휘와 통제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직

의 분명한 차이를 생각하면서 소셜 웹 시대의 리더십을 생각해봐야 한다.

간단한 방법 중 하나는 먼저 네트워크 조직의 리더들이 오프라인 조직

과 공유하지 않는 특징부터 생각해보는 것이다. 결과인 특징에서부터 거

슬러올라가 원인인 조직의 차를 발견하면 차이점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것

이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리눅스 토발즈와 지미 웨일즈의 이름이 해당 네트워크 내

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목하고 싶다. 한 회사에서 CEO의 존

재감이 분명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네트워크 조직에서는 리더의 존재

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단순히 존재감이 없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역

할이 없다고 보아야 하나? 아니면 분명히 있기는 있으나 해당 조직의 구

110
조상 잘 보이지 않는 것인가?

일단 다른 조직들, 예컨대 정부 행정망이나 기업 유통망의 리더에게 존

재감이 있는 이유는 그들이 권력과 이윤의 상하관계에 따른 수직적 구조

를 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령과 지휘, 통제와 위엄에 따라서 운영된

다. 그러나 네트워크는 그와 같은 위계질서를 따지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

권력과 이윤의 상하관계를 만들려고 한다면 네트워크의 조직 구성원들은,

‘경계’
가 약하기 때문에 금방 그 조직 내에서 탈출하고 만다. 무료에서 유

료로 전환했다가 몰락했던 프리챌의 무수한 커뮤니티들을 생각해보자. 네

트워크는 행정망, 유통망에 존재하는 조직들과는 다르게‘수평적 구조’


기본적 특성으로 가지고 있다.

아주 쉽게 정의해보면 리더십은‘따르게 만드는 힘’


이다. 그렇다면 네

트워크 조직은 어떻게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권력기관에서는 정치적

힘에 의해서, 상업기관에서는 상업적 이윤에 이해서 권력과 돈 때문에 윗

사람의 말에 추종해야 한다. 그 외에 많은 이유들도 있겠지만 이것이 조

직의 구조적 특성을 고려해 생각해볼 수 있는 리더십의 기본적인 성격이

다. 그러나 그런 힘이 네트워크 조직에는 없다. 수직적 상하구조가 없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조직은 수평적 특성을 유지하면서 발전한다. 그렇다

면 네트워크 조직의 리더는 어떻게 그가 원하는 것을 참여자들이 하도록

만드는가?

참여자들의 실제 동기에서 생각해보자. 리눅스 이용자들은 왜 리눅스를

이용할까? 그들은 리눅스를 개선하는 일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일까?

위키피디아에 기고를 하는 사람들은 권력도 돈도 못 얻는데 도대체 왜 그

일을 할까? 기본적인 답은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네트워크에서는‘오

111
픈’
이‘질서’
이기 때문이다. 소유의 개념이‘독점’
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분산’
에 의해 존재하고, 그 분산력에서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 네트워크

다. 그곳에서는 한계생산의 비용이, 지식과 정보의 복사 비용이‘0’


이다.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가격은 장기적으로 한계생산의 비용에 수렴하게 되

어 있다. 따라서 네트워크에서는‘0의 가격’


이 지배적 감수성이다. 제로의

감수성에 의해서 가격은 배제되어 있지만 대신에 이곳에서는‘상호 인정’

이라는 가치 중심의 교환이 오간다. 바로 이것이 답이다. 이 답으로 권력

도 이윤도 없이 성립되는 관계와 참여를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호기심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용자는 왜 특정한 커뮤니

티를 택하는 것인가? 그것은 오픈의 질서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특

정한 커뮤니티, 그중에서 리눅스, 위키피디아를 택한 것은 어떤 이유 때문

일까? 이 질문의 대답에서 네트워크 조직의 리더십의 정체를 생각해보자.

한마디로‘사명’
과‘목적’때문이다. 리눅스를 리눅스답게, 위키피디아

를 위키피디아답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정체성’


이다. 리눅스는 독점적인

MS의 운영체제에 저항하기 위해 출발한 것이고, 위키피디아는 고가의 브

리태니커에 대한 대안으로서 등장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기본적인 성

격을 규정하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진 사명과 목적이다. 이것이 이들을 고

유한 커뮤니티로 만든다.

여기서 리눅스 토발즈와 지미 웨일즈가 한 일은 IT 기술의 연결성과 그

것에 기초해 형성된 대규모 협업에 이 일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는 신뢰

와 신념을 불어넣어준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은‘방향성’


을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방향성을 만드는 일은 오프라인의 리더들도 늘 하는 일이 아닌

가? 그렇다면 이 일이 무엇이 그렇게 특별해서 네트워크 조직의 리더로서

112
이들의 고유한 리더십을 정의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뛰어난 개인일지라도, 돈이 많은 자산가라고 할지라도, 혼자서

MS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만드는 운영체제에 대항할 수 있는 무료 운영

체제를 만드는 일에 나설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사람들

에게 같이 해보자고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참여한다면 가

능할 것이라는 비전을 보였기 때문에 그들이 참여한 것이다. 위키피디아

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똑똑하고 의지가 투철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아무리 용감무쌍하다고 할지라도, 혼자서 백과사전을 하나 만들라고 한

다면 당장에 손사래를 치고 도망갈 것이다. 그것은 결코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함께라면, 경계가 없는‘함께’


가 연결이라는 IT의

마법을 만나면, 그것은 가능한‘비전’


이 된다. 얼마나 멋진가.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지만 함께, 실시간 협업을 통해서, 전 지구적인 프로젝트에

동참한다는 것이.

이것이 바로 네트워크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의 정체다. 리더가 하는 일

이란 IT를 통한 연결성, 그것을 통해 발전한 대규모 협업으로만 할 수 있

는 놀라운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다. 현재 IT 업계의 태양인 구글의

비전은“정보의 민주화”
다. 이것 역시 네트워크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사용해야 달성할 수 있는 과제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의욕 있는 개인들을 동참시키고, 그들 간의 대규모 협업의 최대한의

발현을 위한 자발적인 오픈 컬처의 형성을 독려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면에서 볼 때 이들의 리더십은 정치적, 경제적 리더십이라기

보다는 오히려‘종교적 리더십’


에 가깝다. 물리적인 힘과 경제적인 동기

에 의해서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이상적 목표를 제시

113
하고 그 목표에 대한 공감과 도전을 통해서 조직을 형성하고 그 조직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성장시키는 것이 그들의 리더십의 핵심이기 때문이

다. 물론 여기서 종교기관이 수행하던 네트워크의 연결고리를 IT가 만들

어내고 있다는 차이는 있지만, 그 리더십의 요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나아가 네트워크 조직은 종교집단에서와 마찬가지로 리더가 조직의 비

전과 신념을 내면화했을 때만, 진정성을 보일 수 있을 때만 신뢰를 얻어

성장할 수 있다. 이것은 마키아벨리가 이야기한 도덕과 인품, 정치적 능

력을 구분할 수 있는 정치 영역과 다르다. 사생활이 복잡하더라도 경영

수완만 훌륭하면 CEO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경우가 많은 경제 영역과도

다르다. 네트워크 조직의 리더는 그 조직의 비전과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

다. 예를 들어서 리눅스가 상업 프로그래머였거나 웨일즈가 출판업자였

다면 그들의 비전이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만일 그랬다면 돈벌이

를 한다는 오해를 받기 쉬웠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평범한 일개 프로

그래머고, 웹에 관심 많은 증권 거래인이었기 때문에 신뢰성을 얻어 사람

들의 참여가 유발될 수 있었다.

종교적 리더십에서 자기 자신이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처럼, 마찬가지로 웹 생태계에서 네트워크 조직의 리더는 전 세계 사람

들이 연결성을 통한 집단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비전과 목표를 제시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비전과 목표를 의심 없이 전달할 수 있는 스스

로의 삶이 있어야만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다.

최근 MS의 인터넷 익스플로러IE 와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 자웅을 겨루고

있는 오픈소스 기반의 파이어폭스Firefox 의 모체인 모질라재단의 비전은

“웹을 위하여, 세상을 위하여”


이다. 그들은 이용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114
의한 개발, 홍보, 테스트 등을 수행해 시장에서‘무료로 양질의’소프트웨

어 제품과 플랫폼 기술을 제공하는 혁명을 통해서 비전을 증명하고 있다.

이처럼 비전 제시와 진정성의 두 가지 측면이 네트워크를 이끄는 조직의

리더들이 가진 리더십의 공통분모로서, 그들의 고유한 리더십을 정의한다.

비전을제시하고
호소력있는 그렇다면 왜 네트워크와 통하는 리더십을

진정성을보여라 알아야 하는가? 실제적으로 지금 시대가

네트워크를 무시할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

이다. 정부 행정망, 기업 유통망만 있고 네트워크는 존재하지 않는 사회

를 생각할 수 있는가? 컴퓨터, 휴대폰, 태블릿이 없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과 통하지 않고는 대규모로 조직된 사회가 없는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IT 기술이 없다는 것은 그것을 둘러싼 모든 문화,

조직, 인간을 배제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세상이 올까? 그

러기에는 이미 모든 것이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일상이 되었다. 따라서

미래는 네트워크가 우리 삶에 더욱더 뿌리내리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일반 휴대폰보다 스마트폰이 삶의 방식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네트워크가 점점 확장되는 것이 미래 사회라면, 그것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행정이고 경영이라면, 당신이 어느 분야에 있든 네트워크와 통하는

리더십의 속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높아지는 중요성을 생각할 때 네트

워크를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인 정책 수행, 경영 혁신의 요체가 될 것이기

115
때문이다. 그렇다면 네트워크 조직이 내가 관계하는 전통 조직을 위하여

일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조직의 리더십을 어떻게 참조해야 할

까?

분명한 것은 네트워크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가 일방

적으로 발표한 정책을 뉴스레터나 블로그에 실어준다고 국민들이 그것을

좋아하고 따라줄 것인가? 그것이 소통인가? 기업이 카페와 같은 커뮤니

티를 운영하고 그 커뮤니티의 회원이 많아지고 게시물이 늘어나 활성화

되면 그들의 이윤 추구 방법과는 관계없이 기업 브랜드 이미지와 매출이

증대될까? 위에서 말한 비전 제시와 진정성 모두를 제외하고 네트워크 조

직이 원하는 리더십은 빼고서, 네트워크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을까?

일단 이렇게 간단하게만 생각해보아도 기존의 문제점이 그대로 보인

다. 가장 큰 문제점은 역시 소셜 웹이라는 새로운 사회 생태계에 대한 이

해 없이 행정망, 유통망의 논리와 주장을 그대로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리눅스, 위키피디아를 만들지는 못한다. 대규모 조직은

IT 기술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규모 협업을 형성할 수 있었고, 그

힘으로 그와 같은 지구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마찬가지로 개인은 허

술할지 모른다. 그러나 독립적인 개인의 궁극적인 합인 네트워크는 지능

적일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정부가 블로그를 운영하고 기업이 커뮤니티를 운영하면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물리적 연결과 심리적

연결은 다르다. 심리적 연결은 광케이블이 아니라 비전과 진정성의 회로

를 따라 움직인다. 그런데 기존의 정책 홍보와 기업 마케팅이 제대로 되

116
지 않는 까닭은, 거기에는 아직 권력과 이윤의 냄새가 그대로이기 때문이

다. 기본적으로 웹 생태계의 조직들은 경계가 없고, 구속력이 약한 조직

은 끊임없이 수평적 구조를 만들며, 권력과 이윤으로 수직적 구조를 만드

는 것에 대해 저항하고 그 개방성을 유지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렇게 보

면‘낚는 인상’
을 주는 정부 블로그와 기업 커뮤니티에 이용자가 매력을

느낄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기존 조직들이 네트워크 조직을 자신들의 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것일까? 이미 권력과 이윤에 기초한 조직이라서? 그

것은 아니다. 다만 물고기를 잡을 때는 그 물고기에게 맞는 미끼를 줘야

하는 것처럼, 네트워크라는 대어를 낚으려면 평범한 미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권력과 이윤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것이 중심이 되어서도 안 된

다. 호소력이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말뿐만 아니라 혼으로, 진정

성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럼 그 일을 실제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변화를창조하는
리더십 권력과 이윤의 상식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

는 비전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

MIT의 미래적인 사례를 생각해보자. 21세

기 초, MIT는 자기들의 강의 약 1,900개를 단계별로 전면 무료 공개하겠

다는 Open Course Ware 공개강의운동를 발표했다. 시작은 미미해서, 처음엔

강의 노트 정도가 올라가던 OCW에는 점점 동영상 등의 비주얼 콘텐츠가

늘어났고, 최근에는 그 동영상에 댓글을 다는 것까지 가능할 정도로 좀더

117
상호작용적으로inter-active 발전했다.

대학 콘텐츠의 연결성을 대학 행정망을 넘어서 전 지구적 차원의 네트

워크로 확장시킨 것이다. MIT가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은 자기 학생, 교수

중심으로 하지만 그 결과물은 전 세계와 나누어 함께 성장하겠다는 비전

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그 비전은 이제 지구촌 네트워크의 공감

대를 얻어 150개가 넘는 전 세계 교육기관이 참여하는 OCWC Open Course


Ware Consortium 56) 로 발전하여 MIT뿐 아니라 전 세계의 비전으로 확장되고

있다.

사실 MIT에는 그 당시 세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1.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2. 남들이 하는 것처럼 하는 것: 원거리 교육 e-Learning 등.

3. 남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것: Open Course Ware. 1,900개 MIT 강의

의 전면 공개.

MIT가 택했던 것은 세 번째였다. 당시 최고 결정권자였던 찰스 M. 베스

트Charles M. Vest 총장은 왜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

2005년 9월 12일 버클리 대학교 국제연구소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 에

서 열린 해리 크라이슬러 Harry Kreisler 의“역사와의 대화 Conversations with


History ”
라는 프로그램에서 베스트 총장은“21세기에 MIT를 이끌기Leading
MIT into the 21st century ”
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에서 그는 리더

로서 자기가 수행해야 하는 대학 행정이라는 일의 핵심을‘아직 가능성이

발견되지 않은 사람들, 젊은 교수진에 대한 지지와 응원’


, 그리고 조직 내

118
에‘다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재능과 능력을 더 생산적인 조합으로 짜

내는 것’
으로 정리했다. 즉 베스트 총장은 리더십의 요점을 다양성을 통

해 개개인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창조성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이해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리더십이 OCW를 선택하는 데, 네트워크와 통하는 시대적 결정

을 하는 데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 해당 인터뷰에서 실제 OCW를 어떻게

선택했는지에 대한 이해를 보면, 그는 개방성이 다양성을 이끄는 전제 조

건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해하기에 오늘날 미국의 연구 중심 대학을 위대

하게 만든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개방성을 통해서 전 세계의 인재 풀을

끌어당긴 까닭에 있으며, 젊은 시절 자신의 선생님과 동료 학생들과 상호

작용을 하면서 그것이 진실임을 굳게 믿었다고 했다. 사실 OCW는 같은

전략이다. 다만 이제 그 개방성을 디지털 시대에 맞게, 해외뿐 아니라 네

트워크로 여는 것뿐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개방성에서 다양성으로, 다양

성에서 창조성으로 이어지는 가치의 사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확신이 담

겨 있다.57)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디지털 세계의 역사에서 오픈소스 운동을 이끌어

왔던 리눅스의 리눅스 토발즈나 위키피디아의 지미 웨일즈의 리더십도

“오픈”
이라는 말처럼 개방성에서, 개방성에서 오는 다양성, 다양성에서

오는 창조성에서 그 리더십의 형성 논리를 찾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논리

의 흐름상의 유사성을 볼 때, 베스트 총장의 리더십은 소셜 웹 시대에도

통했고, 네트워크를 자신의 목적과 비전으로 이끌 수도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왜 이처럼 네트워크와 통하는 리더십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가?

우리는 왜 새로운 디지털 세상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리더십을 창출하

119
지 못하는가?

힌트를 주는 것은 MIT OCW 강의 동영상에서 보이는 OHP다. 세계 최

고의 대학 중 하나, 연구 중심의 연구 대학이 왜 아직도 초보적인 단계의

기술을 쓰고 있는 것일까? 대학의 기술 적응력이 떨어져서일까? 그러나

여기는 MIT다. 이 OHP가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가는, 우리나라의 대학가

강의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고가의 빔 프로젝터와 비교해보면 좀더

분명하게 보인다.

분명히 기술의 차이는 있다. OHP는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10년 전에나

쓰던 기술이고, 빔 프로젝터는 초고가의 기술이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차

이는 그 내면에 있는 철학과 비전의 차이다. 하나는 OHP를 쓰더라도 네트

워크를 끌어당길 수 있는 비전과 철학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이해와 관심은 내버려둔 채 오직 맹목적인 기술 도입에만 열을 올리고 있

다는 것이다. 그런 기술은 그것을 쓰는 사람에게나 그 기술을 쓰는 사람의

영향을 받는 사람에게나 어떤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우리에게 찰스 M. 베스트와 같은 비전 어린 결단력을 행사하는 리더십

이 부재한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다. 청와대에서, 다른 정부 중앙기관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뉴스레터를 발송하면 무엇 하겠는가. 거기에 담긴 조

직의 철학, 비전, 비즈니스 모델, 전략이 그것을 받고 읽는 사람에게 영감

을 불러일으킬 만한 혼이 담긴 그 무엇이 아니면, 그것은 하루에도 수없이

쌓이는 스팸메일일 뿐이다.

MIT가 1, 2의 다른 길을 포기했다는 것은 변화에 대한 무책임과 안일함

을 버리고, 오히려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장악해나가는 길을 선택했다

는 의미다. 제3세계에서 제1세계로 정치적, 경제적 모든 면에서 최단기간

120
내에 성장한 한국에 그만한 근성이 없는가? 아니면 이미 포만감에 젖어

변화를 찾기엔 배가 부른 것인가? 세계적인 컴퓨터 하드웨어 생산국으로

서, 어느 나라보다 활발한 인터넷 문화를 가진 나라로서, 제3의 조직인 네

트워크를 활용한 사회 전체적인 생산성과 창조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역량과 기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직 이 자리에 머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전히 구글만 부러워하고, 혁신을 수입해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권력

과 이윤 그 이상의 것으로 움직여야 하는 대어, 네트워크를 움직일 수 있

는 큰 그릇, 큰 리더십이다.

예컨대 이제 국내에서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지적 포럼이 된 TED 58)

를 보자. TED는 기술, 오락, 디자인Technology, Entertainment and Design 의 영어

첫 글자를 따서 합친 것으로, 사실 그 세 주제에 한정되지 않고 온갖 첨단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나와서 18분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가지고 집중

력 있고 분명하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리다. 정치적, 종교적, 그 어

떤 편향성도 갖지 않고 오직 하나‘전할 만한 가치’


가 있는 아이디어를 네

트워크를 통해 파급한다는 원칙의 실천은 이 포럼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

심과 지지를 높였다.

우리나라의 삼성이나 포스코 같은 대기업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공헌

차원에서 이 같은 프로젝트의 진행을 위해 자금, 기술, 인력을 투자해보

는 것은 어떨까? 홈페이지나 블로그, 커뮤니티처럼 투자 대비 성과가 좋

지 않은 겉치레 IT에 비용을 들이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비전과 진정성의

메시지를 네트워크에 전달해줄 것이다.

또 다른 예로 1951년에 세워진 미국 보스턴 지역의 공공 라디오이면서

121
미국의 시사, 교육, 문화에 관련된 콘텐츠를 웹을 통해 전 세계와 공유하

는 콘텐츠 허브의 역할을 하고 있는 WGBH 59) 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이

방송국은 광고와 연예인, 가십의 거품을 뺀 양질의 시사, 교육, 예술 정보

를 전달하고 공유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자기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스스로 전하는 <모닝 스토리Morning Story >부터 고급 클래식 음악을 라이브

로 들을 수 있는 <올 클래시컬 WGBH All Classical WGBH >까지, 이들의 다양

한 프로그램은 상업성 적고, 공익성 높고, 친밀감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

다. 이렇게 운영되는 이 방송국의 비전은 소비자가 아니라 시민을, 그리

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는 커뮤니티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비전이 실제

적인 프로그램의 성격과 조화를 이루어 진정성을 어필하고 있다. 이 모두

우리 정부의 디지털 정책에 부족한 부분이다.

이용자들의 네트워크를 공공영역에서 활용하려면, 청와대부터 지자체

에 이르기까지 먼저 할 일은 일단 운영하는 관청의 홈페이지부터 이용자

의 필요 위주로 최대한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너무 느리고 복잡

하다. 첨단 유행에 대한 추종은 그다음이다. 그 후에 블로그나 뉴스레터를

운영할 것이라면 기존의 홍보책자를 단지 인터넷으로 전해준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함께 성장하기 위해서 그들의 참여를 포함한다는 기본적인 비

전과 그에 걸맞은 전략을 가지고 임해야 할 것이다.

결론은 이것이다. 혼을 내놓는 변화, 자기의 기존 수익 모델을 포기하

고서라도 새로운 역사의 장을 쓰고자 하는 열정과 의지, 그 과감한 결단

이 필요하다. 빔 프로젝터의 기술뿐 아니라 OHP의 영혼이 들어올 때, 그

곳에서 네트워크형 리더십, 비전과 진정성이 살아날 것이고 기존 조직과

네트워크는 보다 창조적이고 유기적인 관계를 갖게 될 것이다. 기존 조직

122
은 네트워크로부터 그들의 창조성 결핍을 해소할 수 있는 대규모 협업이

라는 새로운 영양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네트워크는 그들의 상상력

을 더 큰 무대에서 실험할 수 있는 공간과 채널을 얻게 될 것이다.

역사의 교훈을 기억해보자. 미국 예일대 로스쿨의 에이미 추아 Amy Chua

교수가『제국의 미래Day of Empire 』


에서 재해석한 세계사의 흐름에 의하면,

초강대국의 흥망을 좌우했던 것은 그들의 관용 정책이었다. 네덜란드가

종교적 관용 정책을 폈을 때, 당시 신구교 간의 치열한 대립과 갈등 속에

서 쉴 곳을 찾던 인재들이 네덜란드로 몰려들었고, 그들이 네덜란드가 무

역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네덜란드에서 머물다 도망친 청

교도들이 세운 미국엔 나치와 파시스트, 공산주의를 피하여 도망친 사람

들이 들어와 국가의 과학과 기술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아인슈타인은 독

일에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왔고, 인텔을 이끌었던 앤디 그로브Andy


Grove 는 헝가리계,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 은 러시아계다.60)

개방성, 다양성을 통한 창조성, 그 창조성을 통한 조직 발전의 공식, 리

더십은 바로 소셜 웹 시대 네트워크와 통하는 리더십의 정의다. 사회가 네

트워크로 나아가려면, 리더십은 변화를 따라가는 정도가 아니라 문을 활

짝 열고 앞장서야 한다. 네트워크를 위한 리더십은 오픈이어야 한다. 행동

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창조성, 사회적 생산의 새로운 가능성을 두려워할

것 없다. 오히려 이것은 기회다. 그동안 역사의 현장에서 우리는 근대화,

세계화 등 늘 거대한 흐름에 뒤쳐져왔고, 그에 대한 준비의 미흡으로 일제

강점에 의한 식민 통치, 국제 자본에 의한 금융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것은 변화의 흐름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를 창조하고 선도

할 수 있는 기회다. 산업시대를 이끌었던 나라들이, 조직들이 결국 그 시

123
대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우리의 리더십이

이 시대를 정의할 수 있다면, 이 시대를“창조성의 혁명”


이 일어나는 시대

로 정의하고 그 힘의 기원인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면, 한국을 중심

으로 한 지구촌의 소셜 웹 시대를 꿈꿔보는 것도 단지 꿈만은 아닐 것이

다. 1941년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이야

기했던 것처럼“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두려움 그 자체뿐이다.”

124
Being Social web 07 새로운패러다임으로
시작하는혁신

개성을존중하는것이
혁신이다 행복의 정의가 천차만별인 것은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행

복을 정의하는 공통적 속성은, 그 사람이 택

한 것이 얼마나 그 사람의 취향에 들어맞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세상은 정말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그만큼 취향

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는가? 불편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당신의

초·중·고교시절의 꿈은 무엇이었는가? 그 꿈대로 살고 있는가? 대학

입시 외에는 현실적으로 잘 먹고 잘 살면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

는 길을 찾기 어렵다. 서태지와 김연아는 초특급 예외 케이스다. 대부분

은 자기가 길을 만들어갈 수 없다. 우리들 대부분이 할 수 있는 것을 그냥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애써서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서 졸업 후 현실이 딱히 다르지도 않다. 고시를 보든, 회사에 들어가든,

공무원이 되든, 유학을 가든, 결혼을 하든, 다 거기서 거기다. 우리는 정

125
말 많은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선택은 과연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 취향과 잘 결합하고 있을까?

이러한 불운한 현실에서 혁신의 싹이 트고 있다. 행복을 정의하는 공통

적 속성이 독특한 개인의 취향을 인정하는 데서 온다면, 혁신을 정의하는

공통적 원리는 차별적 취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끊임없이 불만족하고, 필요한 것이 더 있다는 사실은 새로

운 상품,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끊임없이 정부에서 여론조사를 하고, 기업에서 석·박사 인력을 데려다

가 연구와 개발을 하는 이유다. 그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당신의 만족

이라기보다는 불만족이다.

그들이 그렇게 애써서 만드는 혁신이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

을까? 그들이 제공하는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의 목록 중에, 가끔은 나 자

신도 헷갈리는‘내가 원하는 것’
이 있을까? 그들은 과연 나보다 내가 원

하는 것을 더 잘 알고 있는 것일까? 나도 날 모르는데 내 감정의 선이, 취

향의 정도가 그들의 눈에는 분명하게 보이는 것일까? 선택지가 넓어지면

그중에 하나로 나는 속하는 것일까?

그냥 아주 쉽게 생각하는 것이 이 질문의 답일 수 있다. 인간은 다 다르

다. 생긴 것도, 원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다 다르다. 그래도 현실이 그만

한 선택지를 다 주지 않으니 대충 만족하며 산다.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

이 불만에 쌓여 살아갈 테니까. 실제로는 그만큼 행복하지 않으면서 행복

한 척,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속이는 데 도움을 주는 것

이 많이 있다. 지천에 널려 있는 이것이 바로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끊

임없이 떠들어주는 광고와 마케팅이 바로 그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기

126
꺼이 속아주고, 가볍게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양보와 타

협일 뿐이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길은 아니다. 기존의 혁신

이 우리의 불만족을 다 채워주는 게 아니라 적당히 타협해주는 선에서 끝

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혁신이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

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길들이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

는가?

이는 기존의 혁신의 패러다임이‘소비의 패러다임’


임을 말한다. 다시

말해 기존의 혁신이란 소비를 위한 혁신이다.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소

비하기 위해서 나의 기호와 성향이, 취향이 분석되고, 분류되고, 정의된

다. 그리고 이 혁신과 더불어 광고와 마케팅은 그 정의가“나”


라고, 내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다”


라고 설득하고 있다. 그래도 상품과 서비스

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그것이 조금은 내가 원하는 것에 근접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위로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정말 내가 원하는 것에 도

달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더 나은 상

황, 근본적으로 내가 원하는 혁신에 도달할 수 있는가?

혁신의스케일과
스피드를높여라 이 불편한 관계의 한계가 혁신이 소비를 위

해 존재하는 패러다임에 있다면, 그 극복

방법은 소비의 패러다임을 뒤집는 것이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정부가 아무리 여론조사를 열심히 하고, 기업이 아무

리 연구비용을 들이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127
우선 그들이 만드는 것은 실제로는‘나 한 사람’
을 위해 최적화된 것이

아니라‘일정 다수’
를 위해 만든 것이다. 아무리 전체 시장을 잘게 쪼갠 그

룹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 한 사람보다는 크다. 그래서 효

용, 비용 모든 면에서 나를 위해 최적화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거기에는

언제까지나 내게 불만족의 여지를 남긴다. 혁신의 스케일이 부족하기 때문

이다. 또한내가원하는것이고정적이지않다. 사람은쉽게질리고쉽게바꾼

다. 인간이기에 변하지 않는 취향을 말하는 것은 무리다. 취향은 근본적으로

변화를담고있으므로취향을존중하는전략은속도를무시할수가없다.

이 둘을 합쳐보면 전혀 다른 인간을 최대한도로 만족시키는 혁신이란 그

혁신의 스케일과 스피드가 모두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혁신은 모든

개인을 위해 최적화될 수 있을 때까지 스케일을 넓혀야 하고, 그 개개인의

변화하는 취향을 따라잡고 이끌 수 있을 때까지 스피드를 높여야 한다.

위기에 처한 혁신을 구할 수 있는 구원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안타깝게

도 기존의 정부 행정망과 기업 유통망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들의 최선이란 돈 들여서 선택지를 넓히고 그 선택지가 당신이 정말 원

한 것이라고 우리를 위로하는 정도이다. 그렇다면 네트워크에서는 개인

의 행복을 최대화하기 위한 최적화된 혁신의 조건인 스케일과 스피드를

찾아볼 수 있을까? 리눅스와 위키피디아의 사례에서 생각해보자. 이들의

혁신에는 어떠한 특성이 있는가?

1. 먼저 기존의 혁신 과정을 생각해보자. 공급자가 이용자의 숨겨진 수요를

비용을 들여 발견하고, 그것을 이용자가 소비자로서 가격으로 지불한다.

2. 다음으로 리눅스와 위키피디아의 혁신 과정을 생각해보자.

128
리눅스와 위키피디아가 등장하기 전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불만이

있다.“굳이 내가 왜 MS의 운영체제를 써줘야 하나? 맘에 들지 않는데 비

싸도 억지로 써야 된다는 것이 화가 난다. 왜 비싼 돈 내고 브리태니커를

사야 하나? 필요한 것은 고작 그중에 극히 일부일 뿐인데도.”

이런 불만에, 리눅스 토발즈와 지미 웨일즈가 그들의 공감대를 하나로

응집시킨 비전을 제시했다. 그들은 하나의 비전을 가지고 네트워크의 연

결성을 통해서 조직의 경계와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해 창조했다.

그렇다면 정부 행정망, 기업 유통망의 혁신과 네트워크의 혁신은 근본

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거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찾는 혁신의 스케

일과 스피드를 볼 수 있는가?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근본적인 차이는 결론이다. 불만에서 시작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기존 혁신 시스템은 새로운 소비자를 만드는 것으로 끝

내고 네트워크 혁신 시스템은 새로운 창조자를 만드는 것으로 끝낸다.

비용의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기존의 혁신 시스템에서는 불만을 조사하

는 비용, 상품을 개발하는 비용, 마케팅, 홍보하는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

가됐다. 원하는 것을 만들어줬으니 마땅히 지불할 대가라는 것이다. 그것

이 정말 타협할 수 없는 만족인가? 위에서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실상은 그

렇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비용은 타당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척

하는 것이다.

그러나 네트워크 혁신 시스템은 그러한 비용의 거품을 모두 빼버렸다.

대신에 참여 내지는 지지를 요구한다.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일에 직접 참여하거나, 아니면 그것들을 이용하여 그 개발 커뮤니티에 지

지·인정을 보내줌으로써 그들이 원하는 명성을 제공한다. 돈이 빠진 비

129
전과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명성과 신뢰의 교환이 개발자와 이용자 간에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타당하지 않은 비용을 뺀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드러나는 네트워크 혁신 시스템의 특징은 무엇인

가? 첫째, 개인의 고유한 행복을 존중하는 혁신을 만드는 데 불필요한 요

소들을 모두 배제한 시스템이며, 둘째, 그러한 고유한 행복, 개인의 차별

적인 필요와 욕구를 만족시키는 방법을 행정망이 아닌 네트워크상의 커

뮤니티를 활용하는 조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혁신 시스템은 소비를

위해 필요했던 비용의 거품을 모두 제하고 가격이 아닌 가치를 위한 시스

템으로 거듭났다.

이러한 시스템은 혁신의 스케일과 스피드와는 어떻게 관계되는가? 그

답은 가치 중심의 커뮤니티라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치 중심이라는

말은 철저히 이용자의 가치 중심이라는 의미다. 이용자의, 이용자에 의

한, 이용자를 위한 커뮤니티다. 그들이 스스로의 필요와 욕구에 의해서

만들 수밖에 없다. 즉 개발자의 수만큼 스케일의 확대를 경험할 수 있다.

개발자의 수가 제한되어 있지도 않다. 네트워크상의 커뮤니티는 경계가

없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스피드의 문제다. 커뮤니티 내에서는 개발자보다 더 많은 이용

자가 존재한다. 이용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불만의 요소에 대해서 개발

자들과 직접 소통함으로써 개발의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며 자기들

이 원하는 혁신이 일어나도록 촉진한다. 즉 여기서는 아주 활발한 혁신의

진행을 발견할 수 있다. 혁신의 스피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일례로 내가 참여했던 MIT OCW 프로젝트가 2002년부터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백과사전에는 그 내용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 오직 위키피

130
디아만 이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세한 검색 결과를 가지고 있다. 이는 스

스로의 필요에 의해서 개발하는 개발자들과 그 수요를 지속적으로 창출

하는 이용자들 간의 커뮤니티 구성이 가지는 혁신의 스케일다양성과 속도


실시간 업데이트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다.61)

정리해보자면 네트워크형, 가격을 배제한 가치 중심형 커뮤니티 혁신

시스템은 행정망, 유통망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방식으로 타협하지

않는 만족을 위한 혁신의 스케일과 스피드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새로운 혁신 시스템의 등장은 전체 혁신의 생태계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을까?

MS, 소비의패러다임vs
파이어폭스, 이제 더 이상 혁신을 참을 이유가 없다. 대

창조의패러다임 안이 존재한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아닌데도 그 필요와 욕구를 양보하고 타협

하면서까지 누군가가 정의해주는 나의 행복에 순한 양처럼 따를 필요가

없다. 참을 만큼 참은 사람들이 가진 좀더 다양한 것, 내가 원하는 것에

가까운 것을 쓰고 싶다는 욕구의 각성과 반영은 어떤 변화를 야기하는가?

지식과 정보의 교환이 핵심인 인터넷의 중심적 기능은 검색이므로, 검

색 도구인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2009년 웹 브라우저 시장의 최대 이슈 중 하나는 MS의 인터넷 익스

플로러에 모질라재단이 이끄는 파이어폭스가 판정승을 거둔 것이다. 국

내에서는 아직도 파이어폭스와 호환이 안 되는 웹사이트들이 많기 때문

131
에 사용률이 떨어지지만 그것도 국내 웹 환경이 좀더 다양성을 인정하는 체제로 가게 되면 개
선될 가능성이 있고 , 전 세계적으로 봐서 파이어폭스는 MS가 독식하던 웹 브

라우저 시장을 밟고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추세다. 2005년의 파이

어폭스의 전 세계 웹 브라우저 시장점유율은 약 6%대였지만 62) 2009년

말에 들어서는 21.93%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면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시장의 1위로 우뚝 섰다.63)

이 사례가 흥미로운 까닭은 MS는 기존 혁신 체제, 모질라재단은 오픈

소스 진영의 대표주자이고, 따라서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소비의 패러다

임을 의미한다면, 파이어폭스는 창조의 패러다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 경합에서 후자가 우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이제

사람들의 의식에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당연하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그 행복은

개인의 고유한 취향에 가장 큰 만족을 주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러려

면 소비의 스케일, 즉 기업의 관점보다는 혁신의 스케일, 이용자의 관점

이 더 중요하다.

파이어폭스의 35,000가지 페르소나 persona 에서 생각해보자. 페르소나는

쉽게 생각하면 싸이월드 미니홈피나 네이버 블로그의 스킨 같은 것이다.

차이는 페르소나가 웹 브라우저에 입히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페르소나가 단일종이다. 그러나 파이어폭스는 35,000가지

나 되는 옷을 제공해준다. 게다가 다 무료이고 끊임없이 업데이트가 된

다.64) 익숙한 이야기다. 위키피디아의 웹 브라우저 판이다. 버그를 잘 수

정하지도 않는 고가의 브리태니커 대신에 무료이면서 실시간 업데이트가

되는 전자백과를 택했던 이용자들이 이제는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도 인

132
터넷 익스플로러에서 파이어폭스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점점 더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간다. 애플 앱스토어에 많

은 사람들이 자신의 솜씨를 뽐내고 수익을 올리기 위해 개발진으로 참여

하고 있다. 그에 맞서는 구글폰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파이어폭스와

마찬가지로 오픈소스 커뮤니티를 중요한 혁신의 축으로 삼고 있다. 이 둘

의 경쟁이 모바일부터 시작해서 전 IT 시장을 뒤흔드는 상황에서 새로운

혁신 시스템에 대한 인식과 참여는 날로 확대되어갈 것이다.

창조의패러다임으로
혁신하라 그렇다면 기존의 정부 행정망, 유통망은

이와 같은 네트워크에 의한 새로운 혁신의

패러다임과 그 패러다임에 의한 상품과 서

비스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는 데 누가

정의해주는 방법 말고 스스로 찾거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이 생겼을 때, 우리는 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가? 기존 채널에 의한 혁신에 경쟁을 일으키므로 이들을 시장에서 퇴출시

키려고 노력해야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자꾸 등장해서 귀찮으니

행정 편의주의, 산업시대의 관습에 따라 규제하고 감독하면 되는 것인가?

아쉽게도“Yes”
라는 대답이 지금까지의 산업계와 정부의 태도였다. 산

업계는 리눅스와 같은 오픈소스 운동에 대해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해왔고,

정부는 이용자 커뮤니티의 존재에 대해서 불편한 시각을 감추지 않았다.

유주완 군이 만든 애플 앱스용 무료 프로그램“서울 버스”


를 다시 생각해

133
보자. 이런 프로그램을 기존 업체들이나 행정망에서는 왜 생산해 공급하

지 않았던가? 이것이 무료로 보급돼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행정부에서는 산업시대의 패러다임으로 단죄하고

서비스를 일시 중단시켰던가? 새로운 혁신에 대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창조자가 되고 그 창조의 흐름에 동참해 더 만족할 수 있는 행복을 누리

는 혁신의 파도에 이들이 저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 않아도 그들이 누릴 수 있는

행정 편의와 상업적 이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것은 과거의 틀, 법

과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양보와 타협에서 오는 만족과 행복에 너무나 안

주하고 있다는 뜻은 아닐까? 이용자들은 그렇지 못한데도 그것이 여전히

너무도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행정망과 유통망 쪽에서 말이다.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파이어폭스의 싸움이 주는 교훈을 기억하자. 이

용자들은 참을 만큼 참았다. 저항은 저항일 뿐 결국 최후의 승자는‘변화’

다. 그렇다면 기존 혁신 시스템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현명한 방법은 어차피 이길 수 없는 변화와의 싸움인 것을 인정하고 오

픈 진영을 포용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다. 기존의 혁신 시스템에서도 오픈

진영에 제시해줄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더 우월

한 자본, 인력, 설비를 가지고 있다. 오픈 진영의 발랄한 혁신들을, 인디

문화를 방송국 음악 프로그램에, 무대 위에 띄워줄 수 있는 실력을 갖추

고 있다. 기존의 혁신 시스템에서도 이용자 커뮤니티, 그들의 네트워크를

상품과 서비스의 개발·생산 과정에 동참시킬 수 있다면, 그들의 유통망

에 소비자가 소비자일 수밖에 없는 신분제를 철폐하고 그들에게 창조자

의 역할을 나누어줄 수 있다면, 이용자들의 혁신성과 창조성을 이용할 수

134
있으니 이것은 철저한 윈윈이다.

이러한 기존의 혁신 시스템에 새로운 네트워크형 혁신의 요소를 포함

시키는 방식은 이미 경영계에서 실험되고 있다. 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

수이자 이용자 혁신user innovation 분야의 세계적 대가인 에릭 본 히펠Eric


Von Hippel 은 그의 저서『혁신의 민주화 Democratizing Innovation 』65) 에서 그 같

은 실험의 다양한 성공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산악자전거MTB

도 이용자가 먼저 만들고 그것이 산업계에 받아들여져서 메이저 상품으

로 시장에 확대된 것이다. 3M 같은 기업은 적극적으로 이러한“혁신의 민

주화”
를 내부 연구개발 체제에 포함시켜 비용 절감과 시장 확대 측면에서

큰 수확을 얻었다.66)

최근에 국내에서 붐이 일고 있는 정부, 기업, 재단, 연구소 등에서 개최

하는 공모전이나 <블로터닷넷>과 같은 파워 블로거들에 의한 뉴미디어,

스카이벤처 같은 이용자들에 의한 컨설팅 서비스 등 그들의 혁신 체제를

기존의 혁신 체제에 포괄하는 방법들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거기에는 소

비의 확대뿐 아니라 창조의 확대를 위해 이용자들의 커뮤니티를 적극적

으로 활용하는 고민과 방안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외국의 선진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국내시장에서도 점점 더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자 전략이다.

문제는 역시 비전과 철학이다. 이용자 혁신을 기존 혁신 시스템에 끌어

들인다는 것은 대단한 기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의 요구를

어떻게 능동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구글이

제공하는 개인화된 검색 메인 페이지인“iGoogle”


을 보자. iGoogle이란

쉽게 말해 이용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웹 브라우저의 이용자 환경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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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게 허용한 검색 메인 페이지다. 검색 메인 페이지 화면 내의 윈도

우들은 이용자가 원하면 얼마든지 추가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 이것이 어

려운가? 어렵지 않다. 단순한 발상의 전환이다. 정해주지 않고 스스로 고

를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준 것이다. 완성된 장난감과 레고블록을 주는 것

정도의 차이다. 애플의 아이팟 2세대, 아이폰 시리즈, 구글폰 역시 iGoogle

처럼 이용자 환경을 스스로 편집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러나 그 전까지

국내 업체의 휴대폰 중 과연 몇 가지나 이용자 스스로 이용자 환경을 편집

하고 원하는 형태로 최적화할 수 있는 방식을 허용해놓았는가.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야말로 거창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보다 더 핵심적이다. 혁신이란 단순할수록 더 효과적인 것이

아닌가? 결국은 그것도 이용자에게 편리하게 이용될 수 있을 때에만 의미

를 가질 테니까. 그러므로 기술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간단한 발상의 전

환이 기초가 되는 철학과 비전의 부재, 이용자 커뮤니티에 의한 혁신, 새

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적극적 이해와 수용의 부재가 문제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사실 이용자가 개발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도

문제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혁신의 본질은 인간에게 최적화된 행복

을 주는 것이다. 혁신이 산업계를 택하든 정부를 택하든 이용자를 택하

든, 본질을 떠나면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죽듯 죽을 것이다. 오픈소싱이

각광받는 것은 소비의 패러다임 아래에서 소비자는 상품과 서비스의 만

족에 대한 양보와 타협 외엔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창조의 패러다임이

이전의 패러다임을 대체하면서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이다. 다시 말해 오

픈소싱이 기존 체제의 종말은 아니라는 뜻이다.

현명한 결론은 이것이다. 하이브리드 혁신 체제 속에서 늘 연속하는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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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을 지키되, 변화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패러다임의 지속적

인 교체를 통해 가장 중요한 본질을 잊지 않는 것이다. 즉, 개인의 고유한

욕구와 필요에 최적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을 위해 혁신을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나아갈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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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 Social web 08 뱅크오브아메리카,
유니클로,
구글이던지는메시지

영악한이용자들의
네트워크 가끔 TV에서 중국이나 대만에서 만든 중

화권의 사극을 볼 때면 황제와 그의 신하

사이의 거리가 상당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예전 계급사회, 신분사회의 풍경이다. 정치적 평등, 경제적

성장을 경험한 사회는 이제 소셜 웹의 시대, 이용자들의 네트워크의 질서

가 사회의 보편적 문화로 정착되어가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네트워크

의 핵심인 연결성을 제공하는 기술의 혁신이 컴퓨터를 넘어 스마트폰으

로, 또 그 이후로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것, 사람들이 그러한 기기를 통해

서 대규모 협업을 발현하는 것에 더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은, 그 시기가

그렇게 멀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인터넷 환경이 일반화되었다는 것은, 그래서 이용자들의 네트워크 조직


이 등장하고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는 웹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기업이 더 이상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만 의지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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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LP로 팔던 것을 카세트로, 카세트에서 MD Mini-
Disk 로, MD에서 CD로 그렇게 계속 나타나는 비즈니스 기회가 미래는 아

니라는 것이다. CD 이후 우리는 애플의 아이튠스를 경험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비즈니스 기회는 유통망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

러나 이제는 유통망 외에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사회의 가치가 통하는 도

로가 뚫렸다. 네트워크를 두고 굳이 유통망으로 비집고 들어갈 필요가 없

어졌다. 전과 달리 이용자들이 굉장히 영악해졌다는 의미다. 전처럼 또

하나의 손쉬운 돈벌이로 인터넷 환경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새로운 세상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의 단서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


Bank of America , 유니클로, 구글이라는 금융권, 유통업계, IT 업체 등 각각

다른 세 분야의 기업에 있다. 그들의 경영 철학과 전략, 비즈니스 모델의

공통된 분모들을 찾아가면서, 거기에서 만만치 않은 이용자들의 네트워

크를 상대할 수 있는 기업의 비밀을 찾아보려 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인간”에 한때 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이 티파니

가까워지는기업 에서 보석을 사거나 프라다에서 핸드백이

나 구두를 사는 것만큼 어려울 때가 있었

다. 단적인 예로 당시 은행가에서는 지점 운영은 당연히 하지 않았고 월

가의 본점만 운영했다. 게다가 오직 VIP만 상대했다. 내가 너를 찾아갈 필

요는 없고 네가 내게 와야 되며, 그중에서도 나는 아무나 만나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은행은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아니란 생각이 인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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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탕에 깔려 있었다.

이 교만한 인식을 깨고 은행 서비스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일

깨워주며 새로운 은행의 시대를 연 것은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인 A. P.

지아니니A. P. Gianni 다. 그는 가난한 이민자의 자식으로 항구의 부둣가에

서 서민들과 살을 맞부딪치며 자랐다. 그래서 그는 서민들에게 돈이 필요

하고 그들에게도 돈을 갚을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보았다.

그들이 자기 삶을 개선하려면 생산 수단을 하나라도 챙길 목돈을 만들 은

행의 대출, 예금 등의 서비스가 필요하다. 그들에게는 다른 대출 수단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돈을 갚아야 한다.

1976년에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 Dr. Muhammad Yunus 가 미소

금융micro-credit 이란 아이디어를 가지고 가난한 자를 위한 은행인 그라민뱅크

를 법인화하기 전에, 은행 서비스를 이용할 서민의 잠재 역량을 지아니니는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당시 월가의 분위기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는 서민을 위한 은행이 존재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믿었다.

이러한 그의 야심이 실현된 은행이 오늘날 세계 최대 상업은행 중 하나

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다.이 은행은 초창기에는 뱅크 오브 이태리(Bank of Italy)였으나 후일


금문교를 만들 때 보증을 잘못 서서 위태했던 것을 미국 정부가 사들이면서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로 바뀌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은행을 만들었기 때문에 지아니니

는 월가가 비웃든지 말든지 그에 신경 쓰지 않고 은행 서비스의 문턱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그가 상대한 것은 VIP가 아니라 서민이었고, 서민

들은 일하느라 너무나 바빴기 때문에 그는 당시 고귀한 은행으로서는 상

상도 할 수 없던 지점을 운영했다.67)

나아가 서민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정점은, 오늘날 은행도 해가 지기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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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게 문을 닫는 데 비해, 그의 은행은 밤늦게까지 일하는 서민들이 이용

할 수 있도록 밤 9~10시까지 문을 열어놓았던 데서 볼 수 있다.68)

결과는? 서민들의 작은 돈들이 모인 이 은행은 세계 최대의 상업은행으

로 자리 잡았다. 그는 서민을 볼 줄 알았다. 바닥에 깔린 수많은 서민들을

어떻게 시장으로 만들지 그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첫째, 그에게 그의 대

상이 되는 시장의 조직, 문화, 인간을 볼 수 있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는 그 바닥을 알았다. 그는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다. 둘째, 그는 바닥으로 내려갈 용기와 의지가 있었다. 그것

은 그가 자선가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사업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서

민들에게서 그들의 불만과 잠재적 욕구를 보았고, 거기서 혁신의 근거를

찾았다. 셋째, 그는 유통망이 없는 곳에 유통망을 만들었다. 당시에 그가

썼던 것은 IT 대신에 지점 운영이었다. 지점은 네트워크를 만들고, 그 네

트워크는 다른 은행엔 없고 그의 은행에만‘하나 더’있는 유통 채널을 허

용하여 그에게 강력한 비교우위를 선사했다. 넷째, 지아니니는 자신이 편

한 쪽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기꺼이 통념과 관습을 깨고 서민의 편에 서

는 법을, 그들의 효용을 높여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누가 밤늦게까지 문

을 여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그 시간은 바로 그의 고객들이 그의

은행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을 때이기도 했다. 그는 기꺼이 거기까지 혁신

했다.

지금의 상황도 그때의 초기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기존 오프라인 시

장은 포화될 만큼 포화되었고 이제 우리는 인터넷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 인터넷 시장은 바닥 시장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지금은 정설

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미국의 IT 전문가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 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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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롱테일the long tail ”
이란 결국 20:80에서 20의 VIP가 아니라 80의 작지

만 많은 수요들을 택하는 전략이, 그것을 웹이라는 글로벌 디지털 연결망

을 통해서 전에 없던 속도와 범위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프라인 매장 하나 없는 아마존이 반디앤루니스를 위협할 수

있었던 것도 롱테일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마존이 성공할 수 있었

던 것은, 인터넷과 새로운 물류기술의 발달이 20:80에서 20에 속하는 베

스트셀러 말고도 80에 속하는 비인기 상품들이 그들을 원하는 소수 수요

를 찾아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서 아마존은 기존의 거대 서점과 경쟁할 수 있는 확실한 비교

우위를 찾았다.69)

물론 기존의 파레토 법칙, 즉 대부분의 수익은 긴 꼬리가 아니라 머리,

VIP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구글의 CEO 에릭 슈

미트도 2008년 9월 <맥킨지 쿼터리McKinsey Quarterly >와의 인터뷰에서 정보

가 모두에게 공개되고 모든 사람들의 참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새로운

민주화된 시장으로서의 인터넷의 중요성 때문에 롱테일의 법칙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수익의 대부분은 머리에서 만들어짐을 잊지 말고 둘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 균형점

이란 다시 말해 롱테일이 기존의 시장 지배의 법칙인 파레토 법칙, 시장

의 상위 20%가 수익의 80%를 창출한다는 논리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아니나 무시할 수 없는 새로운 질서이므로 우리가 인정하고 시험할 필요

가 있다는 것이다.70)

그렇다면 우리는 이 게임의 법칙을 어떻게 받아야 할까? 그냥 인터넷으

로만 가면 되는 것인가? 상점 문만 인터넷에 열어주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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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니니가 한 것은 은행 문을 보통 사람들에게 열어준 것만이 아니다.

은행의 문을 보통 사람들에게 열어준다는 것은 가격, 문턱 등 모든 것을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고 전체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힘

든 도전이었지만 지아니니는 했고 다른 이들은 하지 않았다. 비록 한 사

람당 내는 금액은 서민들이 VIP들에 비해 훨씬 적겠지만 사람 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다 긁어모으면 하나의 큰 시장이 된다는 것을 지아니니는 꿰

뚫어 보았다. 그들이 만약에 그의 은행 덕분에 좀더 잘살게 된다면, 그 역

시 그들의 부의 성장에서 자기가 만든 시장이 성장하는 경험을 할 수 있

다는 것을 믿은 것이다. 윈윈 게임이 그의 철학이자 비전이었다. 그래서

그는 기꺼이 은행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을 전부 재창조해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뒤에 숨겨진 정신이다. 철저히 새로운 시장의 정서를

이해하고 그 시장의 숨겨진 욕구를 발견하되, 말뿐이 아닌 혁신으로 실천

하고 그 혁신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 그것이 그의 사업의 핵심이었다.

그렇게 그는 시장을 창조했고, 기업을 건설하고, 신화를 만들었다.

사실 더 중요한 교훈은 이 다음에 있다. 지아니니는 바닥 시장에서 상대

적으로 작은 서민들의 돈을 긁어모아서 하나의 거대한 성을 쌓아올렸다.

그 성은 대공황과 그 이후 오늘날의 금융 위기 속에서도 굳건히 버티고

서 있다. 리만 브라더스를 무너뜨린 최근의 금융 위기도 뱅크 오브 아메

리카를 흔들지 못했다. 그 기초를 그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 점에서 우리는 그의 인품을 봐야 한다. 지아니니가 79세로 영면했을

때 수많은 서민들이 그의 장례식을 찾았다. 오늘날에 월가의 누가 죽어야

과연 그 많은 보통 사람들의 발걸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여기서 보이는

것은 그가 받고 있는 절대적 신뢰다. 서민을 위한 은행을 만들었지만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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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그는 서민을 위한 은행이 아니라 은행 자체를 다시 만들었다. 캘리

포니아에 대지진이 났을 때도 그는 누구보다 앞장섰던 시민의 지도자였

고, 할리우드에 거액을 투자해 오늘날 영화 산업의 기반을 닦는 공적도

남겼다.

이러한 것이 왜 중요한가? 단순한 도덕적·윤리적 이유 때문이 아니다.

이 신뢰야말로 지아니니가 모아서 쌓아올린 그 작은 수요들을 단단한 시

장으로 만들어낸 접착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 시장에서 사람

들이 특정 업체에 끌린다고 치자. 처음에는 가격이 싸다든지, 웹사이트의

디자인이 예쁘다든지 하는 사적인 이유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거기에는

말도 안 되는 심리적인 이유가 또 있다. 친구가 그 사이트에서 싸게 샀다

는 말을 듣고 그 쇼핑몰을 찾는가 하면, 예전에 그 쇼핑몰에서 샀던 물품

중 하나가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발길을 끊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심리적인 맥락에서 보았을 때, 네트워크에서는 가격을 배제한 이

러한 가치 중심의 교환 중에서 특별히‘신뢰와 명성의 교환’


이 매우 중요

한 관계의 역학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바로 그 점에서 보았을 때 지아

니니의 인품, 그의 인품이 담긴 사업의 철학과 비전, 혼이 담긴 신뢰의 중

요성은 시대적으로 격하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상되었다. 변화한 시대

적 환경, 웹을 중심으로 사회가 개편되고 네트워크가 중요한 사회적 연결

망 중 하나가 된 사회에서, 신뢰는 그 어느 때보다 공급 부족, 수요 초과

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즉, 소셜 웹 시대에서의 기업은 사업체라기보다는 인격체에 더 가까워

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환경 변화에 따른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수립에 맞물려서, 사람들에게 더 신뢰받을 수 있는‘기업’


이 되기 위해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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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하기보다는‘인간’
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한다. 바로 그때, 사업성으로 모

은 그 작은 수요들이 단단하고 거대한 시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유니클로,
허영이아닌 한국 패션의 본거지인 명동에 가면 몇 주
배려를파는전략 사이에도 문을 열고 닫는 매장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매장들의 흥망성쇠는 그 브랜

드가 현재 시장에서 얼마나 지지를 받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큰 매장을 확보하고 있는 패션 브랜드 둘을 꼽으라면

스페인의 자라 ZARA , 일본의 유니클로UNIQLO 가 아닐까 싶다. 사실 그들은

전 세계적으로 잘나가고 있다. 경제 위기 속에서 명품 브랜드들도 죽을

쑤고 있는 가운데 명품도 아닌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이 세력 확장을 거듭

하고 있다. 흥행의 비결은 무엇인가?

공통점에서 찾아보자면, 이들은 흔히 주목받는 것처럼 패스트패션이라

는 것, 즉 유행에 아주 발 빠르게 대응하고 저가라는 것 외에, 아주 중요

한 점 하나를 더 공유하고 있다. 이들 성공의 공통분모는 바로 그들이“얼

굴 없는 브랜드”
라는 데 있다. 그렇게 많이 팔리는 자라고 유니클로지만,

길거리나 식당에서 누가 이들의 옷을 입고 있는지는 쉽게 간파하기가 어

렵다. 우선 자라와 유니클로는 이렇다 할 고정된 브랜드의 콘셉트가 약하

기 때문이다. 물론 나름대로 브랜드 특색은 있지만, 그것이 버버리의 체

크나 폴로의 심벌처럼 눈에 딱 띄는 것은 아니다. 즉, 브랜드 콘셉트가 있

긴 하지만 유행에 민감한 여러 군의 대중을 잠재 고객으로 포괄하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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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적이지 않다. 또한 이들은 상표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고정된

스타일로 구분이 안 된다면 상표라도 구분의 역할을 해줘야 할 텐데, 애

초에 상표 자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왜 이들의 흥행에 중요한 요소인가? 옷을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부

터 다시 생각해보자. 옷은 단순히 생식기만 가리고 추위, 더위를 피하기 위

해서만 입는 것이 아니다. 옷에는 스타일이 있고 그 스타일이 개인의 개성,

나아가 사회적 신분과 지위, 삶의 이상과 목표까지 설명해준다. 옷으로 동류

의식을 형성하기도 하고 사회계급을 유지하기도 한다. 따라서 옷은 그냥 옷

이 아니라 삶이다. 그러므로 옷을 산다는 것은 기능성 상품을 소비하는 것

이 아니라 문화적인 브랜드를 향유하는 것이다. 그것이 원가로 따지면 얼

마 되지도 않는 옷이 비싼 이유다. 거기에는‘물리적인 옷+문화적인 가

치’
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처럼 옷의 문화적 의미에 집착하

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명품 브랜드들이 목숨 걸고 짝퉁을 막는 것이고, 많

은 브랜드들이 턱없이 높은 가격을 뱃심 좋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브랜드 가치의 상징인 상표를 버리는 것은 이러한 배경으로 보

았을 때 상식적이지 않다. 그들은 중요한 브랜드 가치를 포기한 대신 다

른 어떤 가치를 얻은 것일까?

일단 패스트패션의 특징은 유행에 민감한 다양성, 고품질, 초저가격이

다. 이 세 가지의 조합에서 사람들은 충분히 구매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좀더 깊이 들어가보면 소비자들은 구매를 원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저렴한 사치를 누리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보편

적 욕망을 자극한 것이 바로 이들의 성공의 비결이다.

이 얼굴 없는 브랜드의 전략은 바로 신사도다. 고객의 불편한 이중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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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존중하고 배려해준 것이다. 이것이 네트워크를 상대하는 데 왜 중요한

가? 소셜 웹 시대에는 오프라인 매장에서와 다른 새로운 원리를 따르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브랜드가 나온 것은 상표 때문이다. 상표가 등장한

까닭은 품질보증을 위해서다. 그것이 명품과 짝퉁의 차이를 말하고, 브랜

드를 말한다. 나이키면, 구찌면, 벤츠면 다를 것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인

식·지지·충성도를 위한 품질보증, 그리고 품질보증에 의한 인식·지

지·충성도, 그것을 위해서 상표가, 브랜드가 중대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 품질보증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이제는 이용자들의 네트워크

가 그들의 새로운 방식으로 결정한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의 사용 후기를 참조하고 제품의 구매를 결정한다. 고가의 IT

상품에 관해서는 다른 사람의 사용평을 참조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인간이 사업성적인 요소 외에도 인격적인 요소, 신뢰성, 진정성

등을 그 상품에 대한 지식과 정보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부분이

라면 가격을 배제한 가치 중심의 네트워크상의 교환이 탁월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네트워크는 특정 상품의 품질보증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제

공하기 위한 새로운 채널이 될 수 있고, 이미 그 역할을 하고 있다.71)

이는 브랜드 전략 자체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

다. 실제로 그 가치는 얼마 되지 않는데도, 문화적인 가치나 신화, 혹은

인간의 허영을 이용해서 원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그 허영의 대가로 지

불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브랜드 가격은 포기하고 저가에 고급 품질을

공급하되 값싸게 누리는 사치가 싼 티 나지 않도록 신사답게 배려해주는

‘얼굴 없는 브랜드’전략을 택할 것인지,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사실‘시대의 변화’
라는 전제는 그 답을 이미 내려놓았다. 영악한 이용

147
자들의 네트워크는 어느 시점이 지나면 더 이상 허영에 가격을 매기고 그

대가를 지불하게 하는 시스템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비자들의 품질보증에 대한 요구는 브랜드로 결정하는 것이 아닌, 이용

자들의 네트워크에 의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참조하고 결정하는 방식으로

옮겨갈 것이다. 품질보증의 필요성이 신뢰에 있다고 했을 때 후자가 더

신뢰할 수 있는 관계의 역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거기에서

사람들은 이윤을 주 목적으로 지식과 정보를 교환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품질보증에 관계된 지식과 정보를 얻는 원천이 확실하게 옮겨오는 날에

는, 기존의 브랜드 전략은 더 이상 상용화되지 않게 된다. 그때를 생각하

면 답은 분명하다. 네트워크를 상대하는 기업의 브랜드는 이제 허영이 아

니라 배려를 팔아야 한다.

구글,
‘제로의감수성’
을 3차원의 오프라인 세계를 포괄하는 또 다
이해하라 른 더 큰 세계라는 점에서 온라인 네트워

크는 한 차원 더 높은 4차원의 세계다. 마

치 지구가 대기권에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이제는 온라인이 오프라인 세

상을 감싸고 있다. 영화 <아바타>를 비롯해서 가상현실에 대한 연구 및

실험, 활용 등이 활발해진 까닭은 소셜 웹의 진전에 따라서 온·오프라인

의 경계가 점점 더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세상은 점점 더 디

지털화되고 있고 온라인 네트워크는 점점 더 실제 인간 사회를 닮아가고

있다.‘차원이 다르다는 것’
은 분명 한 차원 낮은 곳에서는 더 높은 차원을

148
이해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점이 선을 이해하기 어렵고, 선

이 면을 이해하기 어렵고, 면이 입체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온라인 네트워크에도 권력과 이윤이 존재한다. 이것은 기존의 행정망

이나 유통망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네트워크가 행정의 위계나 경영의 효

율에 따라 세워진 조직이 아니라는 데 큰 차이가 있다. IT 기술에 의해 만

들어진 연결성의 기본적인 속성은 지식과 정보의 대규모 협업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맺어진 사람들은 새로운 관계의 역학을 만들었다.

그것은‘가격을 배제한 가치 중심의 교환’


이다. 블로그 원주인과 글을 퍼

간 사람 간에 오가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신뢰와 명성이다. 기존의 행정망,

유통망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이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

가?

기존의 경제학 논리로 한번 생각해보자.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근

본적인 원인은, 경제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사실상 네트워크는 고정비용

중에 설비투자비용이 극도로 낮고 가변비용 중에 생산을 추가함으로써

발생하는 비용이 거의‘0’


에 가깝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서 블로그를 설

치한다고 했을 때, 자기가 직접 웹사이트를 제작하고 주소를 등록해서 개

설한 것이 아니라 일반 블로그 서비스 업체 중에 한 곳을 택해 개설했다

면 그때의 설비투자비용이라는 것은 극히 미미하다. 그리고 지식과 정보

가 복사되는 데, 글을 퍼가는 데 드는 비용은 0이다.

대신에 온라인 네트워크에서 사람들의 명성과 신뢰가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이유는 명성과 신뢰가 가격의 상징적 의미를 대체했기 때

문이다. 사실 화폐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돈은 사람들이 그

것을 가치 있다고 믿고 써주지 않는 한 그저 금속 조각이고 얇은 종이일

149
뿐이다. 돈이 거래의 수단으로 활용됐을 때 가치가 있다. 그런데 앞서 이

야기한 것처럼 온라인 네트워크에서는 이용자들에 의한 생산과 분배에

드는 비용이 미미하다. 이렇게 되면 가격을 청구할 수 있는 합리적인 근

거가 약해진다. 경제학 논리로서는 제로가 더 합리적이다. 바로 이때 가

격을 중심으로 한 교환체계가 설득력을 잃는다. 그래서 온라인 네트워크

에서 그 대안으로 나타난 것이 돈의 중개를 벗어난 가치와 가치의 맞교환

이다. 그것이 앞의 블로그의 예에서 확인해볼 수 있는 명성과 신뢰의 교

환 법칙이다. 이러한 온라인 네트워크 세계의 4차원 법칙에 대한 이해, 제

로의 감수성을 파악하는 것이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중요한 까닭은 무엇

인가?

그것은 애플과 함께 현재 시장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또 하나의 기업,

구글을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강하다’


는 느낌이 들면 구글

은‘무섭다’
는 느낌이 드는 기업이다. 낡은 인공위성 몇 개를 통해서 구글

맵스를 선보였을 때에는 참 신기한 일을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구글

맵스가 자동차 네비게이터를 비롯한 생활 곳곳에 침투하면서 기존 기업

의 사업 영역을 조금씩 장악해가는 것을 보면 도대체 이 기업은 무슨 생

각을 하고 무슨 일을 벌이는지 종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의

근원이 이해가 잘 안 된다는 것은 한마디로 구글이 4차원 기업이기 때문

이다. 구글은 4차원의 온라인 네트워크의 질서, 제로의 감수성을 자신의

영혼으로 갖고 있는 기업이다. 그래서 4차원 기업 구글을 이해하려면 4차

원의 온라인 네트워크 질서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 말은 4차원의 온

라인 네트워크 질서를 이해하고 있다면, 4차원 구글의 행보도 읽어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150
구글로부터 무엇인가를 산 적이 있는가? MS 같은 경우는 컴퓨터 살 때

억지로 딸려온 것이긴 했지만, 윈도우 운영체제는 다 구입해본 적이 있

다. 즉 돈을 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구글에선 무엇인가를 사본 적은 없

다. 그렇다고 우리가 구글을 안 쓰는 것도 아니다. 구글 검색 서비스를 많

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고, 지메일, 구글 닥스 등도 많이 쓴다. 우리는

구글에게 돈을 준 적이 없는데, 구글은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

들이고 있는 것일까?

사실 우리는 구글에게 돈을 준 적이 없지만 대신 우리의 지식과 정보,

우리의 개인 히스토리를 준다. 구글은 그것을 방대한 데이터로 쌓아놓고

있으며 애드센스 등을 통해 네트워크 연결망을 통한 광고 유통채널을 뚫

는 데, 그리고 자기네들의 검색 엔진의 맞춤성을 강화해 시장점유율을 높

이는 데 활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구글이 우리에게 공짜로 베푸는 것은

그들이 자선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들이 제로의 감수성을 잘 이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볍게 가격을 배제하고 가치 중심의 명성과 신뢰를

교환한 후에, 그렇게 쌓인 방대한 데이터를 네트워크 연결망과 기존 유통

망의 접점, 이 경우에는 에드센스를 활용해서 가격으로 다시 환전하는 것

이다. 이것이 구글의 비즈니스 모델이고 전략이다.

이것은 구글만이 독점할 수 있는 원리가 아니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다. 네트워크에 오면 네트워크의 질서와 그 감수성을 이해하

고 그에 기초한 비즈니스 전략과 모델을 수립해야 한다. 그것이 사람들의

변화된 합리성에 따른 합리적인 비즈니스다. 4차원은 이제 구글만의 특징

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상대할 모든 기업의‘황금률’


이 되어야 한다.

151
이용자의,
이용자에의한, 1863년 11월 19일,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

이용자를위한기업 설에서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민주국가는“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정부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네트워크를 상대하는 기업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이용자의, 이용자에 의한, 이용자를 위한’기업.

그것은 다음과 같은 시대적 환경의 변화에 기초한 것이다. 영악한 네트워

크가 등장했다. 네트워크는 기업의 경영 활동이 과거처럼 정보 비대칭의

구조를 통해서 소비자의 가치를 배제하고 기업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가 유지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기업과 그들의 상품, 서비스에 대

한 콘텐츠를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이용자들 내부

의 연결망을 통해서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소셜 웹의 시대에 다가갈수록 더 강화될 것이다. 왜냐하

면 소셜 웹이라는 것은 웹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회 생태계가 조성된다

는 것으로, 그때에는 온라인 네트워크라는 것이 지금의 행정망, 유통망

외에 제3의 연결망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덮는 4차원의 사

회적 대규모 협업의 저변으로서 기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이 이렇다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어디에 있는가? 과거의 황제

들과 왕들이 더 이상 신들의 영역에 가 있지 않은 것처럼, 기업도 근본적

으로 그 혼부터 바뀌어야 한다. 사회적이라고 하는 트렌드, 즉 이용자를

소비자가 아니라 창조자로, 수혜자가 아니라 동반자로 보는 시각과 관점

은 이제 몇몇 특수 기업의 특징이 아니게 될 것이다. 온라인 네트워크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소셜 웹의 시대에는 모든 기업이 다 소셜해야

152
한다. 소셜하지 않으면 신뢰를 얻을 수 없고, 신뢰가 없이는 가격을 배제

하고 이루어지는 가치 중심의 교환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통

망이라는 고지를 점령해놓고서 기업이 과거에 안주하는 경영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좋은 시절은 이제 끝나고 있다.

대신에 이용자의, 이용자에 의한, 이용자를 위한 기업을 세워보자. 유리

한 고지를 포기하고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간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말

자.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대공황과 경제 위기에서 살아남았다. 유니클로

는 불황 속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으며, 야나기 회장은 일본 재계의 선두를

다투고 있다. 구글은 닷컴버블에서 생존한 기업의 대표주자로서, 웹 2.0,

미래 인터넷 산업의 상징이다. 바닥에는 더 풍성한 기회의 공간이 있다.

153
금융 개혁, 저소득층에서 시작하라 l 소셜 웹이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l 소셜 웹 환경에서의 학습 혁명

l 오픈 컬처와 다음 사회

그것은 창조성의 혁명이다. 소비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창조는 인간의 본능이다. 디지털 문화는 창조

의 권리를 모든 사람에게 보편화, 대중화, 민주화시키고 있다. 누구든 IT 기기만 있으면 무한한 정보의 바다에

순식간에 접속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고, 그것을 개방하면 공유할 수 있고, 공유하면 또

다른 더 큰 창조성의 세계, 대규모 협업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대규모 협업의 역동적이고 유기적인 성장이

곧 창조성의 혁명이다. 그 시작은 소비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창조의 패러다임으로 옮겨가 자기 자신을 창조자로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것을 믿고 행동하는 사람이 많아졌을 때, 오픈 컬처는 새 시대의 주류 문화,

질서, 사회화의 배경이 될 것이다.


PART 3
소셜웹이
바꾸는세상
소셜 웹이다
Being Social web 09 금융개혁,
저소득층에서시작하라

위기의금융,
신뢰회복의비전 요즘 금융 하면 드는 일반적인 생각은 돈

을 많이 버는 일이라는 것, 그다음으로 드

는 생각은 돈을 많이 벌긴 하지만 그것이

별로 윤리적이지는 못하다는 것이다. 좋지 않던 그 이미지는, 카드빚으로

도산하는 수많은 가계들이 생겨난 최근의 금융 위기로 한층 더 강화됐다.

월가는 파생상품 등에 눈 먼 돈으로 땅 짚고 헤엄쳐서 돈을 벌었는데, 정

작 그 손실에 대한 책임은 사회 전체가 혈세로 지불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아가 서민들에겐 가차 없는 경제 논리가 대마불사론에

따라서 대기업, 거대은행을 대상으로 할 땐 너무나 너그러워지는 것을 보

고 그 억울한 정서는 더 사나워졌다. 땅에 떨어진 금융에 대한 신뢰는 현

재로서는 회복될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금융이 죽어야 우리가 사는 것은 아니다. 식칼이 잘 안 든다

고, 때로는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된다고 해서 칼 대신 손으로 음식을 썰

157
려고 하는 것은 무리이지 않은가. 따라서 금융 사고가 많이 난다고 해서

금융 자체를 약화시켜버리자는 것은 현명한 생각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가 가져야 할 방향성은 금융이 사회의 더 큰 선을 위해 활용될 수 있도록

근본적으로 다시 디자인하는 것에 있다.

현재 우리가 금융을 구하려고 하는 일들이 과연 실제로 금융을 구하고

있는가? 일단 어떤 방법을 생각하든 그 일이 시작되는 것은 현재이므로 현

재 시점에서 어떠한 금융 개혁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부터 생각해보자.

금융 위기 이후, 우리의 금융 구원책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숨죽

인 투자에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정부에서 돈을 대는 것이다. 이것은 어

떻게 보면 임시방편에 불과하고 나중에 감당 못할 빚만 산더미처럼 쌓는

일이다. 정부에서 발행한 돈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 돈으

로 만든 성장은 시간이 지나면 그 뿌리인 돈 자체를 썩게 만든다. 정도 이

상으로 푼 돈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인플레이션은 화폐가치 상실의

위험성을 남긴다.

따라서 각국은 절망적 시나리오에서 벗어나기 위해 출구 전략 exit strategy

을 생각하고 있는데, 문제는 혼자만 빠져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금리를 높여버리면 시장에 돌고 있는 돈은 좀더 금리가 낮은 곳으로 흘러

가버리니 잡을 수가 없다. 그 상황을 막기 위해서 각국의 공조가 중요하

지만, 그것은 말로 하는 약속 이상의 구속력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그

리고 각국이‘다 같이 잘 살자’
는 생각 말고도‘자기가 좀더 잘 살고 싶

다’
는 욕심을 가지는 한 그 공조는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인간의 이기심

에 기초하여 움직이는 우리의 경제 사회를 생각해볼 때 그 가능성은 얼마

든지 있다.

158
다른 갈래는 위기의 책임에 대한 부분으로서 야생마 같은 금융권, 특히

파생상품 등의 새로운 이슈를 어떻게 대할까 하는 부분이다. 지금 나오는

방법은 이 야생마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규제와 감독은 정부가 하는 일이다. 기업으로서는 이 정부에 의해서‘길

들여지는 길’
을 위해 스스로 자기 목을 내놓지 않는다. 정치 논리와 경제

논리가 맞부딪치는 부분이 있다. 이것 역시 지난한 길이다. 이렇게 결과

가 불명확한 방법들만이 금융 위기의 진실한 대안인가?

금융이 위기인 것은 사람들이 금융이 위기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친 상태에서 올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

민이 없으면 국가는 망한다. 소비자가 없으면 기업은 문을 닫는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신뢰하지 않고 외면한다면 금융은 붕괴하고 만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지금의 대안들은 이 부분을 해결하고 있는가?

즉, 돈을 풀어서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방법과 금융권에 대한 규제와 감독

을 강화시키는 방법으로 잃어버린 금융권의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을까?

금융 위기 당시 미국의 언론과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말이“이익은 사유

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한다 Privatizing profits and socializing losses ”


, 그리고“부자

를 위한 사회주의, 가난한 자를 위한 자본주의Socialism for the rich, and capitalism


for the poor ”
와 같은 말들이었다. 금융은 그러한 오명을 저와 같은 미봉책

으로 근절시킬 수 있는 것인가?

정직하게 말해서 아니다. 저 말 속에, 사람들의 불만 속에 뼈가 담겨 있

다. 소수가 이득을 보고 손실의 책임은 다수가 지는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경기활성론과 규제강화론 어느 쪽에서도 회복할 비전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시스템 자체를 고치지 않는 한, 금융이 거듭나지 않는 한,

159
진정한 신뢰 회복은 일어나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는 근본적인 개혁을

위한 비전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디자인할 수 있을까?

더많은사람들을위해
더잘쓰일수있는 위기 속에 기회가, 문제 속에 답이 있다.

금융 불신의 원인에 신뢰 회복, 신뢰 회복을 위

한 비전이 숨겨져 있다. 불만과 불신의 씨

앗은 동시에 혁신의 열쇠이기도 하다. 책의 전반부에서 문제 속에서 답을

발견한 사례로 닷컴버블의 교훈을 들었다.

첫째, 닷컴버블의 원인은 닷컴이‘닷컴’


이었다는 것이다.‘묻지마 투자’

가 문제였다. 닷컴이 무엇인지, IT가 무엇인지 그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없

이 비이성적 열기에 돈과 머리를 다 맡겨버렸다. 그 결과는 버블, 그리고

붕괴였다. 둘째, 그 대안으로 등장한 비전 웹 2.0은 사실 IT가 무엇인지 그

정체성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단서였다. 그에 따라 사람들은 버블의 내

부에서 벗어나 외부에서 IT를 보기 시작했고 덕분에 IT 산업은 다시 호황

을 맞고 있다. 결국은 인간의 필요와 수요가 본질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

이다. 그리고 좀더 튼실한 기반 위에 IT 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다. 교훈은

이것이다. 내부 기술의 현란함을 벗어나서 외부의 필요와 목적에서 그 기

술의 본질적 사용법을 생각하는 것이다.

같은 위기 회복의 논리와 수순을 금융의 위기에도 적용할 수 있다. 금융

위기의 문제 해결의 핵심은 신뢰 회복에 있고,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경

기활성론과 규제강화론 정도로는 안 되고 궁극적으로 비전을 제시해야

160
한다. 이 비전 제시란 무엇인가? 저 위의 닷컴버블의 교훈을 가지고 생각

해보면 그것은 해당 산업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느냐라는 질문의 답이었

다. 비전 제시라는 문제는 앞서 닷컴버블의 극복 사례에서처럼, 정체성에

답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 단계는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 것이냐다. 역시 닷컴버블의

극복 사례에서 생각해보면 내부에서 외부로 시각을 돌리는 것이 중요하

다. IT 산업의 시각이 닷컴시대 내부로 한정되었을 때에는 기술과 제도의

발전밖에, 돈벌이 수단밖에 보지 못했다. 좀더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이지

만 곧 같이 망하는 길이었다. 비이성적인 인간의 열기는 언제든, 얼마든

지 방향이 바뀔 수 있는 것이고, 실제로 바뀌었다. 그러한 기반 위에 지속

가능한 산업의 발전이라는 미래를 그릴 수 없다. 그러다가 위기를 맞아 IT

산업은 외부로 시각을 돌려 사회의 필요와 수요를 생각하게 되었고 끊임

없이 그것이 왜 필요하며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를 묻게 됐다. 사회의 필

요와 수요는 좀더 항구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좀더 건실한 산업의

기반을 닦고 오늘의 호황을 다시 누릴 수 있게 됐다.

따라서 그 위기 극복의 대안과 비전을 위해서 정체성을 묻는다면, 우리

는 안이 아니라 밖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밖에서 금융의 정체성을 묻는다

는 것은 바로 어떻게 하면 금융이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잘 쓰일 수 있는

가 고민하는 것이다.

사실 그 질문이 금융을 태어나게 했다. 우리가 잊었던 금융의 존재 목적

이 그것이다. 현대 금융의 양대 기둥인 증권과 보험 중, 보험의 역사를 생

각해보자. 보험이 애초에 왜 등장했을까? 노령보험, 재해보험, 생명보험

등과 같은 보험은 왜 중요한가? 그것은 한 가정의 가장 내지는 소득을 가

161
장 많이 얻는 사람이, 보통은 성인 남성이, 나이가 들거나 재해를 당하거

나 사망할 경우 그 집안에 큰 경제적 위기가 닥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

난한 집일수록 더 심하다. 그 상황을 극복하고 이겨낼 기본적인 자본금이

없다면 가난이 세습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 미래에 다가올 큰

위험을 미리 예측하고 그것을 사전에 현재의 능력으로서 감당할 수 있도

록 준비하고 도와주는 것이 바로 보험이다. 실제 이 보험이 처음 적용되

었던 근대 유럽의 비스마르크의 독일은 산업혁명의 발원지인 영국보다도

더 부유하고 안정된 사회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금융의 두 갈래 뿌리

중 하나의 역사이다. 금융은 이렇게 태어났다.72)

이렇게 볼 때 금융은 실물경제와 상관없이 쉽게 돈을 벌기 위한 수단도

아니고 버블을 일으키고 수익은 소수가 다 챙긴 뒤 그 피해와 책임 전가

는 사회에게 다 넘기는 존재도 아니다. 금융은 사회의 잠재적인 불안 요

소와 위험 요소를 시장을 통하여 관리해서 사람들이 보다 안정적이고 풍

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다. 이것이 금융이 고도로

발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놓쳐버린 철학과 사명이다. 동시에 이것이 우

리가 찾아야 할 금융의 정체성이며, 앞으로 초점을 두고 발전시켜나가야

할 비전이다.

소셜네트워킹형
미소금융과 정체성을 회복하고 그를 통해 비전을 발견
제3세계를위한보험 했으면, 그다음에 할 일은 비전이라는 목

적지를 향해 갈 교통수단을 택하는 것이

162
다. 우리에게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 가능한 기술에는 무엇이 있는

가?

그것은 금융의 성격을 생각해볼 때 IT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금융에 대

해 좀더 기술적인 관점에서 정의를 내려보았을 때, 금융은 확률과 통계를

가지고 미래 시점의 상황을 가정하여 그때 일어날 사건에 대한 기대의 정

확도에 따라서 가공된 상품의 거래에 관한 제도와 기술이기 때문이다. 예

를 들어 재해보험을 생각해보면 미래 시점의 재해 발생에 대한 기대도에

따라서 가공된 보험상품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것에 대한 확률과 통계

에 기초하여 현재 시점에서 합리적이라 여겨지는 가격으로 미리 지불해

그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다.

말은 어렵지만 핵심은 결국 금융의 기술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데

이터의 수집과 활용이라는 것이다. 위의 정의에 따르면 미래 시점의 사건

발생률에 대한 정확도가 매우 중요한데, 그것을 위해서는 방대한 데이터

를 모을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정확하게 분석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

다. 그러한 역할을 기계가 한다면, 그 기계는 인간의 어느 부분을 따르고

있는 것인가? 뇌다. 그리고 뇌를 모방해서 발전하고 진화하는 것이 IT다.

따라서 기술적으로 금융을 정의해보면 금융과 IT는 별개지만 한 발씩 묶

고 나란히 뛰는 러닝메이트다.

그럼 소셜 웹의 시대와 금융의 위기 해결은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 소

셜 웹으로 IT가 재정의해서 발전한다는 것은 첫째, 데이터의 수집이라는

측면에서 그 범위와 정도가 훨씬 더 깊고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

셜 웹은 새로운 사회적 연결망으로 이제 기존의 정부 행정망과 기업 유통

망을 포괄하고 있다. 사회 전반의 거의 모든 지식과 정보가 이제 소셜 웹

163
으로, 데이터로 흡수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추세다. 오프라인은 점점 더 디지털화되고 있다. 둘째, 활

용이라는 측면에서 창조성의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은 더 많

은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흡수된 지식과 정보를 더 쉽고 빠르게 쓸 수 있

는 방향으로 소셜 웹이 나아갈 것이라는 의미다. 사람들의 수요와 필요를

따르는 쪽으로, 인간이 기계를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인간을 닮아

가는 방향으로 기술 혁신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지식과

정보를 더 쉽고 빠르게 쓸 수 있기 위한’것이 소셜 웹의 존재 의의 중 하

나이기 때문에 그 방향성은 꺾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 최근의 IT의 발전, 소셜 웹으로의 성숙이 의미하는 것은

금융이 기술적으로 더 정확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쓰이는 것이, 민

주화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으니 정확성이 높아지고, 그 데이터를 좀더 쉽게 빨리 쓸 수 있으니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적 변화가 이끌어낸 금융의 잠재력의 향상이‘더 많은 사람

들을 위해 더 잘 쓰일 수 있는 금융’
이라는, 금융의 새로운 정체성과 비전

을 위해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증권과 보험이라는 금융의 양면에서 실

제적인 사례를 가지고 좀더 깊이 생각해보자.

증권 차원에서는, 국내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이긴 하지만“키바


Kiva ”73) 라는 인터넷 서비스에서 살펴보자. 인터넷을 통해 제3세계의 잠

재적 기업가들에게 미소금융의 원리에 기초한 소액대출을 받을 수 있도

록 도와주고, 나아가 기부자와 그것을 받는 제3세계의 잠재적 기업가의

관계를 소셜 네트워킹 기술을 통해 구축한 것이다. 상호 신뢰의 형성을

164
통해서 좀더 투명하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돈이 제1세계에서 제3세계로

흐를 수 있도록, 그래서 제3세계의 가난이 그들 스스로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다.

이 서비스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가 창

설한 그라민뱅크의 미소금융과 같다. 그라민뱅크가 한 일은 은행 문턱을

낮춰서 방글라데시의 빈민들에게 소액대출을 해주고 그들이 그 자본금을

바탕으로 해서 가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더 많은 사람들

을 위해 더 잘’금융을 쓰는 정체성과 비전이 사용된 예이고, 덕분에 무하

마드 유누스는 2006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핵심적인 차이는, 키바는 소액대출의 아이디어를 소셜 네트워킹이라는

기술적 디자인에 접목시켜 좀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고, 동시에

그것이 관계의 형성을 통해서 투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소셜 네트워킹 기술은 한마디로 이용자들의 관계를 통해서 정보와 지

식이 재해석될 수 있는 문맥을 만드는 기술이다. 미국의 인맥 형성 서비

스인 페이스북이 그러한 소셜 네트워킹 기술이 적용된 대표적인 예다. 간

단한 예로 객관적인 정보, 꽃 한 송이가 있다 치자. 그 꽃을 길거리의 판

촉원이 주는 것과 오랫동안 남몰래 날 좋아하던 사람이 멋진 고백과 함께

주는 것이 같은 의미를 가질까? 분명히 다르다. 일반적인 지식과 정보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객관적이라 할지라도 누가 주느냐에 따라서 신뢰도

가 달라진다. 그러한 이해가 최근 소셜 네트워킹 기술을 통한 서비스에

의존하는 지식과 정보의 검색이 구글 등을 통한 단순 검색보다 앞서고 있

는 까닭을 설명해준다. 페이스북의 경우 현재 회원수가 4억 명이 넘는 데

165
다가 일주일에 50억 개가 넘게 업데이트되는 지식과 정보들을 공유하고

있고 8만 개가 넘는 외부 사이트들이 페이스북에 연결되어 있다. 배포 서

비스인 애드디스AddThis 의 통계자료를 참조했을 때, 시장점유율이 페이스

북은 33%, 이메일은 13%, 트위터 9%, 구글 6% 등으로 소셜 네트워킹 서

비스인 페이스 북과 트위터만 합쳐도 40%가 넘어, 단순 검색 서비스에서

소셜 네트워킹을 활용한 매체로 인터넷 시장의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

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어떤 정보를 신뢰하기 위해서는 누가 그

정보를 줬느냐가 중요한데, 그 해결책을 위한‘관계를 통한 해석의 맥락

을 소셜 네트워킹 기술이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74)


형성’

소셜 네트워킹이 키바에 적용되면서 키바는 미소금융의 아이디어를 어

떻게 개선하고 있는가? 간단히 이야기해서 내가 아프리카 빈국의 한 사람

을 돕고 싶다면 웹 사이트를 통해서 해당 지역에 내 돈을 필요로 하는 사

람을 찾아볼 수 있고, 그 사람이 내 돈으로 무엇을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실시간으로 내게서 돈을 빌린 사람이 내 돈을 얼마나 갚고 있는지도 확인

할 수 있다.

그라민뱅크에서 소셜 네트워킹을 활용한 키바 모델로 가면서, 공급자

의 폭이 전 세계의 온라인 네트워크로, 무한대로 확장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라민뱅크가 하던 일, 즉 유통망이 하던 일을 소셜 웹의 연결망

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것은 기존의 기부 위주의

국제개발의 맹점을 극복한 것이다. 이전에는 아프리카 빈국의 한 사람을

돕는 일은 국제기구나 재단, NGO 등에 대한 기부 형태로 이루어졌다. 기

부는 내가 주는 돈이 언제 어떻게 쓰이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제3세계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자국민의 빈곤만큼이

166
나 그들 정부의 부패 문제가 심각하다는 상황을 고려할 때 무시할 수 없

는 이슈다. 그러나 키바의 경우에는 실제 돈의 활용을 소셜 네트워킹을

통해서 확인해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돈의 흐름에 대한 투명성

를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키바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다. 일례로 엘리자베스 오말라 Elizabeth Omalla 라는 한 우간다 여성은 과부

이며 일곱 자녀를 부양할 책임을 가졌다. 그녀는 2000년도에 마을 기업

펀드Village Enterprise Fund 에서 100달러를 대출받았으며 그 돈으로 야채 장

사를 시작했다. 1년 후 마을 기업 펀드에서 제공하는 기업가 수업을 받았

고, 그 덕택으로 우간다의 주식인 어류를 취급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

후 그녀는 다시 500달러를 키바로부터 빌려서 자신의 사업을 확장했고 노

점상에서 정식 시장의 상인으로 데뷔했으며, 곧 도매상인이 됐다. 이 사

업은 그녀의 인생을 바꿨다. 이제 그녀는 잘 차려입고, 자녀들을 교육시

키고, 두 마리의 소와 다섯 마리의 염소를 사고, 500달러를 모두 갚았으

며, 2005년 11월 그녀의 통장에는 320,000우간다 실링, 미국 달러로 130

달러가 있다.75)

이러한 이야기들이 이미 키바에 축적되어 있고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는 것은 그 자체로 기부와 원조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고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강력한 유인 동기가 된다. 이전에는 제3세계를 돕는다는 것이 주

로 돈을 주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소셜 네트워킹을 활용한 미소금융의 아

이디어, 키바의 모델을 통해서, 돈의 투명한 흐름을 통해서 실제로 사람

을 살리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향상된 통계 수

치 같은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람의 변화를 우리의 눈으로, 그들의 이야기

167
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소셜 네트워킹이 미소금융에 적용된

결과다. 그것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의 맥락을 통한 재해석인 돈의 흐름

을 투명한 관계로, 수치적 결과를 실제적 인생의 변화로 바꿔놓았다.

나아가 보험 차원에서는, 아직 실현된 것은 아니나, 예일대 경영대학원

의 로버트 쉴러Robert J. Shiller 교수가 내놓은 아이디어가 있다. 바로 제3세

계 농민들의 불안정한 농산물 수확량으로부터 오는 위험을 관리하기 위

한 보험 상품의 제안으로 그가 운영하는 경제 논설 포탈인“프로젝트 신

디케이트Project Syndicate ”
에 소개된 바 있다.76)

먼저 저개발국가에서 불안정한 농산물의 수확량이 큰 문제인 것을 잘

생각해보면 이것이 보험의 본 목적, 사람들의 위험 관리를 통해서 그들이

안정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이루는 데 이바지하고 도움을 주는 것에 어떻

게 연결되는지 알 수 있다.

저개발국가에서 농작물 수확이란 생존이 달린 문제다. 만약 한 해의 수

확이 저조하다면 해당 농부는 급기야는 농기구도 팔아야 하고 파산할 지

경에 이른다. 생산 설비마저 팔아야 한다는 것은 재기의 기회를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문제는 선진국의 구호 자금과 물품, 인력이

사태가 이미 상당히 진전된 후에나 온다는 것이다. 빈곤 문제에 대한 권

위 있는 경제학자 폴 콜리어 Paul Collier 가 쓴『빈곤의 경제학 The Bottom


Billion 』
을 보면 제3세계의 차드Chad 라는 나라에서는 부패의 문제로 의약

품의 정부 보급이 해당 지역에 전달된 것은 1%에 불과하다.77) 재해가 농

작물 수확에 영향을 미친 경우에는 더 심하다. 동남아의 쓰나미나 아이티

의 지진을 생각해보자. 구호에는 타이밍이 중요하지만 국제사회의 호소

와 참여는 것은 이미 늦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전에 보험으로서 이를

168
관리할 수 있다면 이들 삶에 큰 안정을 제공할 수 있다.

그동안 민간 보험회사들이 이 같은 보험 상품을 만들지 못했던 이유는

도덕적 해이 때문이다. 만일 보험회사에서 주는 보상금을 노리고 의도적

으로 농작물 수확을 망치면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러한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보험회사에서는 분명한 사회적 필요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손실을 명목으로 이러한 상품 개발을 망설여왔다. 그렇다면 도덕적 해이

는 과연 피하지 못할 문제인가?

기술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도덕적 해이란 인간의 도

덕이 문제인 것이다. 인간이 개입할 여지를 줄인다면, 즉 의도적으로 보

험금을 노리는 행위를 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한 조건에서 배제시킬 수 있

다면 이러한 제3세계를 위해 특화된 보험을 개발할 수 있다. 예상 수확량

에 따라 보험금을 책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 강우량, 일조량 등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자연환경적인 변수들에 보험금 지급을 연동시키면 된다.

현재의 데이터베이스의 수집과 활용 기술의 발달 수준에서는 그러한 통

계적인 분석을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보험 상품을 도입하

면, 자연재해라는 제3세계 사람들의 생계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위험을

도덕적 해이의 우려를 덜면서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으므로, 안정적

인 자산 축적을 통해 그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사는 데 근본

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렇게 증권과 보험이라는 금융 양면의 사례들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IT

기술의 발전은 금융을 본 목적에 맞게 활용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를 통해서 소액대출

의 아이디어를 전 지구적으로 적용할 수 있고,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의 축

169
적과 활용을 통해서 자연재해와 같은 큰 위험으로부터 제3세계의 농부들

을 보호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 이러한 일들이, 이 이상의 일들도 불가능

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핵심은 금융이라는 제도와 IT라는 기

술에 관련된 철학과 비전을 처음부터 왜, 어디에,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물음들이다.

나아가 그것은 제3세계라는 다소 우리와는 동떨어진 특수한 국가와 빈

곤으로 인한 위기에 처해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제3세계에

서 일어난 금융 혁신은 이제 방글라데시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우리 한국

에도“미소금융”
으로 실험되고 정착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러한 필요

가 있는 것은 방글라데시뿐 아니라 양극화가 날로 심각해져가는 한국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셜 웹의 아이디어들, 소셜 네트워킹을

활용한 미소금융이라든지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여 도덕적 해이를 줄이

는 재해 대상 보험 같은 것은 얼마든지 선진국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러

한 추세가 현실화된다면 소셜 웹 시대의 보통 사람을 돕는다는 새로운 목

적과 철학, 그에 걸맞은 기술과 제도를 갖춘 금융, 사람들의 진정한 신뢰

를 회복한 금융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170
Being Social web 10 소셜웹이빈곤문제를
해결할수있을까?

빈곤문제앞에서의
불편한침묵 흔히 부자가 빈자를 외면한다고 한다. 부

의 형성이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한 사회적

배경도 있었음을 생각해볼 때, 축적된 부의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하는 그

들에 대한 지적은 일견 타당하다. 유명 경영 컨설턴트 말콤 글래드웰


Malcolm Gladwell 이 그의 베스트셀러『아웃라이어Outliers 』
에서 전달하고자 했

던 것도 성공, 그중에서도 미국 사회에서 신봉되는 성공의 유형인 자수성

가라는 것도 실제로는 자연적·사회적·문화적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

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캐나다 하키 선수들 중에 특정 달에 출생한 사람이

많은 까닭은 그들이 좀더 일찍 태어났기 때문에 더 발달한 신체를 가지고

있어 유년에 받았던 선별 테스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78) 가

진 자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우리에게도 사실 면죄부는 없다. 우

리 역시 지구상 40억의 인구, 제3세계에 대해 눈을 감고 있다. 지구적 차원

171
에서는 부자에 속하는 우리가 빈자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경제 규모가 작다고 해서, 그들 40억의 부를 다 합쳐보아도 몇

개 선진국의 합만 못하다고 해서 그들 한 명 한 명의 생명이 사소하거나

가능성이 작은 것은 결코 아니다. 단순히 현재의 경제 규모만으로 이들을

무시하는 것은 양심적이지 않다. 동시에 우리가 지금 말하는 소셜 웹이

말로는 인간과 사회를 말하면서도 그 범위에 이 40억의 인구까지 포함하

지 않는다면 그것은 합리적이지도 않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큰 위기에 처해 있다. 한마디로 이들은 최빈국가

다. 여기서의 빈곤은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말하는 빈곤과는 차원

이 다르다. 이들의 빈곤이란 상대적 빈곤이 아닌 절대적 빈곤이다. 이것

은 빈곤의 기준을 정하는 데 세계적 명성을 가지고 있는 마틴 라발리온


Martin Ravallion 이 지난 1990년, 2005년에 세계은행the World Bank 의「세계개

발보고서World Development Report 」


를 통해서 발표한 자료를 토대로 한 것으

로, 미국 달러를 기준으로 하루에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말한다.79) 이것도 사회적 인프라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2달

러 미만이다. 전기 같은 근대적인 사치는 당연하고 먹을 만한 물을 구하

는 것조차 힘들다.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내전이 발생했을 당시 약 100일 동안 해

당 국가의 인구의 약 10%인 100만 명 가량이 죽었다. 그리고 200만 명이

난민으로 떠돌게 됐다. 그렇게 많은 숫자가 죽었는데도 국제사회는 외면

했다. 몇 해 전, 수단 다푸르에서 대량의 인종학살이 일어났다. 인종학살

은 감정적으로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체

계적인 잔학 행위다. 거기에는 집단 강간 등을 통해서 인간의 의식에 공

172
포를 주입해 그들을 제압하고 조종하기 위한 목적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잔학행위는 인권을 사회의 중심적 가치로 삼는 선진사회에서 유

령처럼 희미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근래에는 아이티에서 지진이 발생

해 대통령궁이 폭삭 가라앉고 수많은 인명이 대재앙과 사회적 혼란으로

동시에 위협받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갈지 모를 일이

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였는가? 우리가

지금 보이고 있는 잠시 들뜬 관심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물론 우리들의 인식과 관심 부족만이 책임이라는 것은 아니다. 하버드

케네디 행정대학원의 사만다 파워Samantha Power 는『미국과 대량 학살의

시대A Problem from the Hell 』


라는 책에서 인종학살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아

르마니아의 인종학살에서부터 르완다의 인종학살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강대국과 국제사회가 어떻게 이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지 보

여준다.80) 좀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1994년 르완다에서 100일 만에

100만 명이 죽어나가는 인종학살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

국의 국무부 장관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 는 기자회견에

서 인종학살이라는 말 자체를 쓰기를 꺼렸다. 그 단어를 씀으로써 미국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자신의 국익에 실질적으로 돌아오는 것은 없으면서

도 져야 하는 인도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다.81) 물론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질서의 유지를 통해서 세계평화가 이루어진다면 국제 사회의 번영이

라는 크나큰 혜택이 있을 테고, 그것을 통해서 미국도 테러 등의 위험으

로부터 다소 해방되고 안정적 발전의 기반을 닦을 수 있지만, 미국의 입

장은 그러한 공공재 생산을 위해서 미국만 손해를 볼 수 없다는 것이었

다. 특히 자국민을 전장에 내보내는 것은 언론과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173
민주국가의 정부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다자주의를 택하고 있는 UN이라고 할지라도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

니다. UN은 자체적인 힘이 있는 것이 아니고 회의에 의한 회원국들의 동의

와 결정에 의존하며, 그 재원과 인력 역시 상당 부분 강대국이 장악하고 있

으므로 그들의 의사 결정에 기대는 바가 크다. 이는 UN 스스로 국제 사회

를 이끌어나가는 데에는 무리가 있고, 어디까지나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들의 합의와 강대국들의 의지가 동반되었을 때에 효과적으로 국제사

회의 단결된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기관으로서 작동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UN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생각했을

때, 물론 이러한 제3세계의 위태로운 상황이 지속되는 데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강대국의 인도적 책임 회피 문제와 UN의

효과성 개선 문제 등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가 일어

나도록 여론을 주도하고 촉진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 다시 말

해 변화를 인식하고 그 필요에 공감하고 사회 전체에 그 의식을 확산시키

고 결국은 실제적인 변화를 행동으로 촉구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주

어져 있고, 그래서 그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제3세계의 사회 발전에 대해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

과 책임과 실제 우리의 인식 사이에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문제는 강대국과 UN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간단하게 인터넷에

서“빈곤 문제”
를 검색해보면 검색 결과 자체가 빈곤하다. 이것은 우리의

실제적인 사회 인식의 빈곤을 말한다. 지구상의 대다수 인구, 40억의 삶

과 죽음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너무도 무관심하다는 것이 씁쓸한 우리의

자화상이다.

174
소셜웹,
빈곤문제에대한 문제는 빈곤 문제에 대한 정보가 공공재의

공감확산의통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구상에 40억

의 수요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정보는

언제나 그 수요보다 적게 생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서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할까?

첫 번째는 온라인 네트워크를 이용한 이용자들 간의 협업을 통해서 웹

상에 공개된 양질의 정보인 공공정보public knowledge 를 생산하여, 빈곤 문

제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 가능한 형태로 축적

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프로젝트의 한 예가 공익 NGO인“세

계화와 빈곤 문제 공공 인식 프로젝트Globalization and Poverty Public Awarnesss


Project : http://globalizationandpoverty.org 통상적으로는‘GP3’라고 부른다 ”
에서 하고 있는

일이다. 여기서는 온·오프라인으로 나눠서, 온라인으로는 영어 자료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동시에 한국어 온라인 디지털 콘텐츠를 수집하고 창

조해서 지구촌 빈곤 문제 정보를 모은 온라인 아카이브를 만들고 있다.

오프라인으로는 관련 주제의 토론대회, 빈곤 문제 교육캠프 등을 통해 해

당 이슈에 대한 인식을 확대시키고, 이 문제에 참여할 더 많은 미래의 전

문가들을 준비시키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진행하는 GP3 프로젝트의 기본적인

운영이 이용자들 간의 온라인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빈곤 문제에 관련된

지식과 정보를 함께 모으고 생산하는 방식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것은 기존의 일방적 정보전달 매체를 통한 구호사업의 한계를 혁신하고

있기 때문에 의의가 있고, 이 모든 것이 자발적이고 순수한 동기를 가진

175
20대 네티즌의 온라인 협업에 의한 집단지성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

서 디지털 문화를 활용한 새로운 빈곤퇴치운동으로, 대안적 사회운동으

로서 의미가 있다.

네트워크를 통해 생산된 지식은 다시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되어 이용

자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확장되는데, 그것은 현재 사회가 웹을 중

심으로 한 새로운 정보 생태계인 소셜 웹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사회

전체의 빈곤 문제에 대한 인식과 관심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빈곤 문제에 대한 다양한 원인 분석과 창조적 해결책들이 사회 전

체적으로 공유된다면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통해서 빈곤 문제에

대한 실제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여론의 움직임을 강화할 것이다. 이러한

대중의 인식과 지지는 NGO, 재단 등의 기부 문화 형성과 정부와 기업의

국제구호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빈곤 문

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여기서 분명히 생각할 것은 변화의 주체를,‘그들’


을 제외한 채‘우리’

로만 한정시킨다면 빈곤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강대국과

UN, 그리고 우리의 인식 문제 외에 그들의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 실제

변화의 주체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개발의 이슈 중 하나는 과연

해외원조가 빈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아프리카 출신 경

제학자인 담비사 모요Dambisa Moyo 는『죽은 원조Dead Aid 』


에서 무분별한

원조가 오히려 자생적인 아프리카 경제 발전을 헤치고 있다고 주장하기

도 했다. 그 돈들이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만 살찌우고 있다는 것이다.82)

공공인식이 확대되어 정부와 기업이 원조와 지원을 좀더 활발히 한다고

할지라도 그 돈과 식량이 그들의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는

176
않는다. 필요한 것은 단순한 관련 여론의 강화가 아니다. 그 이상을 생각

해야 한다.‘그들 자신’
을 배제시키고 과연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우리 자신에서 생각해보자. 한국은 미국이 세계대전 이후 지원했던 수

많은 나라들 중에서 서독과 일본 등 본래 강대국이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

던 나라를 제외하고 후기식민주의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의 문턱

에 진입한 나라다. 이에 대해서 미국의 동아시아 전문가인 브레진스키


Gregg. A. Brezinsky 는 그 까닭을 한국이 미국의 지원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

는 정치적, 경제적 자원과 역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83)

우리가 도덕적 책무를 다했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위해서가 아니

라 실질적으로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제3세계의 국가에 돈과 식

량을 가져다주기 이전에 정부와 기업을 움직이고 여론을 만드는 일과 함

께, 어떻게 하면 그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지, 그 내부적인 역량의 건

설capacity-building 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즉 인식의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빈곤 문제를 모른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 해법에 대해서도 너무 좁은 식견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그라민뱅크·그라민폰,
제3세계소셜웹의 어떻게 우리는 최빈국가를 스스로 일어설
가능성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가? 원조와 지원

을 받더라도 그것을 능동적으로 수용해서

실제적인 개발의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세워줄 수 있는가?

177
스스로 일어난다는 것은 쉽게 말하자면 사회적인 인프라, 기본적 역량

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라리아 퇴치약을 지급하더라도 그것

을 보급할 행정체계, 실제 투약을 위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것은 문맹에게 책을 보여주는 일과 마찬가지다. 이 예는 최빈국

가의 역량 부족의 문제가 결국 통로의 부재에서 나타나는 문제임을 직접

적으로 말해준다. 제1세계의 부와 지식, 정보를 제3세계로 옮기려면‘어

떤 통로’
를 통해야 하는데, 그 자체가 없거나 막혀 있는 것이다.

제1세계에서는 사회 발전 과정에서 그와 같은 부와 지식과 정보의 통로

역할을 정부, 곧 행정망과 시장 등 유통망이 해왔다. 그런데 제3세계에 그

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보와 시장, 행정망과 유통망이라는 통로가

존재하는가?

2006년 11월 기준으로 UN 가입국은 약 192개국에 달하지만 그중에서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나라, 국가의 기본적 의무인 국민의 안전과 보호를

제공하는 국가는 그렇게 많지 않다. 유통망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는 손이 그것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틀을 짜줬을 때 작

동할 수 있다. 법의 지배가 미약할 때에는 경제 활동이 활성화되기 어렵

다. 개인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부를 축적하는 것은 그것을 자신이 소

유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인데, 만약 해당 국가의 정부가 이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편의에 따라 침해할 경우, 애초에 그의

경제 활동에 대한 의지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국의 국제개발부

서Departmen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책임자인 힐러리 벤Hilary Ben 은 정치

제도를 근거로 해서 정부가 원조 금액을 생산적으로 쓸 수 있는 지역에

선별적으로 지원을 할 때 개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 바

178
있다. 정부 능력이라는 혈관이 있어야만 원조 금액이라는 수혈액이 효과

적으로 해당 공동체의 회복과 재생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발 효

과라는 것이 곧 유통망의 탄생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행정망의 토양이, 정부력이 약한 곳에서는 유통망도 자리잡기 어렵다

는 것을 알 수 있다.84)

그렇게 보면 제3세계의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제3

세계의 국가들은 사람으로 생각하면 피가 통하는 통로인 핏줄이 말랐거

나 끊긴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약을 처방할지라도 회복되기가 어렵

다. 이들을 살리려면 좋은 영양소를 공급하는 것 외에도 어떻게 하면 이

들에게 연결성을 회복시켜줄 것인가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연결성’
의 대목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을 것이다. 바로 IT다. 물론, 국제

개발 이슈에서 IT를 이야기하니 매우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은 그렇지 않다. IT는 기술이나 기계가 아니라 조직, 문화, 인간에 관한 것

이고 그 중심에는 네트워크가 있다. 네트워크는 사람들을 조직화할 수 있

는 행정망과 유통망 외의 연결망을 기술적으로 새롭게 창조한 것이다.

여기서 IT를 이야기하는 중요한 이유가 이 네트워크와 관련해서 있다.

그 정도의 연결망을 행정망, 유통망으로서 조직하려면 기술적으로 해결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행정망과 유통망은

물리적인 부분까지도 인간이 그 핵심 구성 요소이고, 따라서 관련된 학습

과 교육 등에 장기간의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IT는 하드웨

어, 소프트웨어, 온라인 디지털 콘텐츠 영역 중 앞의 두 가지는 기계로 당

장에 대체해버릴 수가 있다. 지금까지 지체되던 발전을 시간 면에서 훨씬

단축할 수 있는 것이다.

179
나아가서 이것은 행정망과 유통망에서 국제개발에 관련해 고질적으로

지적되던 문제들을 피해갈 수 있는 새로운 연결망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

다. 행정망은 그 사이에 권력이 끼어 있어서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를 피

할 수가 없다. 유통망은 부패한 국가와 저개발국가의 자원에 손을 뻗친

다국적기업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IT에 의한 연결망

위에 구축된 인간 네트워크는 다르다. 네트워크의 연결성은 그 연결의 고

리가 권력과 이윤을 매개로 한 것이 아니다. 연결성이 가진 성격 자체가

개방성이다. 권력과 이윤에 한정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정부와 기업이

라는 중간책이 없더라도 실제 사람들 간의 부와 지식과 정보의 교환을 IT

가 활성화시킬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이러한 교환의 활성화는 그동안 왜곡되어 있던 행

정망과 유통망의 기능과 질서를 회복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IT 기기 중에서 휴대폰이 최빈국가의 사람들에게 보급되었다고 치자. 모

든 사람이 그것을 소유하는 것은 무리일지라도, 적어도 한 마을에 하나만

있어도 된다. 예전 우리가 못살던 시절 한 동네에 하나씩 있던 TV처럼 말

이다. 정부의 지침과 경보 등이 전국으로 쉽게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정

부 행정망을 넓힐 수 있다. IT 연결망을 통한 네트워크의 활성화를 통해서

그동안 미루고 미루어진 제3세계의 사회 발전을 앞당길 수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빈곤의 종말 The End of Poverty 』


의 저자로 빈곤 문제 해결에 관한

전문가인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제프리 삭스 Jeffrey Sachs 교수는 사회활동

에서의 절대적인 소외가 절대적인 빈곤을 야기하는 것을 생각할 때, 휴대

폰이 전에 없던 연결성을 창조하기 때문에 빈곤 퇴치에 가장 효과적인 무

기라고, 2009년 2월 <올아프리카 AllAfrica.com >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적한

180
바 있다.85)

이것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현재 전 세계 휴대폰 가입자 수는

약 33억 명이고, 그중에 약 2억 8천만 명의 가입자가 아프리카에 있으며

이 시장은 가장 빠르게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86) 정부 행정망과 기

업 유통망이 주춤하고 있는 사이에 IT 연결망은 지속적으로 그 영향력을,

가능성의 범위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IT의 연결망 확대는 제3세계의 사회 발전을 이끈다. 방글라데시에는 무

하마드 유누스 박사의 그라민뱅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크발 콰디르의

그라민폰Grameenphone 이 있다. 역시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경영 명문 펜실

베이니아 주립대학 와튼스쿨에서 MBA를 받은 그는 일찍부터‘연결성=

생산성’
이라는 감을 잡고 있었다. 그가 태어난 방글라데시부터 그가 일했

던 뉴욕 증권시장까지, 문제는‘연결성=생산성’
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

다. 방글라데시는 연결망이 부재하기 때문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의사

를 찾아서 하루 종일 시골에서 도시로 걸어 나가야 했다. 뉴욕 증권시장

도 시스템이 오작동하자 그대로 정지되어버렸다. 연결성이 없는 곳에는

생산성도 없다. 그 경험이 그에게 영감을 줬다. 그래서 그는 모국 방글라

데시를 비롯한 제3세계에 이 연결성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실

천에 옮겼다. 3년간 투자처를 찾아 헤맨 끝에 그라민폰을 설립하고 방글

라데시에 휴대폰을 통한 사회적 인프라를 건설하기로 결행한 것이다.87)

그 결과는?

현재 그라민폰은 2007년 기준으로 가입자 수가 약 1,800만 명에 이르

며, 휴대폰을 중심으로 한 이동통신사업은 2020년이 되면 해당 국가 GDP

의 1%를 차지하게 된다.88) 이들은 행정망도 유통망도 없는 곳에 휴대폰

181
을 통한 새로운 연결망을 만들어낸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마을 하나

에 단 한 명의 휴대폰 가입자라도 있다면 그 마을은 IT 연결망에, 네트워

크에 접속된 것이 되기 때문에 실제 이 연결망의 수혜자는 가입자 수의

배 이상이다. 나아가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은행 결제도 하고BillPay , 응급

사태가 일어났을 때 신고하거나 구조를 요청할 수도 있고HealthLine , 사람

들끼리 정확히 약속을 잡아서 시간 낭비를 단축하고, 상거래도 하고 있다


CellBazaar . 나아가 마을과 마을끼리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실시간으로 교환

되고 있다 Community Information Center .89)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이 불과 수

년 안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라민폰이 설립된 것은 불과 1997년이었다.

10년 후인 2007년, 휴대폰이라고는 전무했던 방글라데시는 1,800만의 가

입자, 그 가입자를 토대로 한 새로운 연결망을 가지게 됐다.

위와 같은 사례들을 토대로 해서 지구상 40억의 빈곤 인구에게 IT를 통

해 새로운 희망을 제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이 행정망,

유통망에 의지하지 않고 이용자들 간의 네트워크를 이용한 해법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단순한 기술 사용의 문제가 아니라‘사회적 파급 효과’


이슈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에는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혁

신, 피터 드러커가 말한 성장의 열쇠90) 가 있다. 여기서 빈곤 인구의 역할

이란 원조와 구호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문제의 해결자고 부의 창조

자다. 방글라데시에서 휴대폰 혁명을 일으킨 것은 그라민폰이 아니라 그

라민폰의 가입자이다.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어떻게 쓰고 어떤 환경을 제

공해주느냐가 관건이다.

그렇게 볼 때 한 단계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할 부분은 IT 기술이 사용되

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IT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저개발국의 국민들이 가

182
진 진정한 저력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20세기 최고 경

영 구루 중 하나며 조직 외부의 자원을 활용한다는 아웃소싱outsourcing 이

라는 말을 유행시킨 C.K. 프라할라드C.K. Prahalad 가『저소득층 시장을 공

략하라 The Fortune at the Bottom of the Pyramid 』


에서 주장한 40억 인구의 바닥 시

장의 잠재력을 재확인하라는 논지와 일치한다. 그는 이 40억 인구를 원조

와 구호의 대상이 아닌 소비자요 기업가, 혁신가로 보라고 했으며, 이들

이 인도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시장이라고 했다. 이런 새로운 시각은 지금까지 단순한 도덕적 호

소만으로는 이끌어내지 못했던 다국적기업 등 경영계의 협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단순히 새로운 이윤 추구의 채널이 생겼기 때

문이 아니라 국제개발도 돈이 없이 없으면 지속 가능하지 않은 활동이기

때문이다.91)

이 시점에서 이들 저개발국에 대한 우리의 인문적 잠재력을 재평가해

보자. 그동안 우리는 이 40억 인구를 불쌍하고 가엾고 지극히 불운한 처

지에 놓인 사람들이라는 인식으로 그들을 길들였고 우리 자신을 속여왔

다. 그러나 그들을 수동적이고 무력한 존재로 취급하며 때때로 원조와 구

호 물품을 던져주는 것은 우리의 자기 연민을 충족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

는지는 몰라도 그들이 빈곤이라는 현실을 극복하고 스스로 일어서는 데

는 오히려 장애가 됐다. 영양소를 온 몸으로 전달할 혈관도 멀쩡하지 않

은 환자에게 때때로 진수성찬만 대접하면서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꼴이

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최빈국가들 중 상당수가 있는 아프리카가 긴 역사의 관점

에서 보았을 때 무력한 자들의 땅인가? 아프리카는 인류 문명의 요람이

183
다. 최근부터 따지면 피카소 같은 천재적 예술가들이 영감을 받은 곳이

아프리카고 중세로 거슬러 올라가면 히포의 성자 아우구스티누스도 아

프리카 출신이다. 아프리카는 우리 문명의 모태였고, 우리 문명의 많은

주요한 인물들이 활동했으며, 주요한 사건들이 일어난 곳이고, 주요한

영감들이 그곳으로부터 나왔다. 아프리카를 미개와 야만으로, 원시로

취급하는 것은 지극히 낡은 서구 중심의 제국주의적 시각을 유지하는 것

이다.

할리우드에 이은 두 개의 가장 큰 영화 산업단지가 제3세계에 있다. 하

나는 우리가 잘 아는 인도의 발리우드Bollywood 로, 인도 뭄바이의 옛 영어

지명인 봄베이와 할리우드를 조합한 용어다. 인도의 전통적인 춤과 노래,

할리우드의 선진 영화 촬영 기술을 결합한 것이 주종을 이룬 형태로, 20

세기 초반부터 인도에서 발전하여 지금은 전 세계로 그 인기와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 다른 하나는, 다소 의외지만, 아프리카에 있다. 나이지

리아의 놀리우드Nollywood, 나이지리아 +할리우드 다. 여기서는 가정용 비디오로

만들어진 영화가 주종을 이루지만, 한 해 제작되는 영화만 1~2천 편이 되

며, 영화의 연간 총수입이 2억 5000만 달러에 이른다.92)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도 잘 모른다. 은연중 저개발국가를 저문명국가로 취급하

는 우리의 잘못된 태도 때문이다.

비록 사회 발전은 아직 이루지 못하고, 산업의 인프라는 낙후하고, 정

부는 부패하고 무능할지라도, 그들 안의 잠재력은 결코 녹록치 않다. 중

요한 것은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돕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그 잠재력을 끌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IT 연결망이 제3

세계의 사회 발전을 앞당길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잠재된 정신적 역량이

184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러한 정신적 역량을 하나로 연결시킬 수 있

는 기술적 부분의 보급과 활용이 좀더 충분히, 더욱더 혁신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이런 실험적 사고를 이크발 콰디르의 그라민폰이 성공시켰다. 이들은

방글라데시의 인프라를 개선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러면 이제 이 실험을 좀더 큰 스케일에서 증명해보는 것은 어떨까? 웹은

어떨까? 소셜 웹으로 실험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을까?

먼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힌트를 주는 사례부터 살펴보자.“세

컨드라이프Second Life ”
라는 아주 잘 알려진 가상현실 체험 서비스가 있다.

세컨드라이프는 사실 가상공간일 뿐이다. 그러한 가상공간에 가입자가

자기의 분신인 아바타로 활동하면서 자기만의 세상, 관계를 구축하는 것

이 서비스의 핵심이다. 동시에 세컨드라이프는 비즈니스 공간이기도 하

다. 세컨드라이프에서 가입자는 다른 가입자들을 위해서 티셔츠를 디자

인해 팔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오프라인 현실 세계에서 그 같은 티셔츠

를 디자인해서 판다면 생산단가가 들지만 온라인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왜 중요한가? 세컨드라이프의 주 사용자층에는 미국, 일

본과 같은 선진국뿐 아니라 제3세계에 속하는 브라질의 이용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2009년 3분기 기준으로 브라질은“이용자 간 교류 시간”


으로

측정했을 때, 전체 이용자의 이용자 간 교류 시간의 4%를 차지하고 있

다.93) 브라질의 가입자가 디자인한 옷을 팔아서 돈을 번다고 해보자. 사

이버머니는 미국 달러로 환전이 되고 달러가 다시 브라질 화폐로 환전되

면 이 돈은 오프라인에서 한 달 번 돈보다 더 나을 수 있다.

185
『빈곤의 경제학』
의 폴 콜리어 교수가 말한“네 가지 덫”
에 걸린 최빈국

가의 현실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지속적 가난과 소득차에 의한 끝없는 분

쟁, 천연자원을 둘러싼 권력 투쟁, 그 자원의 수출로 인한 화폐가치 상승

으로 인한 제조업 수출 경쟁력 하락, 최빈국 중 38%가 내륙국임을 생각할

때 지리적으로 아예 수출이 어려운 상황,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에 의해

정상적 관료제가 기능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94) 이러한 상황에

서 저개발국가의 국민들이 소셜 웹에 참여한다는 것은 부실한 행정망과

유통망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로 전 세계의 연결망에 접속하여 그들에

게 필요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가상공간에서는 티셔츠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공장을 지을 필요도 없

고, 추가 생산한다고 해서 돈이 더 드는 것도 아니며, 소비자가 지불한 돈

은 환전되면 제3세계의 수준으로는 엄청난 금액이니 이들에게는 지속적

인 참여의 동기가 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세컨드라이프 내의 브라질 이

용자가 계속 증가하는 한 원인을 설명해준다.

지금까지 살펴본 소셜 IT, 소셜 웹을 활용한 국제개발의 기본적인 전략

은 현재의 기술과 서비스를 저개발국가의 환경에 맞춰 개량하여 행정망,

유통망도 없는 국가에 IT 기기를 통한 연결망을 만들고, 그 연결망 위에

기본적 사회적 인프라를, 행정망과 유통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

요한 또 한 가지는 이들이 구매력 있는 소비자, 시장을 개척하는 기업가,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내는 혁신가라는 사실이다. 단순한 기술 도입뿐

아니라 저개발국가에 대한 인식의 전환까지 가져온다는 점에서 의의가

더 크다. 변화의 주체는 기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계는 사람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장치일 뿐이다.

186
바로 이 대목에서 저개발국가의 잠재력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문화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저개발국가들이 결코 저문명국가인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창조를 위한 무수한 콘텐츠가 있고, 그것이 아

직 우리에게 채워지지 않은 필요와 욕구에 맞닿아 있다면 그것은 소셜 웹

을 통한 국제개발의 비전을 말할 수 있다. 네트워크의 밀도와 규모가 휴

대폰에서 소셜 웹으로 진화하면서 더 강화되고 확장된다면 IT 연결망을

통해 개발된 제3세계가 이제 소비자에서 창조자로, 가상공간을 통한 상품

과 서비스의 제공자로 역전될 수 있다. 위의 세컨드라이프의 서비스 지역

확대를 통한 제1세계와 제3세계의 가상세계를 통한 연결이 한 예다.

한마디로 제3세계의 네트워크 연결망이 구축되고 그것이 제1세계와 연

결될 수 있도록 확대되면, 그때는 기존 행정망과 유통망을 벗어나서 소셜

웹을 통한 새로운 부의 지구적 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순환

과정에서 전 세계 부국과 빈국의 관계가‘지원자-지원대상자’


에서 함께

부를 창조하고 미래를 창조해나가는‘동반자적 관계’


로 전환될 수 있다

는, 더 큰 사회적 의미와 큰 그림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전망과 비전은 지금으로서는 막연한 미래의 스케치일 뿐이지

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이미 증명된 사례들이 있으니 공연한 말만은 아니

다. 이것은 동시에 IT가, 소셜 웹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활용도가 지구

적 차원에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구적 차원에서 IT 기술이 적용되고 소셜 웹 시대가 열린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바로 소셜 웹이 대규모 협업을 통한 사회적 생

산을 통해서 지금까지 소수 집단의 힘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었던 빈곤

문제와 같은 국제적 차원의 이슈에 대해 대안적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187
는 것이다. 지구적인 문제는 지구적인 차원의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것인

데, 그것을 위한 실마리를 소셜 웹이 제시하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국제개발의 미래와 비전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

히 저개발국이 개발도상국이 되고 선진국이 되는 것이 우리의 미래이자

비전인가? 그래서 모든 나라들이 지금 서구의 선진국들이 누리고 있는 부

와 풍요를 누리게 되는 것일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유럽에서 시작

한 사회 발전의 물결은 아시아에 밀려와 아시아의 경제 발전과 아시아식

민주주의를 낳았다. 그렇다면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지의 성장은 어떨

까? 그 발전은 어떤 새로운 가능성의 성취와 도전을 우리에게 던져줄 것

인가? 그것이 IT 연결망과 소셜 웹을 거쳐야 하는 이유는? 그것은 그들이

가엾은 사람들이고 우리에게 그들을 도와야만 하는 인도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IT 기술과 소셜 웹을 통해서 지구적 차원의 연결을 진행하

는 데 그들이 꼭 필요한 인적 자원이기 때문이다. 지구적 차원의 재연결

의 드라마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지구적
상호작용의시대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다

시 돌아가려고 하는 본능이 있다. 현대 인

간의 정신구조, 심리학의 개척자인 지그문

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는 인간이 의식보다 더 큰 세계, 빙산의 일각보다

훨씬 더 큰 빙산의 본체인 무의식에 의해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고 했

다. 무의식이 형성되는 시기는 우리의 유년기이다. 인간이 무의식에 영향

188
을 받는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 끊임없이 그 어린 시

절로 돌아가려는 충동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프로이트의 이 주장은 이후 그의 제자들과 비평가들에 의해서, 현대에 와

서는 뇌과학의 발전에 의해서 수정되고 있지만, 그 근본적인 틀이 부정되

기보다는 수정·보완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집합체인 인류, 인류의 역사인 세계사라는

좀더 큰 틀에서도 마찬가지다. 저명한 언론인이자 예일대 세계화연구소


Yale Center for the Study of Globalization 에서 <예일 글로벌 온라인 Yale Global

Online >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나얀 찬다 Nayan Chanda 가 쓴『전지구적 통합

의 역사 Bound Together 』
를 보면 세계화란 사실 이러한 회귀본능에 따른 것

이다. 본래 아프리카에 한 뿌리를 둔 인류가 빙하기를 통해 전 세계로 퍼

졌으나 끊임없이 다시 하나로 연결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즉 정치적·경

제적·문화적 세계화의 물결은 때로는 높거나 낮을 수도, 강하거나 약할

수도 있으나 그 배후의 근본적인 성격, 연결하려고 하는 인간의 의지는

변함이 없다.95) 그가 보여주려 했던 그러한 거시적인 역사적 통찰에 의

하면, 앞서 설명한 IT의 연결망을 통한 제3세계의 사회 발전, 그리고 소셜

웹을 통한 지구적 차원의 연결의 역사는 빈국과 부국으로 나뉘었던 두 세

계가 이제 다시 하나의 세계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본능에 따른 역사적 흐름이 사실 국제개발이 나아가고 있는 방

향이기도 하다. 이렇게 긴 안목, 큰 시야에서 보면 현재 불고 있는 IT의 태

풍이 그들에게 새로운 연결망을 주고, 그 연결망을 통해서 발견된 그들의

정신적 잠재성이 소셜 웹이라는 더 큰 네트워크에 침투하기 시작하면, 지

구적 연결이 다시 시작되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189
운명의 다른 한 주인공이 그들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드라마를 지켜보고 있다.

제3세계가 소셜 웹 시대의 혁신을 이끈다면 어떨까? 경영 컨설팅 회사

맥킨지앤드컴퍼니McKinsey & Company 의 <무엇이 문제인가What Matters >에 기

고한 글에서 그라민폰의 설립자인 이크발 콰디르는 21세기엔 아시아가

세계를 주도할 것이며 그 이유는 아시아가 세계의 혁신을 이끌 것이기 때

문이라고 했다. 그가 말한 혁신은 특별히 기술 혁신, 그중에서도 IT를 염

두에 둔 것이다.

또한 콰디르의 아시아가 21세기를 주도한다는 주장은 급속도로 기술

혁신과 경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의 이미 선진화된 나라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직까지 아시

아에는 절대 빈곤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많고 아시아인의 평균 수입은

세계인의 평균 수입의 42%밖에 안 되지만 그러한 필요와 여건 때문에 오

히려 혁신이 강화되어 세계를 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필리핀과 인도 사람들은 본래 선진국에서는 통화 수단으로

사용하던 휴대폰을 금융망으로 일찍부터 사용해왔다. 이것은 기술 혁신

의 한 측면인 이용자에 의한 혁신, 즉 기술의 새로운 활용을 위한 다양한

문맥이 제3세계에 제공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빈곤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 지역의 부흥하는 경제와 기업들은 이

들 시장의 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혁신적인 제품을 만

들어낼 것이고, 그것은 앞서 본 금융의 사례에서처럼 선진국의 저소득층

을 공략하여 전 세계에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 것이다. 한국이 최빈국가에

서 오늘날의 G20 멤버의 경제국가에 오르는 데에는 반백년이 걸렸지만

190
우리의 광대역 인터넷 접속broadband internet access 보급률이 95%로 미국의

60%에 앞서고 있는 걸 생각해보면, 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96)

이크발 콰디르의 말대로 아시아가 21세기에 세계를 주도할 수 있다면,

제3세계가 소셜 웹 시대에 전 세계가 IT를 통한 하나의 연결망으로 연결

되어 지식과 정보를 함께 공유하고 창조하는 시대에 혁신을 이끌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들에게도 가난과 활용 가능한 도구의 부족이라는 혁신의

필요가 있고, 그들을 상대로 하여 급속도로 성장하는 시장과 경쟁하는 기

업들이 있으며, 그에 더하여 무엇보다 아직 디지털화되지 않은 풍부한 콘

텐츠가 그들의 잠재적인 창조력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망과 비전이 얼마나 현실적인 영향력과 효용성, 타당성을 가

지느냐는 문제가 남아 있다. 결론적으로 소셜 웹은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이 답은“맞다”
이기도 하고“아니다”
이기도 하다. 새로운 가능성

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기존 문제에 대한 완전한 해법을 제시

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소셜 웹을 통한 빈곤 문제의 해결법은 비즈니스 기회의 발견, IT를 통한

인프라 구축, 새로운 시장의 창조,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 등에 대한 새로

운 사고와 실천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의 제기가 저개발국

의 정치적 갈등, 의약권 접근 등의 쌓이고 쌓인 문제를 하루아침에 풀 수

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 스스로가 문제 해결의 동반자가 되지 않

는 이상 빈곤 문제도, 그들이 전 지구적 연결의 역사의 주역이 되는 것도

모두 문제로 남아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잠재적 시장, 잠

재적 네트워크, 잠재적 창조성을 다음 세대의 도약으로 준비시키는 소셜

191
웹에 의한 국제개발의 가능성은 결코 작지 않다.

따라서 이제는 원조와 구호의 대상이 아니라 투자의 대상으로, 기회의

땅으로 저개발국가들을 바라볼 때가 되었다. 낡은 시각, 굳은 사고를 버

리고 이제는 이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도전을 줄 지구적 상호작용의 시대,

그 주역이 될 다음 세대가 올 땅으로 그곳을 바라보자. 거기에서 소셜 웹

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가장 큰 문제이자 기회인 빈곤 문제, 그에 대한 21

세기형 기업가 정신, 창조적인 IT의 활용을 통해 사람들의 자발적인 성장

을 돕겠다는 의지와 정신을 가지고 도전해보자.

192
Being Social web 11 소셜웹환경에서의
학습혁명

아날로그 교육VS
디지털세대 현대 교육은 과거 사회 발전 과정에서 만들

어진 것이다. 산업시대의 공장을 생각해보

면 그 시절의 공장과 오늘날의 학교는 놀랍

게 닮아 있다. 직공이 공장에 가듯 학생들은 학교에 가고, 그곳에서 그들이

숙련공이 되듯이 우리는 지식을 소화한다. 그렇게 학교는 산업시대에 필요

한 인력을 각 분야에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그것이 인문계, 실업계로 고등

학교가 나뉘고 인문계 안에서도 문과, 이과로 나뉘고, 대학에서도 온갖 전

공이 나타나는 까닭이다. 이는 산업시대의 흐름이었던 분업화, 전문화와

같은 추세들을 반영한 것이다. 학교는 이렇게 공장을 닮았다.

학교는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시대에서 크게 변하지 않고 있지만, 학생

들은 이미 변화한 소셜 웹 시대에 맞춘 새로운 시대의 감수성, 적응력, 혁


신성을 보이고 있다. 머지않아 학생들은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는 것처럼

책과 노트 대신에 전자책 뷰어viewer 인 킨들kindle 과 아이폰·구글폰 같은

193
스마트폰, 최근 애플이 출시한 아이패드iPad 등의 태블릿을 들고 교실에

들어갈 것이다. 책은 다 킨들에 들어가 있고 노트 필기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할 수 있으니, 더 이상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

어질지도 모른다. 1960년대와 거의 달라진 것이 없는 교실에서 학생들은

이미 디지털 기기로 무장하고 있다. 만약 선생님이 어떤 내용의 정의에

대해 질문한다고 해보자. 이러한 디지털 기기가 있기 전에는 그 질문에

대해서 미리 준비하고 암기해서 대답해야 했다. 외부의 지식 창고에 대한

연결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교육 현장에서는 연결성이 이용

자들의 디지털 기기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질문이 나오는

동시에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선생님이 정답을 가르쳐주기 전에 그 답

뿐 아니라 하이퍼링크hyper-link 로 연결된 온갖 다른 자료들로까지 그들의

지식과 정보를 확장한다. 그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1분

도 채 되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지식과 정보가 디지털화되어 인터넷으로 모이고 다시 그것

에 접속할 수 있는 휴대용 기기가 발달하여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그 정

보의 보고에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이 긍정적으로만 해석되는 것은 아니

다. IT 컨설턴트 니콜라스 카는 <애틀랜틱 매거진Atlantic Magazine >에 2008년

에 기고한“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나? Is Google Making Us Stupid? ”97)

라는 글에서 보편적 정보 접근력이 오히려 과거에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장기간 집중력, 이해력, 그에 따른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물론 이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검색이 일상화되면서 사람들이 전통적

인 지식 습득 매체인 종이신문이나 책에 장시간을 투자하여 무엇인가를

194
읽고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통계 조사 전문기관인 한

국 갤럽의 2000년도 조사 결과에 의하면 대한민국 국민의 월 평균 독서량

은 1.59시간이다. 98) 이에 반해서 2001년 인터넷 조사기관인 닐슨 넷레이

팅스Nielsen NetRatings 에 따르면 2001년 한국의 월 평균 인터넷 사용 시간은

16시간 17분 16초로 전 세계 최고 수치이다. 한 달에 책은 평균 한 권 읽

는 국민들이 인터넷으로는 한 번 접속할 때마다 96쪽의 검색 페이지를 검

색하고 46분 35초를 투자하는 것이다. 99)

비록 카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인터넷이 우리를 꼭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디지털 네이티브Digitial Native 』


라는 제목으로 디

지털 기기의 혁명기에 자라나 그것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

고 있는 새로운 넷세대Net Generation 의 특성과 그에 따른 사회 변화의 필요

성과 전망을 주장한 돈 탭스코트Don Tapscott 100) 는 그의 블로그에서 1996

년부터 2008년까지 수천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국 교육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온라인 학습과 교실에서의 실시간 교육을 병

행한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훨씬 더 나은 학습 결과물을 내놓는

다는 보고서를 소개했다.101)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교사가 일방적으로, 단순 암기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TV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들이 그 내용을 이해하든

않든 일단‘지나간다.’재생하여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확인하거나 관련

된 내용으로 지식을 확장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전자의 교육은 학

생들의 학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호기심을 막는다. 어

떤 내용에서 조금만 더 지식을 확장하려고 하면 참고서를 뒤지거나 도서

관에서 필요한 책을 한참 찾아야 하는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

195
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생들은 바쁜 입시 교육 상황에서 그 같은 시간

투자를 어려워하고, 따라서 그들의 호기심은 사전에 막힌다. 그러나 온라

인 교육은 다르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위키피디아에 들어가면 되고, 거

기서 하이퍼링크를 타고 관심 있는 부분의 지식으로 호기심의 영역을 확

장하면 된다. 학생들이 좀더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교육의 방식이

다. 그렇다면 어느 쪽의 미디어가 더 바보상자인가? 이전의 교육 방식이

책을 읽는 적극적이고 비판적인 지식 습득 행위라기보다는 TV를 맹목적

으로 시청하는 것에 가깝다고 한다면, 책을 보는 시간이 현저히 낮다고

해서 학생들이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교육부의 보고 자료에서처

럼 인터넷을 적절히 학습에 활용한 경우에 그들의 학업 성취도는 떨어지

기보다 올랐다.

중립적으로 이야기할 때 이러한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PC, 인터넷, 휴대

폰 등의 보급에 따른 디지털 혁명이 교육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유토

피아론이나, 디지털 기기에 의한 정보 습득에 의해서 전통적 지식 습득 매

체에 대한 의존도가 떨어짐으로써 우리의 지적 능력이 하향된다는 디스토

피아론은 모두 설득력이 부족하다. 핵심은 이러한 디지털 기기의 보급에

따라서 우리가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방식에 심각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산업시대부터 거의 그대로 유지

하고 있는 현행 교육 시스템에 대해 단순한 입시 차원에서가 아니라, 앞으

로 그 기능과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디지털 기기의 교실 침투 현상을 생각해볼 때 암기 위주의 교육은 점점

의미가 사라진다. 암기해야만 했던 것들은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이미 인

터넷을 통하여 주어진 사실이다. 사회적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지식이 통

196
용되고, 활용되고 있다. 오프라인의 지식과 정보가 디지털화되어 웹을 중

심으로 흡수되고 사회 전체적으로 순환되고 재생산되는 것이 소셜 웹이

란 정보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암기력의 경쟁 우위가 사라질 때를 대비해서 교육은 어떻게

학생들의 학습을 도와야 하는가? 학생들이 앉아 있는 교실의 책상 위에

성능 좋은 데스크톱 컴퓨터를 1인 한 대씩 설치해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될까? 그래서 학생들이 교사의 수업을 듣는 대신에 그 시간에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하여 활용할 수 있다면 우리가 문제 삼는 교육의 퇴행성이 극

복될까? 그러나 이는 기술 만능주의의 오류에 빠지는 일이다. 더 나은 기

술이 더 나은 교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교육 전문가이자 문화 비평가인 닐 포스트먼 Neil Postman 은 그의

저서『교육의 종말 The End of Education 』


에서 많은 사람들이 교실에 첨단 기

기를 들여놓음으로써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시각을 가진 것을 비

판하며, 교육 문제는 어떤 수단을 쓰느냐보다 왜, 그리고 무엇을 가르쳐

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는 그러한 목적의

식이 실제 그 목적에 맞는 행동과 실천을 촉진할 때 교육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102)

따라서 이러한 디지털 기기가 교실에 침투하는 현상, 암기력 대신에 검

색력이 정보 습득과 활용의 방법으로 새로운 경쟁우위를 창출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단순한 도구적 측면을 넘어서 본질적인 측면에서 교육이

왜,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그 목적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이러한 변화들을 수용한 미래를 위한 교육의 구체적 비전

을 디자인해야 할 것이다.

197
군사부일체의해체가
교육의종말은아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라는 말이 있다. 군주

와 아버지와 스승의 은혜가 같다는 뜻이

다. 이것은 과거 사회에서 그들이 인정받

았던 전통적 지위와 권위를 의미한다. 그 전통적 지위와 권위의 출처는

무엇일까? 한 가지 이유는 우리가 수천 년 동안 답습해온 암기 위주 학습

의 전통에서 스승이란 그야말로 암기의 완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을 이미 알고 그것을 머릿속에 저장해놓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다시 그것을 나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다소 과장이 있

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것이 지금까지 교사의 주된 역할이었다. 교

사는 해당 과목의 교과서를 섭렵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고, 그것을 효과적

으로 전달하는 것이 교수법이었으며, 그에 의해서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소셜 웹 시대에는 가장 큰 스승은 인터넷이 되어야 함이 옳을

것이다. 그가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많은 사람에게 전달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다.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배운다는 것의 의미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에게 사실이라는 것, 그것을 암기해서 머릿속에 가지고 다니

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검색 몇 번으로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차

이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의식하는 부분은 그러한 검색력으로 결코 보충

할 수 없는 통찰력, 창조성과 관련된 영역이다. 예일대 경영대 교수인 로

버트 쉴러가 <21세기를 위한 커리어 카운셀링Career Counselling for the 21st


Century >에 기고한 내용을 토대로 생각해보았을 때, 깊게 생각하고 멀리 볼

수 있는 능력은 새로운 문제, 이전에 없던 복잡한 문제가 연이어 출현하

198
는 현대 사회에서 인재가 갖춰야 할 핵심적 역량이기 때문이다.103)

이러한 상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전통적인 교육 방식의 목적 달

성의 효과와 방법상의 효율성이 모두 떨어짐에 따라 전통이 형성한 권위

마저 추락한다고 해서 그것이 교육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군사

부일체 중에서 군과 부는 이미 같은 전철을 밟았다. 왕은 사라졌고 가부

장제는 해체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와 역할, 기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과거의 군주와 가부장제에서 몰락하였으나 우리는 군주독

재가 아닌 민주지도자에 의한 평등한 시민들 간의 자유로운 정치 활동,

가족 구성원의 의견 수렴과 상호 소통을 통한 가정 운영이라는 새로운 비

전을 갖게 됐다. 즉 과거에서 내려온 독점적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로서의

학교의 기능과 역할이 지식을 공유하는 생태계로서의 인터넷의 등장과

그것에 접속할 수 있는 디지털 기기의 보급으로 인해서 제한된다고 할지

라도 전망이 꼭 어두운 것은 아니다. 과거가 해체되면서 더 나은 미래가

열릴 수 있다. 교육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 교육제도도 군주제나 가부장제만큼이나 시대적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내부적 모순이 존재하는 제도다. 산업시대 직공을 키우는 모델에서

출발한 근대 교육, 그 시스템을 그대로 답습한 현대 교육은 정해진 틀에

서 벗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공장의 직공에게 주어진 역할과 기능

은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어진 직

무에 대한 정확성이 중요하고, 그것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이

진행되어왔다.

사실 그러한 이유로 그동안 산업발전의 과정에서 우리 교육이 암기를

강요하고 집중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훨씬 더

199
자유롭고 창의적이고 유기적인 사고를 하는 인재를 원한다. 인간에게 기

계의 정확성을 요구하던 시대에서 더 인간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원하

는 시대로 변화해왔다. 현대사회에 수없이 새롭고 복잡한 문제들이 등장

했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와 테러리즘, 금융 위기의 해법은 교과서에

없다. 지금 인류가 지구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상상력, 문제 해결

력을 절실하게 요구하는 때에 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피부로 그것을

느끼고 이 사회는 독창적인 개성을 가진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공장에서 제품 만들듯이 똑같이 만들어지는 우리 학교의 아이

들이 그와 같은 인재로 자라날 수 있을까? 이전 산업시대의 교육이 우리

에게 남긴 찌꺼기들을 떨어버리는 것은 더 인간적인 교육으로, 인간의 가

장 보편적이고 근원적 특성인 창의력에 맞는 학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

회다.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군사부일체의 해체, 독점적 지식과 그 지식의 전달에 의한 교육의 끝은

교육 자체의 끝이 아니라, 산업시대의 직공을 위한 교육이 막을 내리고

보편적 지식의 창조적 활용, 그를 통한 문제 해결을 학습에 적극적으로

포함하기 위해서 전진해야 할 시기에 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셜웹학습혁명,
지구촌리더로키워라 실제로 그 기회는 MIT 미디어 랩Media Lab

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 ,

미첼 레스닉 Mitchel Resnick , 저스틴 캐셀


Justine Cassel 이 유네스코에 제안한 의견서인 <학습 혁명을 창조하자Creating a

200
Learning Revolution >에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적극적인 학습을 통한 실제

적인 문제 해결력, 지구적인 차원의 협업 능력을 중심으로 한 학습의 혁

명으로 비전화되어 있다. 저자들은 세계 평화, 건강한 삶, 경제 개발, 지

구촌의 지속 가능성 등의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장래의 교육받고 창조적

인 인구로서 어린이가 가장 중요한 자원임을 강조하며 본문을 시작한다.

나아가 저자들은 농경·의약·산업 등 다른 많은 분야에서는 이미 기술

혁신이 사회 혁신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전반적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학습 방향, 방법 등에 있어서는 큰 변

화가 없음을 지적한다. 그와 같은 미래의 목적과 현실의 이해를 바탕으로

저자들이 제시하는 교육 비전은 디지털 기기의 도움을 바탕으로 한 세 가

지 핵심 요소를 중점에 두고 전개된다.

첫째로 그 같은 교육 비전이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는 입장에서 스스로

학습하는 입장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제시한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유아기 때부터 사용하는 가장 인간적인 학습 방법인 동시에 아이

들에게 배움의 호기심과 그 실용성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

문이다. 디지털 기기는 아이들이 직접 탐험하고 표현하고 경험하는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 둘째는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은 교과서가 아니라는 것

이다.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영

역이다. 아이들은 강의실에 멍하니 앉아서 필기를 하는 대신에 프로젝트

를 수행하고 그 결과물로 평가받게 된다. 그것을 통해서 어른들의 사고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로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지막 셋째는 아이들이 인터넷이라는 IT 연결성을 통해서 전 세계의

201
다른 아이들과 함께 배우면서“지식 창조 커뮤니티 knowledge-building
communities ”
를 건설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절차를 통해서 아이들은 다문화, 다언어, 다양한 작업의 방식들을 학습해

나갈 수 있다. 이것은 장차 그들이 자라서 세계인들과 함께 지구적 문제

를 해결해나가는 데 중요한 선행 학습이 될 것이다.104)

디지털 기기를 통해서 인간이 기계의 효율성을 따라가는 교육이 아니

라 인간 본연의 창조성을 극대화시켜 미래 사회에 등장하는 각종 지구적

위기들을 해결할 수 있는 인재로 양성하고자 하는 교육은 이미 실험으로

행동에 옮겨져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단순한 비전으로만 머물고 있지 않

다는 데 더 중요한 시사점이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 대규모 스케일로 실현되고 있는 것이 미국의 대표적 연구 중

심 대학인 MIT가 2001년부터 시작 MIT Open Course Ware 공개강의운동다.

MIT의 OCW는 디지털 기기가 교실로 침투해오고 그에 따라서 교육 방법

뿐 아니라 그 목적과 의미까지 송두리째 다시 생각해야 할 상황에 와서

MIT가 선택한 교육 개혁안이다. 더 이상 학교가 독점적 지식의 전달 기관

으로서 기능할 수 없으니 아예 학교의 모든 강의 자료를 인터넷상에 공개

해버리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즉 군사부일체를 포기하고 대신에 이들이

택한 비전은 지식의 응집과 그것의 분산 기능이 이미 학교로부터 인터넷

으로 이전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교육이 무엇을, 어떻

게, 누구와 같이할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었다. 교육은

더 이상 학생들이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고 현장에서 실천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동시에 그렇게 해서 학생들이 지구촌 문제

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함으로써 실

202
제적인 문제 해결력을 향상시킬 때만이 그러한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국제사회의 리더들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비전이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 구체적인 예에서 살펴보자. MIT가

웹상에 무료로 공개한 약 1,900개의 강의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 중

하나는 MIT 수학과의 길버트 스트랭Gilbert Strang 교수의“선형대수학”강

의다. 이 강의 동영상을 보면 화면에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강

의 동영상을 마치 유튜브에서처럼 별로 평가를 매길 수 있게 해놓은 것이

다. 심지어 그 강의 동영상에 대해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댓글을 달아놓을

수 있게 해놓았다.105)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첫째는 학생들의 디지털 감수성에 맞

는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침에 억지로 강의실에 앉아 꾸벅

꾸벅 졸면서 이해도 잘 안 되는 강의를, 어떻게든 필기는 하기 위해서 노

력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위와 같은 방식은 디지털 세대가 아날로그 강의

실에 적응하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에 효과적으로 대처한 예다. 그들이 TV

드라마를 실제 방영 시간이 아닌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다운로드 받아서

보는 것처럼, 강의 역시 그들이 원하는 시간에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인터넷 환경을 이용하기 때문에 강의를 듣는 도중 이

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잠시 강의를 멈추고 해당 내용을 검색하여 찾

아서 보강하고 다시 다음 내용으로 넘어갈 수 있다. 학생들의 디지털 감

수성에 맞는다는 측면에서 효과적이고,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학습을 돕

는다는 점에서 학습 혁명의 비전 성취와 연관되어 있다. 나아가 이 강의

가 웹상을 통해서 전 세계에 공개되어 있고 실제 강의 평가와 댓글을 달

수 있는 권리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지구촌 연결 의

203
식을 제공해준다. 즉 그들이 비록 MIT에 다니고 MIT 강의실에 앉아 있기

는 하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와 같이 학습하고 있으며 그들과 함께 고민하

고 있고 지구촌 학습 커뮤니티를 건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

식을 가지는 것은 이 학생들이 자라나서 나중에 지구촌의 핵심적 문제들

을 해결하는 리더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소양 중 하나다.

학습의 디지털화가 지금의 학생들을 지구촌 문제 해결을 위한 리더로

키우는 데 어떠한 가능성을 줄 수 있을까? MIT에서 2004년 가을학기부터

1년 동안 운영했던“D-Lab: 개발, 대화, 그리고 전달 D-Lab: Development,


Dialogue, and Delivery ”
이라는 강의가 있다. 이것은“국제개발”
이라는 이슈를

가지고 학생들이 스스로 참여하여 그 문제가 일어난 지역의 사람들과 함

께 해결책을 만들어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강의다. 강의 목적은 국제개

발에 적합한 기술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지만, 이 강의는 거기서 멈추

지 않고 실제 그 지식을 실험한다. 그 실험은 물론 현장에서 이루어지며,

그 현장은 최근에 대지진으로 문제가 된 아이티를 포함한 온두라스, 잠비

아, 사모아 등의 국가다. 이 수업의 강의 진행자는 에이미 스미스Amy Smith

와 커트 콘블루스Kurt Kornbluth 로, 두 명의 강사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적으

로 학생들은 현장학습을 통해 해당 지역의 공동체 운영자들과 그 지역의

문제를 자신의 지식을 가지고 직접 해결하면서 학습을 대행하게 된다.106)

학습이 네 개의 벽에 둘러싸인 교실과 정해진 틀에 박힌 교과서에서 벗어

나서 실제 현장에서의 참여와 그곳에서의 문제 해결을 통한 창의적 아이

디어로 그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나아가 지식의 독점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일방적 전달 모델이 변화하

고 있는 것은 학교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암기 위주 교

204
육의 핵심이었던 교과서가 소셜 웹 시대에 맞춰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교실 안에 갇혀 이루어지던 학습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급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에, 수정할 내용이 있어 다시 개정판을 내려면

수 년을 기다려야 하는 교과서가 적합한 것일까? 교과서를 주로 하여 한

학기 동안 진행되는 수업이 디지털 시대의 감수성을 과연 얼마나 충족시

킬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안을 미국 라이스대학의 리처드 바라니우크Richard Baraniuk

라는 컴퓨터학과 교수가 내놓았다. 그의 대안은 오픈소스다.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리눅스라는 운영체제를 만들었고 그것이 서버시장

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듯이 같은 아이디어를 교육에, 특별히 교과서에 적

용해보자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 그는“커넥션스Connexions ”107) 라는 단체

를 설립했고, 이 단체를 중심으로 XML Extensible Markup Language 이라는, 자유

롭게 소스를 붙이고 뗄 수 있는 기술과 앞서 설명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를 가지고 이용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교과서를 함께 직접 디자

인할 수 있는 일종의 작업 공간을 만들었다.

핵심적인 것은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콘텐츠 사이의 관

계 변화다. 예전의 교사와 학생의 관계란 독점적 지식을 소유한 자와 그

렇지 못한 자의 일방적 관계였다. 거기에는 권력과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

했고, 그에 따른 후자의 전자에 대한 일방적 순응이 요구된다. 문제는 그

렇게 표준화된 교육이 때때로 다양한 학생들의 필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교과서에서는 참여자가 적극적으로 그

내용의 수정과 보완에 참여할 수가 있다. 좀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좀더 자신이 뜻하는 목적에 따라 교육이 이루어지게 한다. 나아가 이렇게

205
교육을 자신에게 맞는 형태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공개적인 학습에 직접

참여하고 그 콘텐츠에 관여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문제

해결력에 필요한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다른 혜택들도 있다. 일단 비용 측면에서도 리눅스형 교과서는 훨씬 싸

다. 한 권에 미국 달러로 170달러씩 하는 전공서적을 이러한 방식으로 생

산하면 그 단가를 20달러로 낮출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교과서가 최신

업데이트된 지식으로 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최근의 교과서라

고 할지라도 디자인, 편집, 그 외 기타 사정 등을 고려하면 출시할 때에는

준비 시에 비해 뒤처진 지식을 갖추고 있게 마련이다. 동시에 혹시나 있

을지 모를 오류에 대한 수정과 개선은 이용자들의 참여와 온라인 이용자

들 간의 평가 시스템peer review 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108)

이렇게 공개된 지식은 지식 공유가 한정되는 독점적 지식 시스템과 달

리 그 수혜의 범위가 예상치 못한 곳으로까지 확산되는 혁신이 일어나기

도 한다. 일례로 미국의 한 개인 음악 교사인 캐더린 슈미트 존스Catherine


Schmidt Jones 는 음악 교육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 이

론을 커넥션스 사이트에 게시하기 시작했는데, 전 세계의 학습자들과 강

사들에 의해서 1,400만 번 이상 사용되었다. 일개 교사가 1,400만 번 이상

이나 사용되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은 오프라인 교육 시스템이나 독점

적인 지식의 운영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 불가능에 가까

운 생각, 그 상상을 소셜 웹은 이루고 있다.109)

여기서 한 단계 더 높이 올라간 상상은 어떨까? 예컨대 웹이 교과서가,

웹이 학교가, 웹이 교실이 될 수는 없을까? 그곳에서 사람들이 좀더 자신

에게 맞는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지식을 자발적으로 교환하고 공유하

206
고, 그래서 더 큰 지식을 창조하는 방향으로 교육을 디자인해볼 수는 없

을까?

학습 차원에서의 혁명은 아직은 미완이지만 그에 대한 실험은 이미 진

행 중이다.“P2P 대학교Peer to Peer University ”110) 라는 것이 있다. 이곳에서

는 자발적인 봉사자에 의해서 강의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웹 사이트가 교

실이 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학생이 된다. 현재 개설되어 있

는 강의 중 하나를 연 사람은 비엔나 공과대학교Vienna University of Technology

의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생인 비베크 라오Vivek Rao 다. 그가 직접 디자인

한 강의를, 웹을 통해 들어온 사람들이 자발적인 학생이 되어 함께 진행

한다. 여기선 학생이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앞서 말

한 것처럼 소셜 웹 시대의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

은 독점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한 지식을 함께 활용하기 위

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으로 옮겨가고 있다. 2010년 3월 12일부터 4월

23일로 이제 시범 운영 제2기를 맞는 이 소셜 웹 시대의 교육 실험 사이트

가 좀더 성숙한다면 교육 영역에 있어서 개방·공유·창조의 오픈 컬처

가 더 크게 작용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111)

이러한 실험은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지식을 자발적

으로 교환·공유·집단 창조해나가는 방향으로 진전되는 교육이라는 점

에서, 이용자들의 네트워크와 그들에 의한 사회적 생산의 방식을 교육 영

역에 활용한 것이기 때문에 비상업적 측면에서의 소셜 웹의 성장에 관련

된 측면에서도 의의가 크다.

이러한 MIT OCW, 커넥션스, P2P 대학교 등에 의해서 실제적인 사례들

이 뒷받침하는 것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학습 혁명, 지식과 정보가 웹에

207
하나로 응집되고 공유되어 재창조되는 시대에 좀더 인간 본성에 걸맞은

창의적인 학습, 지구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제적인 교육, 그것을 위

한 지구촌 학습 커뮤니티의 구축이 단순한 꿈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니콜

라스 네그로폰테, 미첼 레스닉, 저스틴 캐셀이 명명했던 학습 혁명의 비전

은 소셜 웹 시대에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208
Being Social web 12 오픈컬처와다음사회

소크라테스가
독배를든까닭 철학이 소크라테스의“너 자신을 알라”

서 시작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다. 그것은 우리가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

철학, 즉 우주자연을 관장하는 심오한 원리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자연적,

혹은 이제는 기계적 논리에 대한 문화와 조직,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물음

에서 우리의 지식 체계를 쌓아올려왔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준 교훈은 이것이다. 별들이 움직이는 걸 아

는 것도 좋고 우주가 어떤 원소로 이루어져있는지를 깨우치는 것도 중

요하지만 보다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그것을 관측하고 이해하는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알지 못하면,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는 의문·겸손·인식·용기·의지·분별이 없다면 참된 지식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생각한 철학자이자 지성인의 모습

이고, 양심을 합리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이다. 자기 성찰의

209
눈을 가지고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자기가 본 세상을 객관적으로 설득

해서 남에게 전할 수 있는 인간, 스스로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는 삶을

제시했다.

재미있는 것은 소크라테스 자신은 독배를 들고 죽었다는 것이다. 지인

들이 아테네에서 달아나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그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

았다. 예수가 묵묵히 십자가를 졌듯이, 그 역시 스스로 믿는 진리, 영속하

는 가치를 위해서 그것을 증명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기의 유한

한 삶을 기꺼이 버리는 길을 택했다. 소크라테스를 기소했던 원고가 내건

그의 죄목은 무엇인가? 소피스트들이 내건 그의 죄목은


“사회 혼란죄”

다. 소크라테스가 공동체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것이다.

무엇이 혼란일까? 왜 소피스트들의 눈에는 그것이 혼란일까? 그것을 혼

란으로 보는 것은 공공의 선과 같은 그럴 듯한 명분 때문일까, 아니면 그

들의 이기적인 욕심도 있는 것일까? 아테네의 시민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서 무지몽매하게 사는 게, 모든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지 않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그 성찰의 눈으로 타인과의 생산적 토론을 통해 지식을 쌓아 올

리지 않고 몇몇 소피스트들이 읊조리는 주문, 그들이 만들어낸 세계관에

따라 그저 주어진 신들의 세계를 신봉하며 사는 것이 그들에게 유리해서

일까?

만약 후자가 더 강한 이유라고 한다면, 한 발 더 나아가서 현명한 소크

라테스가 이미 그것을 간파하고 있었다면, 도대체 왜 소크라테스는 강력

한 항변을 하는 대신 침묵으로 독배를 드는 길로 나선 것인지 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는 폭력으로 대항하지 않았을까? 정당한 목표

를 위해서 수단도 합리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아테네에 반역을 일으

210
키는 일은? 그래서 실제로 사회 혼란이 아니라 사회체계를 전복하는 일

은? 그 의도를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도 왜 그냥 침묵하고, 독주를 마시면

서“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을 남긴 것일까? 소크라테스가 무기력하기 때

문인가? 그가 소극적인 인간이기 때문인가? 그러나 소극적인 인간이, 겁

많은 이가 그와 같은 용기 있는 주장을 펼치고 자기의 목숨까지 걸고 지

킬 수 있는가? 소크라테스의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소크라테스는“너 자신을 알라”


라는 물음을 통해 자성에 의한 지식, 그

지식의 생산적 토론, 이성에 기초한 합의에 의한 공동체를 건설하려고 했

다. 소크라테스 본인이 아닌 이상 그가 왜 독배를 들어야만 했는지 그 이

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그 맥락에서 한 가지 생각해볼 수 있는 것

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사랑의 상징인 것처럼, 소크라테스의 독배

는 타협할 수 없는 이성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그는 변명하거나 폭력을

사용하거나 다수를 움직여서 선동하고 폭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그

저 자기 삶으로, 스스로의 삶으로 증명했다.

한마디로 그의 지식은 삶과 일체화된 지식이었다. 즉 그에게 있어서 철

학이란 철학이라고 분류된 전공을 하는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삶을

의식화하고 그 의식화한 삶을 실제 자기 삶으로 실천하는 것의 문제였다.

우리는 바로 그 정신 위에 우리의 지식의 체계를 축적해왔다. 그곳이 우

리 지성의 본향이다.

211
우리모두
소크라테스가되는 근대에 와서 대학이라는 기관이 탄생하고

사회 서 지식과 삶의 분리 현상이 일어났다. 지

식은 지식이고 삶은 삶일 뿐이다. 이전의

철학과 지식은 삶의 자세와 태도, 비전과 별개일 수 없었고 그것이 곧 자

기 커리어와 직결되어 있었다. 고대의 철학자인 탈레스도 스스로 상업을

해서 돈을 벌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각각 아카데미아와 라이

씨움을 건설했던 것도 오늘날로 생각해보면 사립학원을 경영한 것이다.

반대로 중세 신부들에게 학문이란 부업이었고, 귀족들에게는 고급 취미

이자 유행이었다.

동양도 큰 차이가 없다. 제자백가가 융성했던 춘추전국시대만 생각해

봐도, 그 당시 학문이란 학문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학문은 논객

이 자기주장의 설득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고, 제후에게는 천하를 제패

하기 위한 발판이었다. 그것은 손에 들지만 않았을 뿐 검이요, 무기요, 상

대를 찌르고 넘어뜨리기 수단이었고, 동시에 입신과 출세의 목적을 벗어

나서는 무위자연을 꿈꾸는 도가적인 입장에서 속세를 초월하여 자기를

가다듬는 고급 취미이자 일종의 종교였다.

그러므로 공부한다는 것이 공부 그 자체를 위한 것, 학계라는 산업계의

성장과 유지를 위한 것이 된 것은 근현대에 들어와서 일어난 일로, 긴 인

류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불과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즉 좀더

뿌리 깊은 학문의 전통은, 앎을 통해서 자기를 돌아보고 스스로의 가치를

자기 삶으로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문적이고 직업적으로 학문을 위해서만 학문을 하는 사람이 생겼으니

212
까 이런 철학과 비전, 소신과 주관의 문제를 보통 사람들은 포기해도 되

는가? 그냥 하루하루 먹고 사는 걸로 만족하고, 잘 먹고 잘 살게 되면 모

든 고민이 끝나는 것인가? 소크라테스는 죽었으니 그의 아이디어도 이제

그 유통기한이 끝나고 만 것인가? 우리에겐 자성적인 고민이 필요 없고,

그 고민을 실천하는 삶에 대한 문제를 포기해도 되는 것인가? 배고픈 소

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지로 만족하는가?

전문직이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지금 사회에서 소크라테스가 꼭 배고

플지에 대해서는 의심을 가질 만하지만, 어쨌든 배고픈 소크라테스와 배

부른 돼지, 그중 어느 쪽을 택하느냐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극도로 존

중하는 현대사회의 맥락에 따라서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그러나 어떤 선

택이 사회 전체에 더 이득이 되는지, 사회적으로 어느 쪽이 더 필요할지

는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소크라테스의 전통을 따른 앎이, 그 앎을 다루는

삶이 지금도 여전히 절실하다. 사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소크라테스가 정

의한 의미에서의 철학자가 다 죽은 사회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 같은

철학자가 되어야 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을 생각해보자. 근대 사회학의 아버지인 막스 베버Max Weber 의

정의에 따르면 정치인이란 단순한 자신의 권력 야욕을 넘어서 정열, 책임

감, 판단력을 가지고 부당한 사회적 현실을 넘어서 공동체의 이상을 이룰

를 말하는 사람이다.112) 마틴 루터 킹
수 있도록“그럼에도 불구하고”
Martin Luther King, Jr 을 생각해보자. 그는 흑인과 백인은 같은 버스에 앉지도

못하고 같은 학교에 다니지도 못하는 인종에 따른 신분제의 차별과 갈등

의 선 사이에 서서 사회의 통합을 위한 비전을 위해 죽음까지 바친 인물

213
이다. 그에게서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드는, 더 나은 공동체를 위

해 애쓰던 모습이 보인다.

기업가를 생각해보자. 경제학자 슘페터Joshep Alois Schumpeter 는 기업가란

한 사회가 그 사회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을 때 그 구

조적 한계를 극복할 혁신을 통해서 창조적 파괴를 이끄는 인물, 새로운

철학과 신념을 조직을 통해 관철함으로써 그 사회의 변혁과 쇄신을 이끌

어내는 위인상이라고 정의했다. 비록 현대 기업가의 이미지가 그렇게 밝

지만은 못해서, 미국도 본래는 경영학으로 분류되던 행정학이 정치학과

로 분리되는 역사적 과정을 겪기도 하는 등 철학이라는 말과는 동떨어지

게 여겨지지만, 그들도 삶을 통해 자신의 앎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소크라

테스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고, 그래야만 한다. 철학을 잃은 경영이란 목

적 없는 이윤 창출, 제한 없는 욕망의 허무한 만족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때의 기업가 정신이란 그저 돈을 많이 버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는 정치인과 기업가의 사회·정치·경제의 영역, 즉 행정망과 유

통망 이외에 이용자들의 네트워크가 웹을 통해서 번성하고 있는 소셜 웹

의 시대가 왔고 앞으로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는 그다음 사회에서는 정

치와 경제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대해서 참여하는 사람들이 기존의 정치

인과 기업가에 한정되지 않고, 웹에 접속할 수 있는 사회의 구성원 모두

일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 변화의 정의를 생각해볼 때 소크라테스가 정의

한 자기 성찰을 통한 지식의 실천은 아직도 유효하다. 건전한 상식과 선

량한 양심, 분별력과 기준, 원칙, 가치를 알고서 자기 삶을 경영하고 자기

가 누린 삶의 결실을 기꺼이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배려와 존중, 용기와 덕

목이 이 사회에는 너무나 절실하다.

214
만약 소크라테스의 정신이 우리 시대에 부재한다면, 소크라테스처럼

책임 있는 지식을 말하고 살려는 자세와 의지가 없다면, 소셜 웹 시대에

는 소크라테스 이후 발달한 이성을 따라가게 될 것인지, 아니면 소크라테

스 이전의 맹목적인 신들의 세계로 되돌아갈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먼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쉽고 빠르게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반드시 역사적인 의미에서 진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둔

다.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이용자들의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사회적 참여

의 장 역시 긍정과 부정을 다 가지고 있다. 웹은 좋게 가면 사회의 새로운

창조성의 원천이 될 수도 있지만 나쁘게 가면 전에 없던 혼란의 근원이자

통제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전자는 지금까지 이야기해온 비전을 말한

것이고, 후자는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인터넷이 우민정치의 온

상이 될 수도, 혹은 조지 오웰George Owell 이『1984』


에서 묘사한 빅브라더

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

확실한 비전과 로드맵을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이 셋 중, 혹은 그 이상

의 선과 악의 선택지 중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런데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제대로 된 방향성과

로드맵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인터넷을

버릴 수는 없다. 그러기엔 이 문명이 준 혜택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여전

히 어디로 갈지 모른다. 그만큼 당혹스러운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지금은 확실히 이성이 진보한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지식과 정보의

홍수, 새로운 가능성과 위험 사이에서 사람들은 전에 없던 가치의 혼란

과 혼동을 겪고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소피스트들은, 마치 모기가 여름

에 때를 만나 극성을 이루는 것처럼, 호기를 얻어 사람들을 먹이로 삼고

215
돌아다닌다. 사실과 가치의 혼란과 혼동이 사람들의 이성적·성찰적 능

력을 퇴보시키고 마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은 팽창하고 있지만

그 지식 중에서 소크라테스적인“책임 있는 지식”


보다 소피스트적인

“책임 없는 지식”
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맹목적 신들의 세계로 귀환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

에 우리 시대, 소셜 웹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소크라테스를 필

요로 한다.

성찰하지않으면
나아갈수없다 소피스트보다는 소크라테스가 더 많아지

는 사회, 맹신보다는 성찰이 우세한 사회

를 소셜 웹 시대에 어떻게 세울 수 있을지

를 생각해보자. 그것이 우리의 방향성이 된다면 그것은 곧 소셜 웹 시대에

인터넷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해줄 것이다.

맹신보다 성찰이 우세한 사회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먼저 우리는 소크

라테스와 반대편에 서 있었던 소피스트에 대해 숙고해봐야 한다. 소피스

트의 혈통은 어떻게 남아 있고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미래로 나아가는 데

어떠한 장애가 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크라테스 시대의 소피스트들이 철학자들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이자

문제는 그들에게는 자기 자신을 아는 지혜, 자기 성찰의 능력, 스스로의

내면에서부터 출발하여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경로가 없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외부를 연결하는 냉철한 눈이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지식이

216
란 결국 먹고 살기 위한 기술, 그것을 포장하는‘아는 척’
에 불과하다.

자기 성찰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자기가 남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

며 이것이 곧 남을 판단하는 기준과 원칙이 된다. 신념과 의지가 있는 이

소피스트들은 겉보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그들을 이 사회

에 더 위협적인 존재로 만든다. 철학이 없는 상태에서 기술을 갖추었기에

겉으로는 화려할 수 있지만, 그 기술이 제대로 된 목적과 비전을 위해 사

용되지 못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엔 얌전해 보이지만 실상

은 연쇄 살인범이 총을 쥐고 있다면 우리는 그 총을 호신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얌전한 얼굴을 보고 믿고 있을 때뿐

이다. 지능적인 범죄자라면 누구든지 대놓고 자신을 범죄자라고 하지 않

는다. 진정한 마피아는 최고의 신사다.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의 차이를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소크라테

스는 나와 너의 관계에서 네가 너 자신을 알고 너의 인생을 살고 그 지식

을 가지고 자기 삶을 증명하다 죽기까지 떳떳하기를 원하는 것이고, 소피

스트란 네가 내 명분과 내 현란한 지식을 사고 그 대가로 쉽고 편하지만

속는 삶을 살며 나에게 권력과 이윤으로 그 값을 지불해주길 바라는 것이

다. 다소 비약이 있고 단순화한 경향은 있지만 요점은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어느 쪽과 더 닮아가고 있는가? 정부

의 행정망, 기업의 유통망 외에 이용자들의 네트워크가 등장했다. 네트워

크가 기존 사회를 포섭하며 국가적으로, 전 지구적으로 연결된 새로운 사

회, 소셜 웹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정치인에게는 주의와 이념이, 기업가에

게는 기업가 정신이 있었다. 그들 나름대로 요구받는 철학이 있었고 그 기

준이 그들을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로 나누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행위자

217
들, 다수의 참여자들에게는 어떠한 철학과 기준이 요구되는가? 우리 자신

도 철학자가 되기를 요구받는 시대에 우리는 지금 소크라테스로 살고 있는

가, 소피스트로 살고 있는가? 우리의 지향점인 성찰이 맹신보다 우세한 사

회에, 그래서 더 낙관할 수 있는 미래에 우리는 얼마나 더 근접해 있는가?

냉철한 현실은 우리 대부분의 시민, 소비자, 이용자가 그중 어느 한쪽

도 못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철학자가 될 용기와 생각의 깊이도, 소피

스트가 될 지식과 대담성도 없다. 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이는 갈대와 같

다. 이성의 뿌리가 약하니 감정의 가냘픈 몸에 의지해 시류에 휩쓸리는

것이다. 잘 되면 혁명가의 찬조자가 될 수 있지만, 안 되면 범죄자의 후원

자가 되기도 한다. 그 모든 과정에서 진정 없는 말들에 현혹되었다가 그

대가를 톡톡히 자기 인생으로 치르고 만다. 닷컴버블에서, 최근의 서브프

라임 모기지에서,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약속하는 일확천금의

꿈에 눈이 어두웠다가, 그 맹신의 대가, 성찰의 부재를 자신의 피땀을 모

은 재산으로 치러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성찰의 눈을 밝혀야 한다.

소셜아키텍처로
거듭나기위한 그렇다면 대안과 해결책은 없을까? 소셜
몇가지조언 웹 사회를 소피스트보다 소크라테스가 더

우세한 사회, 성찰이 맹신을 이기는 사회

로 만들려면 그러한 지식과 정보들을 통합할 수 있는 사회적인 틀, 새로

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사회 문화가 온·오프라인에 정착될 수

218
있다면, 그 문화의 사회화를 통해서 각 개인들도 소피스트보다 소크라테

스에 더 근접해갈 것이며, 반대로 개인들이 성찰의 안목을 갖추게 된다면

소피스트들이 활약할 무대가 좁아지게 되니 사회 전체도 더 소크라테스

에 가까워질 것이다.

여기서는 그러한 사회적인 틀, 새로운 문화를“오픈 컬처”


로 정의해보

겠다. 오픈 컬처란 쉽게 말하면 다수가 창조하는 문화다. 이 문화가 특정

한 사회 행동을 촉진하는 기반인 소셜 아키텍처social architecture 를 짜는 데

왜 중요한가? 지금까지 사회는 그 반대의 소비문화에 지탱해왔고 그 관성

이 유지되는 것이 현재와 같은, 소크라테스보다는 소피스트를, 성찰보다

는 맹신 쪽으로 몰고 가는 사회를 형성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저 산업시대의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대표되는 소비의 스케일이 사

회 전체를 좌우하는 패러다임이었던 시대를 생각해보자. 그것은 다수가

소비하는 문화였다. 상품, 서비스만 소비하는 게 아니고 실제로는 말과

생각조차 소비한다고 생각해도 크게 주장이 어긋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문제에 대해서 내가 주장한다고 했을 때, 그 근거의 어디까지가 내

가 찾고 정리한 것인가? 대개는 신문, 뉴스 등 언론매체를 통해 그 입장이

정립되는 경우가 많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자신과 가까운 주변의 일

을 제외한 더 큰 문제에 관해서는 스스로 그 지식과 정보를 취득할 방법

이 없기 때문에 정부, 기업, 언론사 등에서 창조한 콘텐츠를 소비하고 학

습하는 것이 최선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들 언론사는 행정망, 유통망

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언론은 진실을 말해야만 한다는 것이 원칙

이지만 사실 진보언론이든, 보수언론이든, 현실 정치의 입장과 경제적 이

해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

219
그러한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한 것이 이용자들의 네트워크다. 이용자

들의 네트워크, 웹 생태계가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법과 제도에 의해서, 현실 사회의 온라인 사회에 대한

반영에 의해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현실만큼 그

것이 구조적으로 고착되어 있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네티즌들은 이러한

이해관계에 하루아침에라도 등을 돌릴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촛불집회가

일어난다고 해서 그것이 늘 어느 한 편을 위해 서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대중이 어제는 브루투스를 위해 섰다가 오늘은 옥타비아누스를 위해 섰

던 것처럼, 그 본성의 역사는 충분히 재현될 수 있고 소셜 웹은 그것을 충

분히 더 유동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것은 이용자들의 네트워크는 조직화된 집단이긴 해도 구속력이 지극

히 약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는 정당, 노동조합 등 정치적·경제

적 이해관계로 뭉친 집단과는 다른 방식의 연결성, IT 기술, 진정성을 통

한 신뢰와 명성의 교환법칙 같은 새로운 관계의 방정식을 통해서 대규모

조직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기존 행정망, 유통망에 대한 의존

도를 상당히 벗어난 상태에서, 지식과 정보를 굳이 언론사라는 통로를 통

하지 않고도 개인들 간에 서로 지식과 정보를 교환하는 방식, 네트워크라

는 새로운 통로를 통해서 얻어내고 있다.

이것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문화가 바로 오픈 컬처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오픈 컬처는 기존 언론사에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

들을 지배하는 소비문화의 일관성에 등을 돌릴 수 있는 문화라는 것이다.

이들은 네트워크에 진입한 지식과 정보를, 정부와 기업, 언론 등에서 공

개한 자료를 자신들의 네트워크에서 새롭게 소화하고 해석하고 재창조하

220
여 공유한다. 예를 들어 한 정치인이 어떤 성명을 발표했다거나 어떤 기

업이 새로운 사업을 발표했다고 하자. 그에 관련된 지식과 정보들이 마치

위키피디아처럼 순식간에 모이고 토론되고 종합되고 정리될 수 있다면,

지식과 정보가 일방적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의 과정을 통해

서 해석될 수 있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우리가 찾

던 다양성, 독립성, 분산화, 집합성을 지킬 수 있고 집단을 지성적으로 만

들 수 있는 문화가 실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픈 컬처는 소크

라테스적인 개인의 다양한 창조성에 기반한, 소셜 웹 시대를 위한 소셜

아키텍처다.

오픈 컬처가 이러한 소셜 아키텍처 기능을 하려면 아직 한 가지 핵심적

인 과제가 남아 있다. 물론 오픈 컬처가 현실 정치를 좀더 투명하게 만들

고, 경제에 새로운 유통 구조와 참여자를 만들고, 문화적으로는 더 높은

수준의 창조성과 다양성을 약속할 수는 있다. 이 모든 약속에는 의존도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약화되었느냐 하는 전제가 필요하다. 네트워크가 기존

정치 집단과 경제 집단의 또 다른 정치 선전판, 상품 유통망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이용자들만의 연대를 통한 새로운 대규모 협업, 새로운 사회적 생

산과 복지의 근원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공격과 방어,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방어

부터 이야기하자면 우선 산업시대의 세력들, 행정망과 유통망이 이용자

들의 네트워크를 점령하고 유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

한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행정망의 경우, 그들의 또 다른 권력 기

반, 통제 수단이 인터넷이 되지 않도록 인터넷에 대한 검열의 시도, 개인

정보의 무단 이용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과 제도, 법 등에 대한 끊임없는

221
감시가 필요하다. 유통망의 경우, 인터넷이라는 개방과 자유의 공간을 그

들의 또 다른 가판대로, 상품 판매의 채널로 만들기 위해서 저작권법, 자

금력, 기존 유통구조 등을 통해 이곳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

다시 말해 현실 세계의 힘과 돈의 집중이, 분산을 통해서 지식과 정보의

저장·처리·전달을 효과적으로 해내는 인터넷의 속성을 깨뜨리지 않도

록 우리 스스로 인터넷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공격을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창조성의 혁명이다. 소비의 패

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창조는 인간의 본능이다. 디지털 문화는 창조

의 권리를 모든 사람에게 보편화, 대중화, 민주화시키고 있다. 누구든 IT

기기만 있으면 무한한 정보의 바다에 순식간에 접속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고, 그것을 개방하면 공유할 수 있고, 공유하

면 또 다른 더 큰 창조성의 세계, 대규모 협업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대규모 협업의 역동적이고 유기적인 성장이 곧 창조성의 혁명이다. 그 시

작은 소비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창조의 패러다임으로 옮겨가 자기 자

신을 창조자로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것을 믿고 행동하는 사

람이 많아졌을 때, 오픈 컬처는 새 시대의 주류 문화, 질서, 사회화의 배

경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시대적 과제들이 달성됐을 때 우리가 목격할 수 있

는 것은 시민사회가 IT라는 연결망을 가지고 기존의 행정망과 유통망에

사회적 성격을 좀더 강력하게 부여하는, 힘과 돈처럼 가치가 순환되는

“다음 사회”
다. 그곳에서 개개인의 대다수 사회 구성원은 독립적으로는

소피스트들을 당해낼 수 없지만 네트워크라는 통로를 통한다면 그들이

소비하는 문화를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재창조를 통해 재해석을 할

222
수 있는 기반을 닦을 수 있다. 나아가 그들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에게 진

실로 필요한 정치와 경영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기존의 정치

집단, 경제 집단의 이해관계에서 충분히 벗어날 수 있다면, 성찰이 맹신

을 앞설 수 있는 소크라테스적인 개개인의 창조성이 꽃피는 사회를 우리

는 진정 볼 수 있을 것이다.

223
에필로그

평범한사람도탁월하게
공헌할수있는세상

잘 먹고 잘 살자. 기와집에서 쌀밥 한번 먹어보자는 소박한 욕심이


그렇게 절실했을 만큼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친 우리는 그
렇게 굶주리고, 아프고, 추운 백성이었다. 소위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우리의 경제 발전은 그 소원 하나에 전 국민이 목숨을 걸고
밤잠을 아끼고 허리띠를 졸라가며 만든 기적이었다. 동시에 우리
는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달성한 민주화의 기적까지 이뤄내, 최단
기간에 사회 발전의 양대 과제인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달성한 경
이로운 국가가 됐다.
그다음은 무엇일까? 세계도 놀라고 우리 자신도 놀란 기적을 만
들어놓고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못 잡고 있다. 우리는 어
떤 꿈을 꿔야 할까? 아직 우리가 찾지 못한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224
창조성의혁명에
대한사명감 나라고 감히 그 답을 안다고 이야
기하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고민해
보고 싶었다. 그다음 세상이 어떨
지, 그 세상이 나 자신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더 나은 미래이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싶었다. 어떤 사회 변화의 거대한 흐름이 있다면 내 자신의 주제
파악을 철저히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내가 필요한 영역에
공헌하고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세상
을 낫게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 한 번뿐인 인생을 가치
있고 영예롭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구체적으로 IT에 잔뜩 낀 버블과 오해를 깨고 우리가 소셜 웹 시
대를 열 수 있다면, 그 소셜 웹 시대의 주인공들이 오픈 컬처라는
무대 위에서 활약할 수 있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소
망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에는 못 보던 IT의 새로운 사회적 가능
성, 창조성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성취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나 자신으로 살고 싶었
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그동안 나 자신도 스스로에 대하여, 이 비전에 대하여 실망도 많
이 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세상 일이 다 그렇지만 뜻대
로 쉽게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늘 기본부터 다시 생각하고 길고
긴, 높고 높은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좀더 쉽
게 가는 길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드는 생각은,

225
마음 한쪽에 품은 비전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계속적으로 같
은 방향을 보고 가는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힘을 합치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 상호작용의 반복을 통한 성장으로 그 비
전을 현실화하고 싶다.
꿈을 붙들고 사는 것은 내가 이 책에서 주장한 IT의 사회적 가능
성의 비전의 가치, 그 의의에 대하여 나 스스로가 등을 돌리기 어렵
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여기서 희망을 보았으니까. 꿈을 꿀 수 있
는 기회의 평등과 그 꿈을 성취할 수 있는 도전의 자유를 보다 많은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사회의 비전을 보았으니 포기할 수가 없다. 소
셜 웹이라는 새로운 사회적인 틀이 등장했고 오픈 컬처라는 새로운
문화, 관계의 역학이 성장했다. IT의 사회적, 문화적 가능성을 제대
로 읽고 그것을 최대한으로 실현시킬 수 있다면, 창조성의 혁명을
통해서 평범한 사람도 탁월하게 공헌할 수 있는 사회를 이제 우리
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떨쳐지지가 않는다. 솔직히 하고 싶어서
가 아니라 포기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여전히 꿈꾸고 도전한다.

창조성의혁명,
기술이아니라 나는 맹목적인 이상주의자는 아니
인간에서시작된다 다. 나는 비전의 이상과 도덕과 철
학에 감동해서 생계를 내팽개칠 만
큼의 위인은 못 된다. 나 자신부터가 냉철하게 생각해서 확신이 들
지 않으면 많은 불안정성을 감수하면서까지 움직이진 않을 인간이

226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움직인다는 것은, 비록 더디더라도 아
직 오지 않은 변화가, 더 나은 세상이 반드시 온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 아니라 천릿길도 한 걸음
씩 가다보면 다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는 길을 걷고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자. 현재 시점에서 평등과 성장은 대표적인 이
념의 소재이자 정쟁의 주제요, 갈등의 중심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
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일상생활의 언어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
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그가 인간을 사회적 동물, 혹은 정치적 동물
이라고 정의했을 때 그 정의의 범주에는 여자, 외국인, 어린아이,
노예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당시 정치 공동체의 공공의 의사 결정
에 참여할 수 없는 인간은 그 자체로 인간이 아니었다. 정치가 제
일 중요한 사회에서 정치적 기능을 못하면 인간 취급을 받을 수 없
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여자, 외국인, 어린아이는 당
연히 인간이다. 노예는 이제 국어사전이나 역사책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평등이 그렇다면 성장은 어떠할까?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우
Christopher Marlow 의「파우스트 극Tragical History of Doctor Faustus 」
에서 영
혼을 판 파우스트 박사가 그 대가로 구했던 사치와 허영은 기껏 바
나나를 달라는 것이었다. 지금 같으면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
서 몇 천원 주고 사면 될 것을 그때는 영혼을 내놓아야 구할 수 있
었다. 그것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던 시기의 인류의 부의 수준
이었다. 그리고 근대의 초엽에 일어난 산업혁명은 생산성의 혁명

227
으로 확장되어, 비록 상대적 빈곤의 문제를 여전히 남기고 있지만,
많은 인류를 절대적 빈곤에서 해방시켜줬다. 지난 100년 동안 전
세계 인구는 13배, GDP는 거의 300배 가까이 증가했다.113) 덕분
에 지난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던 사치가 오늘날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의 일부가 됐다.
이렇게 정치적 평등이나 경제적 성장 같은 우리에게 꿈같던 말
들이 이제는 우리 삶이 됐다. 우린 더 평등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
고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왜 창조는 안 되나? 그것
도 인간의 강한 본성인데. 정치적 평등이 정치적 기회가 모두에게,
경제적 성장이 경제적 기회가 모두에게 가는 거라면, 창조성의 혁
명, 모두가 창조하는 사회, 소비사회를 넘어선 사회의 비전을, 그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도 탁월한 공헌을 할 수 있기를 꿈꿔보는 게
이상주의인가?
현재 IT엔 충분히 그 가능성의 씨앗이 있다. IT를 기술만으로 보
지 않고 조직으로, 문화로, 인간으로 보면 충분히 그 가능성을 싹
틔울 수 있다. 아직 소수 사례이지만 리눅스와 위키피디아 같은 것
은 혁명이다. 그들은 정치와 경제의 논리로는 해석되지 않는 조직,
문화, 그리고 인간을 보여준다. 그들은 이제 변화의 바람이 본격적
으로 불어 닥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이것은 기술을 넘어서 생
각과 조직이 바뀌고 있다는, IT를 새로운 시대의 기반으로 만드는
변화의 증거다.
산업혁명을 생각해보자. 증기기관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것이 사람들이 중세부터 내려온 서로 관계를 맺고 일을 하는 방

228
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사회주
의·민주주의·복지국가 등의 새로운 이념과 철학이 정립되고 학
교·회사·병원·노조·정당·시민단체 등의 조직체들이 등장하
고, 정치인·시민·기업가·소비자 등의 새로운 인간이 등장하고
나서야 정말 우리는 전과 다른 세상에 살게 됐다. 삶을 바꾸는 것
은 기술이 아니라, 거듭 거듭 거듭 강조하지만, 생각과 조직이다.
조직, 문화, 인간이다. 리눅스와 위키피디아 같은 것들이 등장했다
는 것은, 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한 이상과 비전을 위해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서로 힘을
합쳐 무엇인가를 창조해낸다는 것은, 혁명적이다. 변화가 성숙했
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숙한 변화가 만들어갈 미래를“창조성의 혁명”
의 세기로 정의
하는 것은 억지가 아니다. 이것은 산업시대와 견주어 생각해보면
분명해진다. 산업시대의 패러다임은 두말할 것 없이 생산성이었
다. 산업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조직으로서의 회사가 이후 가장 상
징적 조직이 되는 이유가 그 까닭을 말해준다. 회사는 노동의 분
담, 전문화, 과학적 생산 관리라는 새로운 조직, 문화, 인간을 통해
가치의 생산, 유통체계에 혁명을 일으켜, 이전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차원의 생산성을 만들어냈다. 정치 논리와 군사
논리, 즉 얼마 없는 부를 서로 뺏고 뺏기는 것이 전부였던 수천 년
의 시간을 끝내고 성장과 복지의 논리가 새롭게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회사라는 조직체를 통한 급격한 생산성의 증가에 의해서 사
회 전체의 부가 엄청나게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역사적 시각으로

229
보면 우리는 순간적으로 지금 수준의 부를 축적했다. 그 과정에서
회사 조직, 그들의 생산성의 혁명이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회사
가, 경영이 지금 세대에서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가,
그들에 관한 논리인 경영이 다른 조직 곳곳에 적용되는, 근현대를
상징하는 조직이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산업시대의 패러다임
이 생산성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의 상징적 조직으로, 조직의 경계도 구성원
의 정체성도 이전의 기준으로는 애매한, 달리 말하면 새로운 이용
자들의 네트워크라면? 그들의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변화는 산업시대에 견주어봤을 때 어떠한 사회적인 변화를 예고하
는가? 현재 나타나는 변화, 리눅스와 위키피디아의 예를 보았을
때 그 변화의 핵은 창조다. 사람들이 전에 없던 방식으로 자신들의
지식과 정보를 연결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네트워크가 웹을
통해서 등장했다. 웹 생태계를 통한 창조와 혁신의 일상화는 자신
의 콘텐츠를 개방하고 그 개방된 콘텐츠들을 공유해서 새로운 것
을 집단적으로 창조해내는 오픈 컬처의 정착과 성숙을 가속화시킨
다. 이러한 제도적 환경이 잘 조성되면, 이용자들의 네트워크, 조
직, 문화, 그를 통해서 새롭게 강조되는 인간의 창조성은 사회 전
체의 특징이 되어 다음 세기를“창조성의 혁명”
이 주도하는 세기
로 이끌 가능성을 높인다.
따라서 이 모든 것, 평범한 사람도 탁월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꿈은, 우리가 리눅스의 전설과 위키피디아의 신화를, 단순한 전설
과 신화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작동하는 원리임을 이해하고 그것을

230
각자가 속한 자기 삶의 영역에서 실천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것을
단순히 지나가는 트렌드가 아니라 새롭게 열리는 미래의 기반, 소
셜 웹으로 정착시킬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근거 있는
이상주의”
, 그것을 믿고 함께 만들어보자.
창조성이 민주화된 더 나은 미래를, 그 가능성이 꿈틀대고 있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231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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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ooglekoreablog.blogspot.com/2009/05/2008.html
공동 창업자인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선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의 에릭 슈미트(Eric
Emerson Schmidt)에게 CEO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구글이라는 기업의
전체적인 사업 철학, 전략, 그리고 비전과 방향성에 영향을 미친다.

021)『Crowdsourcing: Why the Power of the Crowd Is Driving the Future of Business』,
Jeff Howe, Crown Business, 1sted, 2008.

022)『 Viral Marketing: Get Your Audience to Do Your Marketing for You』,Rus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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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roughtype.com/archives/2006/07/benkler_on_cala.php

037)“Calacanis’s wallet and the Web 2.0 dream”,Nicholas Carr, Rough Time, 2006. 7.
19. http://www.roughtype.com/archives/2006/07/jason_calacanis.php

038)『Innovation without Borders, Innovations: Technology, Governance, Globa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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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Laws that Choke Creativity』,Lawrence Lessig, TED, 2007.


http://www.ted.com/talks/larry_lessig_says_the_law_is_strangling_creativity.html

045)이것은 하버드 로스쿨의 요하이 뱅클러가 그의 저서『The Wealth of Networks』에서 주장


한 네트워크 사회의 분석의 틀을 따른 것이고, 본문에서는 좀더 쉽게 썼다. 이 책은 뱅클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도 열람이 가능하다.
http://cyber.law.harvard.edu/wealth_of_networks/Main_Page

046)이 글의 전반적인 논지는 정보 경제학의 대가인 하버드 로스쿨의 요하이 뱅클러의 영향을
받았다. 주로 참조한 책인『The Wealth of Netowrks』는 인터넷에서 PDF으로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www.benkler.org/Benkler_Wealth_Of_Networks.pdf
아담 스미스가『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
에서 국가의 부가 시장에 의해 창출된다고 보
았듯이 뱅클러는 네트워크 사회의 부는 이용자들의 네트워크(Peer to Peer 네트워크)에 의해
서 창조된다고 보고 있다.

047)“Nurturing the Creative Roots of Growth”, Robert J. Shiller, Project Syndicate,


2003. 11. 20.

048)『The Age of Access: The New Culture of Hypercapitalism Where All of a Life Is a
Paid for Experience』,Jeremy Rifkin, Ken Tarcher/Putnam, 2000.

049)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재단의 홈페이지. http://creativecommons.org/


표어가 인상 깊다.“공유, 리믹스, 그리고 재사용-법적으로(Share, Remix, Reuse-Legally).”

050)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재단의 홈페이지 중“재단의 역사”부분.

234
http://creativecommons.org/about/history/

051)설명을 위해 사용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의 그림들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재단


의 라이센스 설명용 웹 페이지를 참조했다.
http://creativecommons.org/about/licenses

052)“다시 문제는 창작이다2 - 일본 동인만화 창작환경 분석” , 선정우, 코믹뱅, 2005. 10. 18.
http://www.comicbang.com/news/news.php?sec1=4&ns_id=41&page=5

053)http://ccmixter.or.kr/

054)버크만 센터 홈페이지. http://cyber.law.harvard.edu

055)『The Success of Open Source』,Steven Weber, Harvard University Press, 2004.

056)MIT OCWC 홈페이지. http://www.ocwconsortium.org/index.php

057)“Leading MIT into the 21st century”,Chalres M. Vest, Conversations with History,
UC Berkeley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 2005.
http://globetrotter.berkeley.edu/people5/Vest/vest-con0.html

058)TED 홈페이지. http://www.ted.com

059)WGBH 홈페이지. http://www.wgbh.org

060)『Day of Empire: How Hyperpowers Rise to Global Dominance and Why They
Fall』,Amy Chua, Double Day, 1sted, 2007.

061)http://en.wikipedia.org/wiki/OpenCourseWare

062)“모질라 파이어폭스의 시장점유율 6% 돌파” , 모질라진, Mozilla Communities, 2005. 4. 6.


http://www.mozilla.or.kr/zine/?p=386

063)“구글, 애플, 파이어폭스,‘2009년 크리스마스 최고에요!’


”, 주민영, <블로터닷넷>,
2009. 12. 27.

064)모질라재단의 파이어폭스 페르소나에 관한 설명글.


http://www.mozilla.com/ko/firefox/about/

065)『Democratizing Innovation』,Eric Von Hippel, The MIT Press, 2006.

066)3M의 활용 사례에 대해서는 Eric Von Hippel 교수의 홈페이지를 참조할 것.


http://web.mit.edu/evhippel/www/tutorials.htm

067)『New Ideas from Dead CEOs』,Todd G. Buchholz, HarperBusiness, 2007.


첫 번째 참고할 만한 CEO로 서민을 위한 은행가, A. P. 지아니니가 소개되어 있다.
이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그 내용을 각색해서 요약하고 해석을 덧붙인 것이다.

068)PBS의“Who Made America?”프로그램의 일부로 A. P. 지아니니의 일화가 소개되어 있


다. http://www.pbs.org/wgbh/theymadeamerica/whomade/giannini_hi.html

235
069)『The Long Tail: Why the Future of Business is Selling Less of More』,Chris
Anderson, Hyperion, 2006.

070)『Google’s view on the future of business: An interview with CEO Eric Schmidt』,
James Manyika, McKinsey Quarterly, 2008. 9.
http://www.mckinseyquarterly.com/Googles_view_on_the_future_of_business_An
_interview_with_CEO_Eric_Schmidt_2229

071)요하이 뱅클러는『The Wealth of Networks』를 인터넷상에서 열람할 수 있는 형태로 자료


를 공개해놓았다. 여기서“상표권 희석(trademark dilution)”부분을 검색해서 참조하면 산업
시대와 새로운 인터넷 환경에서 상표권의 의미와 역할, 기능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내용에서 새로운 브랜드 전략의 철학과 비전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http://www.jus.uio.no/sisu/the_wealth_of_networks.yochai_benkler/11.html#782

072)Robert Shiller 예일대 경영대 교수의“금융 시장(Financial Market)” 에 대한 종강 강의,“금융


의 민주화”참조. http://videolectures.net/yaleecon252s08_shiller_lec24/.

073)KIVA 홈페이지. http://www.kiva.org

074)“구글이 구글 버즈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 버섯돌이, <블로터닷넷>, 2010년. 2. 23.


http://www.bloter.net/archives/26176

075)“Kiva and the Birth of Person-to-Person Microfinance”, Matt Flannery, Innovations:


Technology, Governance, Globalization 2, no. (winter/spring 2007) p.38

076)『Making Risk to Save the Poor』, Robert J. Shiller, Project Syndicate, 2005.
http://www.project-syndicate.org/commentary/shiller26/English

077)『The Bottom Billion: Why the Poorest Countires are Failing and What Can be Done
About it』,Paul Collier, Oxford University Press, 1st ed, 2007. p.110.

078)『Outliers: The Story of Success, Little』, Malcolm Gladwell, Brown and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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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9)“World Bank Revisists the Meaning of‘Absolute’Poverty”,Nancy Birdsall,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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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s.cgdev.org/globaldevelopment/2008/07/world-bank-revisits-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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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A Problem from the Hell: America and the Age of Genocide』, Samantha Power,
Harper Perennial, 3rded, 2003.

081)“Ghosts of Rwanda”,Frontline, <PBS>, 2004. 4. 1.


http://www.pbs.org/wgbh/pages/frontline/shows/ghosts/interviews/

082)『Dead Aid : Why Aid Is Not Working and How There Is a Better Africa』,Dambisa
Moyo, Farrar, Straus and Giroux, 2009.

083)『Nation Building in South Korea : Koreans, Americans, and the making of a


democrac』, Gregg A. Brezinsky,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07.

236
084)『The White Man’s Burden: Why the West’s Efforts to Aid the Rest Have Done So
Much Ill and So Little Good』, William Easterly, Penguin Press, 5thed, 2006.

085)“Jeffrey Sachs on the Mobile Revolution : Deregulate and the Closing of the Digital
Divide”,Katrin Verclas, <MobileActive.org>, 2009. 2. 16.
http://mobileactive.org/jeffrey-sachs-mobile-revolution-deregulate-and-closing-
digital-divide

086)“The Digital War on Poverty”,Jeffrey Sachs, <Guardian>, Thursday 21, 2008.


http://www.guardian.co.uk/commentisfree/2008/aug/21/digitalmedia.mobilephone
s

087)“Iqbal Quadir says mobile fights poverty”, Iqbal Quadir, <TED>, 2005.
http://www.ted.com/talks/iqbal_quadir_says_mobiles_fight_poverty.html

088)그라민폰의 가입자 수 및 GDP에 대한 공헌도는 그라민폰의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알 수 있


다. http://www.grameenphone.com

089)http://www.telenor.com/en/global-presence/bangladesh/

090)『The Essential Drucker : The Best of Sixty Years of Peter Drucker’s Essential
Writngs on Management』,Peter F. Drucker, New York : Collins Business, 2005.

091)『The Fortune at the Bottom of the Pyramid : Eradicating Poverty Through Profits』,
C. K. Prahald, Wharton School Publishing, 2005.

092)“제3의 영화천국‘놀리우드’ 를 아시나요” , 김소민, <한겨레>, 2008. 1. 22.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264927.html

093)자세한 내용은 세컨드라이프의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https://blogs.secondlife.com/community/features/blog/2009/11/02/the-second-life-
economy--third-quarter-2009-in-detail

094)『The Bottom Billion: Why the Poorest Countires are Failing and What Can be Done
About it』,Paul Collier, Oxford University Press, 1st ed, 2007.

095)『Bound Together : How Traders, Preachers, Adventurers, and Warrios Shaped


Globalization』, Nayan Chanda, Yale University Press, 2006.

096)“Why Asia Can Take the Lead”, Iqbal Z. Quadir, <McKinsey: What Matters>, 2009.
http://whatmatters.mckinseydigital.com/the_debate_zone/will-asia-become-the-
center-for-innovation-in-the-21st-century#ab

097)“ Is Google Making Us Stupid?”, Nicholas Carr, the Atlantic, 2008. 7/8
http://www.theatlantic.com/magazine/archive/2008/07/is-google-making-us-
stupid/6868/

098)“한국인 월평균 독서량 1.59권”, 한국 갤럽, 한국 갤럽조사연구소, 2000. 9. 15.


http://www.gallup.co.kr/gallupdb/reportContent.asp?seqNo=111&pagePos=9&sele
ctYear=&search=&searchKeyword=

237
099)“한국 인터넷 이용 시간 세계 1위” , 권오연, <문화일보>, 2001. 3. 13.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10311YN13195039842

100)『Grown Up Digital: How the Net Generation is Changing Your World, Don
Tapscott』,Iqbal Quadir, McGraw-Hill, 1st ed, 2008. .

101)“Online learning boosts student performance”, DonTapscott.com, 2009. 9. 24.


http://dontapscott.com/2009/09/24/online-learning-boosts-student-performance/

102)『The End of Education: Redefining the Value of School』, Neil Postman, Vintage,
1996.

103)“Career Counselling for the 21st Century”, Robert J. Shiller, Project Syndicate, 2005.
5. 11. http://www.project-syndicate.org/commentary/shiller37/English

104)“Creating a Learning Revolution”,Nicholas Negroponte, Mitchel Resnick, Justine


Cassell, UNESCO.
http://www.unesco.org/education/educprog/lwf/doc/portfolio/opinion8.htm

105)http://videolectures.net/MIT1806s05_linear_algebra/

106)해당 강의의 OCW 사이트.


http://ocw.MIT.edu/OcwWeb/Special-Programs/SP-721Fall-2004/CourseHome/

107)http://cnx.org/

108)“Open-Source Learning”,Mattew Manini, EDC Blog, 2008. 9. 23.


http://edc.carleton.ca/blog/index.php/2008/09/23/open-source-learning/

109)리처드 바라니우크가 2009년 영국 <가디언(Guardian)>지와 가진 인터뷰 기사.


http://www.guardian.co.uk/activate/blog/interview-richard-baraniuk

110)http://p2pu.org

111)비베크 라오 소개. http://p2pu.org/users/vivekrao

112)『직업으로서의 학문·정치』
, 막스 베버, 김진욱 역, 범우사, 2004.

113)OECD 개발국(Center of Development)에서 제공하는 세계 경제 성장에 관한 앵거스 매디슨


(Angus Madison) 교수의 수치. http://www.theworldecono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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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눅스의 전설과 위키피디아의 신화를 넘어서
소셜 웹이다
1판 1쇄 인쇄 | 2010년 4월 10일
1판 1쇄 발행 | 2010년 4월 20일

지은이 | 김재연
펴낸곳 | 네시간

출판등록 | 2009년 9월 9일 제313-2009-195호


주소 | (121-865)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224-57 1층
전화 | 010-4001-9405
팩스 | 0505-488-9405
이메일 | whathagy@hanmail.net

ISBN | 978-89-94104-01-0 1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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