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미국의 물리학자 리어나드 믈로디노프(Leonard Mlodinow)와 함께 출간한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에서 우주창조에 대하여 ‘중력과 같은 물리법칙이 존재하므로, 우주는 무(無)로부터 스스로 창조될 수 있으며, 창조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생명체가 번성할 수 있는 환경을 지닌 행성이 지구만 있는 것이 아니고, 비슷한 행성시스템을 가져서 생명체가 살 만한 행성이 있는 태양계가 여럿 있으므로, 우주가 오직 우리만을 위해 설계되었다는 근거는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의 주장대로라면 인간과 지구는 신이 창조한 유일하고 독특한 세계가 아니라 중력 법칙에 의해 필연적으로 대폭발이 일어났듯 여러 가지 물리적 법칙이 미묘하게 어우러져 만들어낸 우연한 산물입니다.

그의 저서는 이미 학계에 격렬한 논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직 책을 읽어보진 못했으나 그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신(神)은 우주를 디자인한 지적설계자가 아닌 천지창조론의 신인듯합니다. 신은 실존 여부를 떠나 모든 신앙이 대상으로 하는 초월적 존재입니다. 그런데 호킹은 특정 종교를 대상으로 비유했으나 ‘과학이 신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 것’이라는 말에는 초월적 존재 전부를 부정하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인간이 입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구와 같은 행성이 흔하다고 신이 없다고 할 수 없으며, 외계인이 있다는 것이 신이 없다는 증거가 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편협하게 단정 지은 신은 호킹의 주장처럼 이제 불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종교에서 신을 정의하지만 지금까지의 신은 항상 지구적이고 인간적인 처지에서 우리가 갈망하는 모습대로 그 형상이나 능력을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이 있다 하더라도 그 신은 우리가 수용할 수 있을 만큼만 자신을 드러내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면에서 신은 우주와 닮았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 온 신은 신의 속성 중에서 우리가 필요한 만큼만 분리해낸 신의 일부일지도 모릅니다. 마치 우리가 눈에 보이고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만큼의 시공간을 우주로 한정 짓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호킹의 말처럼 그런 제한된 영역의 신은 이제 불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법칙이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주의 탄생부터 우주의 먼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우주가 얼마나 나이 먹었고, 어디까지 뻗어나갔는지, 언제까지 유지될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주가 표현하는 백만 가지 상수 중 겨우 열 개의 값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고작 그 열 개의 상수로 우주를 계산하고는 그것의 오차가 크지 않다고 여깁니다. 그것은 우리의 바람일 뿐입니다. 사실 우리가 정확히 알고 있는 값은 하나도 없습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달리는 아이를 보고 거리와 시간을 재서 속도를 측정하려 합니다. 그러나 기차의 움직임으로 시간은 압력을 받았고, 움직이며 발생하는 기차와 우리의 중력으로 거리는 일그러집니다. 우리는 수소분자 하나의 속도도 간섭 없이 측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안다고 여기는 상수는 역동적인 우주에서 그 오차가 너무 큽니다. 별의 이동과 태양계의 이동과 은하계의 이동, 은하단의 이동, 초은하단의 이동에 팽창지수까지 모두 계산할지라도 값은 항상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우주가 그 모든 수치보다 더 빠르게 요동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를 설계한 절대자는 우주를 정적인 함수로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별을 천정에 매달아 놓은 것이 아니라 복잡한 물리 법칙의 파도와 물살이 일렁이는 격류에 내팽개쳐 놓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현상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미지의 상수 대신 신을 그 자리에 놓았는지도 모릅니다. 호킹의 말처럼 이미 물리법칙이 존재하므로, 우주는 무(無)에서 자발적으로 창조되었을까요? 그것으로 우주가 존재하고,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영국 킹스칼리지 교수이자 신학자인 앨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는 ‘중력법칙이나 물리학 등은 어떤 상태에서 발생한 결과에 대한 설명일 뿐이지 법칙 자체가 특정 세계를 창조할 수는 없다.’라며 호킹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호킹은 물리학 법칙의 필연적인 결과가 빅뱅이며, 아무것도 없던 무(無)에서 우주(有)가 창조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우주설계자의 존재와 자연법칙을 혼동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호킹이 대상으로 한 신, 즉 제한된 영역에 머무는 신은 불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신이 없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여기서 신은 우주의 모든 구성과 구조, 운용과 방향 등에 대한 전반적인 설계를 한 전지전능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도 그 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없다는 것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신이 우리에게 존재를 드러낼 이유도 없고, 드러낼 가능성도 없으며, 설혹 드러낼지라도 우리가 그 존재감을 인지할 가능성 또한 없습니다. 그러나 신의 의지가 개입되거나 신이 의도하지 않았다면 모든 힘과 에너지와 법칙이 하나로 잠들어 절대적으로 안정되었던 특이점이 폭발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대폭발 후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초가 지날 무렵에 같은 비율로 태어나 모두 쌍 소멸해야 했던 물질과 반물질에 비율차가 생겨 10억 분 1 정도의 극히 일부 물질이 살아 삼아 지금의 우주를 이루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보다 먼저 10-43초 무렵 하나의 힘으로 뭉쳐져 있던 중력,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에서 혹은 아무런 의미도 없던 속성 중에서 중력이 가장 먼저 특성을 띄며 튀어나온 것도 우주를 팽창시키려는 설계자의 의도였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주에서 가장 맏형인 중력이 인플레이션이라는 우주 부팅 과정에 에너지 대부분을 쏟아 가장 약한 힘이 되게끔 하여 우주의 배경을 완성하려는 계획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중력이 다른 힘만큼 강한 채 살아남았다면 우주는 순식간에 붕괴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지라도 가장 거시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중력은 우주의 모든 정보를 차단하여 아무런 생명도 탄생시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리 법칙이 있으므로 우주가 탄생했다면 우주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우주 대폭발 이전에 별개로 적용될 수 있는 고유한 물리 법칙이 있어 특이점이 폭발하게 하였다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폭발의 이유는 불가사의며 현대의 어떤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저 지금 우주, 즉 결과를 거슬러 태초의 상태를 추측하고, 현재 발견되는 법칙을 기준으로 사건을 재구성해 보는 것이 전부입니다.

아직 우리는 태양계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본 적 없습니다.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집안에서만 살며 한쪽 벽 창밖에 보이는 풍경으로 세상을 전부 알 수 없습니다. 언덕 너머의 강도, 더 먼 곳의 산도, 산 너머 바다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주의 작은 영역만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우주는 겨우 4%의 일반적인 물질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우주는 우리가 보고자 하는 정보를 감지하여 컴퓨터의 모니터처럼 빛꼴 경계에 집적해 보여주는 홀로그래피(holography)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모니터를 통해 우리는 역동적인 게임의 화려한 그래픽을 볼 수 있고, 편리한 프로그램으로 복잡한 수식이 계산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화면을 본다고 한들 컴퓨터 내부에 유기적으로 연결된 부품과 그 부품을 구동시키는 프로그램의 원리를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주의 표면적인 모습을 관찰할 수는 있지만, 우주를 형성하는 부품과 그 구동원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130억 년 전 우주가 부팅될 때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으며, 모니터에 나타나는 기하학적 패턴을 분석하여 다음 상태를 예측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표현되는 패턴을 정의하는 법칙이 있으니 컴퓨터가 자발적으로 켜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단편적인 관측 자료로 긴 시간을 예측하지도 못합니다. 그냥 추측일 뿐입니다. 어쨌든 우주는 처음 전원 버튼을 누른 누군가에 의해 부팅되었고, 그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우주를 켰습니다. 그리고 그전에는 누군가가 우주라는 컴퓨터를 설계했고, 누군가가 하드웨어를 구동할 소프트웨어를 설계했으며, 누군가가 우주에 탑재할 소프트웨어를 선택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신이 있거나 없거나, 필요하거나 불필요하거나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신에게도 우리 생각은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우주는 아직 부팅 중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팅 중 화면에 표현되는 단편적 정보를 담은 텍스트 중 일부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표시한 정보가 잘못되면 진단을 할 것이고, 별 흥미가 없다면 우리 시간으로 천 억년의 부팅시간이 끝나고 나서 신은 원래 목적했던 프로그램의 바로가기를 더블클릭할 것입니다. 그리고 억겁 동안 사용 후 우주는 꺼지고, 다시 부팅 할 날을 기다리는 동안 모니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특이점만 나타날 것입니다. 물론 운이 좋다면 자발적으로 켜질지도 모르겠지만요.

-뭐 아시다시피 이 글 또한 하나의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단상일 뿐입니다. 필자는 불가지론자이므로 호킹 저서 이후의 종교나 과학, 가치관 논쟁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그리 신선하지는 않네요.그럼에도 호킹에 대해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고 비판한 수전 그린필드 옥스퍼드대 교수 말에는 공감하는 편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호킹 박사는 결국 다른 입장을 취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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